노트북/2021년

새 마음 챙겨보기

수행화 2021. 1. 1. 22:40

 

 

'코비드-19(COVID-19)', '확진자', '팬데믹',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 3단계'..........
이 생소했던 말들로 날이 새고 밤이 지던 한 한 해를 보냈다. 
크리스마스가 실종되더니 보신각 제야의 타종 행사도 없어 새해 새 마음 불러오는 것이 퍽 인위적으로 느껴진다. 오가는 길에 캐롤을 들으면 12월이 축제같고, 구름 인파가 종각을 에워싸고 제야의 순간을 다함께 카운트, 삼, 이, 일, 댕.....울리면 서기(瑞氣)가 물결쳐 전해 오는 것같아 새마음 새 기운을 북돋웠는데 그마저 침묵에 들었다. 건국이래 67년 만의 침묵이라니 특기할 일이다. 해돋이 명소도 출입금지 차단 줄로 쓸쓸하고, 제야 이벤트의 성지 같던 뉴욕, 시드니, 홍콩 등 다른 도시들도 관객 없는 불꽃이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100년은 족히 썼을 마스크를 지난 한 해에 소비했지 않았을까 싶게 우리 모두 마스크를 방패 삼아 숨 죽이고 산 것 같다.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모를 미물, 바이러스에 전 지구인이 목숨을 잃고 무릎을 꿇은 실로 공포와 시름의 나날이었으니, '지금이 중세시대도 아니고, 역병이라니!' 해가며 설마 설마 하는 사이 이제 아주 매일 1000명 이상의 확진자와 2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있어 웃음이 저절로 가신다. 일찍이 전 지구인이 이렇게 오직 한 가지 새해 소망에 집중한 적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다행히도 과학자들의 맹렬한 노력과 유기적인 협력으로 역사상 가장 빠른 시일에 백신이 개발되었다고 하고 바다 건너 국가에서는 접종을 시작했다고 하니 희망이 조금 보이는 것 같긴 하다. 과학이 인류를 구원하는 현실이 이런 것인가 한다.

연초의 계획들이 용두사미가 되었네, 시간이 쏜 살같이 흘렀네 하는 타성에 젖은 말들이 또 찾아와 쓰임새 맞춰 이리저리 굴러 다닌다. 지난해의 후회 섞인 말을 올해 또 반복한다니, 인간은 결코 머리가 좋은 동물이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복 받고 행운 가득하라고 덕담을 돌리며 자주 못 만난 지인들을 챙겨 보는 일은 구태의연해도 의미는 있는 것같다. 어제의 태양이 오늘 떠오르지만 새해라는 구분선이 있어 못다한 묵은 과제들일랑은 접고 이제 새로이 계획한 일로 자신과의 약속을 일신해 보는 계기를 삼게하니 좋다.

생각해 보니 나는 지난 수년간 꼭 이 시간에, 똑같은 아이템으로 나와의 약속을 한다면서 마치 새로운 계획인양 메모까지 남기곤 했었다. 고민도 안해보고 그저 습관을 새 계획인 것처럼 밀고 나갔으니, 계획이라는 어원과 가치에 부합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고 있다. 진정 변화의 욕구도 없고 아이디어도 없나 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모르겠고..... 일단 익숙하고 일상이 된 일들을 또 기본으로 삼아 둔다. 이미
익숙해진 터라 더 지속하려는 것들이라는 건, 두서없는 책 읽기, 끈을 놓지 않겠다며 들여다보는 서푼 어치도 안 되는 영어 공부, 경전 사경 등인데, 이것마저도 이런저런 변수가 있어 손에 안 잡히면 마음이 콩 튀듯 팥 튀듯하며 심사가 불편해지는지라 무리는 하지 말자고 조금씩 범위를 줄인 나머지 이제는 더 물러 설 공간도 없어 그대로 가야겠다. 홀로 축소 조정하고 마음과 타협해 나가는 처지인지라 괄목할 발전은 없는 게 맞다.

책에 대한 애착은 늘 있다. 많은 책을 버리고 깊이 후회한 쓰라린 기억이 선연한데 이번 이사에서도 또 더 많은 책을 버렸었다. 책이 무거우니 버리기 힘들겠다는 걱정에 며느리와 손녀는 쓰레기 수거일, 목요일마다 원정을 와서 버리는 일에 힘을 보태기까지 해가며 버려댔다. 엄선해서 한번 추려내고, 재차 한번 더 거르고, 무려 네 번을 거르는 사이 책장 두 개가 넘는 책을 내다 버렸다. 

그 와중에 이것저것 인쇄해 둔 것들, 내가 쓰던 노트 나부랭이 그리고 손주들 어릴 때 보던 책들을 쌓아뒀던 뒷 베란다 책장의 것은 전체를 버렸다. 그중 나의 영어일기 노트가 일 순위로 뽑혀 나갔다. 그런데 버리려고 꺼내보니 그게 자그마치 노트 31권이었고, 2005년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걸 알았다. 2020년이 막 지나고 있었으니 꼬박 15년을 썼더랬다. 물론 일이 있거나 여행을 갔거나 아프거나 하면 상당 기간 못쓰기도 했지만 말이다.

2005년도 처음에는 장기전에 든다는 비장함으로 아주 두꺼운 노트로 시작했었는데 굵은 스프링이 걸리적거리고 쓰기가 불편해서 차츰 얇은 노트로 바꿔가며 썼었다. 나는 같은 모양의 노트를 10권 단위로 사서 사경도 하고 여러 용도로 쓰곤 하는데 그중 덜 예쁜 걸 일기장으로 썼다는 것은 곧 버리겠다는 마음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 버거킹에서 받은 공짜 노트도 썼었고, 지질히 눈에 좋다는 재생지 노트도 간간이 써보긴 했었다. 내용은 빈약하겠으나 31권의 노트 모양은 다채로웠다. 

초등학생 방학숙제 형식의 이 일기는 서두에 날씨 한번 언급해 주고, 그날 일과에 대해 브리핑하듯, ~했다, ~갔다, ~만났다 하는 식의 퍽 단조로운 문장들이었다. 기계로 짜깁기 한 글처럼 단순 소박해 보였다. 말이 꼬이면 가로 줄을 죽 그어 지운 위에 다시 덮어쓰기도 하고, 끼워 쓰기 부호로 길게 수정해 넣어주기도 해 가며 아주 무성의하게 쓴 것은 아마도 이 일기장을 그 누구도 볼 일이 없을 것이라는 편한 마음이 빚은 결과였을 것이다.

처음 쓰기 시작할 무렵에는 두꺼운 한영사전을 들춰서 단어를 찾아가며 쓰다 보니 한 페이지 쓰는데 1시간이 족히 걸렸었다. 어깨가 아프고 힘이 들어 시간을 줄여보려 애를 썼고, 그 이후 아이리버 전자 사전을 쓰면서 시간이 조금 단축되긴 했었다. 지금에야 컴퓨터에 사전을 띄워 놓고 쓰니 시간은 대폭 줄어들었다. 발전이라면 그게 발전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눈여겨보니 처음의 또박또박하고 단정하기까지 하던 나의 글씨체는 어느새 극한의 날림체로 변한 게 보였다. 내가 쓰고도 내가 잘 읽지 못할 정도이니, 왜? 예전 어른들 말씀으로 쭉지도 안 난 것이 날려고 한다던 형국으로, 성심껏 공부 삼아 할 요량은 않고, 공부 싫은 아이 숙제 해 치우듯 지면 때우기에 급급했던 마음이 여실히 나타난 것이었다. 공부에 꾀부리는 데는 어른 아이가 없구나 하며 체신없어 웃는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 들은 1일 삼성(一日三省)이라는 말을 금과옥조라도 되는 양, 한자로 써서 책상머리에 붙여 놓고 반성의 재료로 썼던 일기에서부터, 일기 쓰기가 방학숙제 단골이던 시절,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친구들끼리 지난 한 달 간의 날씨를 서로 물어가며 쓰는 귀여운 소나기 일기에 이르기까지 일기 쓰기는 고전적 글쓰기였다.

중학생이 되던 해 작은오빠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요즘의 다이어리 같은 하드커버의 근사한 일기장을 받은 기억은 늘 새롭다. 초록색 표지에 금박으로 상록수라는 한자를 일필휘지로 쓴 멋들어진 일기장은 내 신분이 몇 단계 도약하여 요즘 말로 퍽 럭셔리해진 느낌을 가지게 해 주었지 싶다. 그래서 아주 또박또박 새겨가며 일기를 쓰고, 매일 페이지 아래 잔 글씨로 쓰인 격언이나 상식 한 줄을 나만 아는 지식인양 챙겼던 기억들은 아름답다.
그렇게 일기는 추억과 그리움을 담고도 있지만 어른이 되고 난 후의 일기는 고통을 글로 도배하는 일이었음이었다. 잊으려 애쓴 기억이 문득 소환돼 고통을 잊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분노의 불씨를 후욱 되살리게도 하였으니 고통을 잊지 않겠다고 돌에 새기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이후 나는 그 분노의 노트들을 몇 장씩으로 분절하여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지난날과의 화해를 꾀하려 노력했다. 지금의 영어일기는 무색무취하고 감정이 없어서 좋다. 물론 감성을 실을 내공이 안되고, 고급한 수준에 연연하지도 않아서일 것이다.

두통에 휘둘렸고 기억력이 현저히 나빠졌고, 글씨 쓰기까지 불편함을 느꼈을 때 시작한 컴퓨터도 자주 써주지 않으니 기능을 잊기 일쑤여서 블로그를 시작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어중간한 실력으로 시작한 일기 쓰기였는데, 그 사이 15년이 지났고, 노트 30권 넘었다는 건 이제 알았다. 따문 따문 들쳐보니 소소한 일상을 긍정하려는 내 마음이 있었고, 과욕을 버리려는 마음도 보였다. 크게 위안을 주는 글은 아니었지만 더욱 나 자신을 책임져야 하리라는 마음을 챙겨 갖게는 했다.

2021년에는 처음의 마음으로 조금 차분하게 써보리라 하고 새 노트 하나를 꺼냈다. 32권째의 노트는 연습장과 메모 노트를 겸했으니 일기장의 자격을 못 갖춘 채 버려졌고, 이제 다시 꺼낸 새 노트 한 권을 제1권의 일기라는 새 마음으로 33권 째의 일기를 쓴다.
잘 쓰겠다는 욕심은 없고 착실하고 여일 하게 수행 삼아 써나가리라는 결심 아닌 결심을 해본다. 수행의 장애는 혼침(惛沈)과 도거(悼擧)이니, 혼침이란
깨어 있으나 잠든 것 같은 상태를 이르고, 도거란 마음이 들떠 산란한 상태를 말한다, 오직 나를 깨워서 나를 바라볼 일이다.                       

"If you want to be happy for a year, plant a garden; if you want to be happy for life, plant a tree"
(1년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정원을 가꾸고, 평생의 행복을 원한다면 나무를 심어라)
영어 명문장 쓰기를 시작했더니 한 꼭지 영국 속담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