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21년

TV 제단에서 울리는 화음

수행화 2021. 2. 10. 11:53

올해는 산책을 일과 삼아보기로 해서 하루에 한 번씩은 충실히 바깥출입을 하고 있다. 동네 한바퀴 걷는 일이 고작이지만 눈밭에라도 구를 듯이 얼굴 싸매고 중무장하고 나서니 남보기에는 웃길 일이다. 하지만 찬바람과 절대 친하지 않은 나의 사정이니 나름의 노력을 들여보는 것이다. 어제는 동네를 걷다가 벚꽃 가로수에 가지 치는 광경을 보았다. 인도를 따라  꽃구름 그늘이 드리워지면 찻길도 아랑곳 않고 오르락거리며 배회하던 그 길에서이다. 거기 사다리차가 웬일일까 해서 가까이 가보니 사다리 높이 앉은 기사님이 벚꽃나무 잔가지를 치고 있었다. 아니, 벌써! 봄을 준비하나!  고맙고 반가운 작업 중이라 조심히 지나갔다. 그래! 봄이 멀지 않았다. 봄, 따스한 그리움의 말을 입 속에 담아 보며 걸었다. 

간 밤에는 야밤을 도와 함박눈이 내리면서 한편의 몽환적 영상을 연출하더니.....
그 시간에 나는 아름다운 청년들의
사중창에 온 귀를 내 맡겨 몰입하고 있었고, 창 밖에는 안개인듯 눈인듯 소리 없는 눈까지 내려주어 건조한 내 마음을 흠씬 적셔 주었다.  TV 시청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나에게 이 남성 사중창 경연은 손꼽으며 기다리는 몇 안 되는 프로 중의 하나이다. 첫 경연이 펼쳐지던 몇년 전부터 그들의 노래를 내 폰에 담아서 혼자 듣고 또 들으며 다녔다. 노랫말이 좋아서, 천상의 소리같은 화음이 좋아서, 또는 그저 좋아해서......이후 좋아하는 성악가가 줄줄이 생기고 있다. 얼마 전에 일생 피아노 조율에 종사하신 초로의 조율사 분 인터뷰를 무심히 듣던 중, "도를 자리잡게 하려면 바로 옆의 레한테 물어보고, 또 파에게도 물어보고, 옥타브에게도 물어봐야 하고, 이 음들이 모두 오케이 해야만 도가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라고 하시는 말씀이 귀에 와 꽂혔다. 조율이라는 말의 의미에 더 이상 적절한 표현이 없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거리에 넘쳐나는 댓거리들, 목소리 큰 자가 이기고, 남의 목소리 무시하고 자기 소리만 질러대야 잘 나 보이는 발칙한 세상에 경종으로 보내고 싶어졌다. 하여 나는 타인의 음을 경청하며 자기 소리를 얹어 노래하는 사중창이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일이로다 싶어졌다.

음악이 우리 영혼에 물을 주어 그 습기가 감동으로 오래 마음을 적셔주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예기치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우연히 듣게된 노래에 눈물이 솟구치던 일이 적어도 두어번은 있어 잊지 못한다.  
파바로티, 열정이면 열정, 울림이면 울림, 감동이면 감동, 세기적 목소리의 이 테너에게 깊은 존경심을 보내보던 나에게 그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은 적잖은 상실감이었었다. 그의 사망 뉴스를 접한 다음 날 친구들 모임이 있어 신사동 부근의 작은 호텔에 무심히 들어간 나에게 놀라운 감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벽면 가득한 화면에 파바로티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고 웅장하고 서정적인 목소리가 넓은 방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얀 손수건을 꼭 쥔 모습에,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내미는 공경의 손에, 감동이 주체가 아니되었고, 파바로티 영상을 영원히 못 보기라도 할듯 슬프고 아쉬워 속절 없이 흐르는 눈물을 삼키느라 가슴 언저리가 아파 왔던 기억은 어제 일 같다. 

그리고 우연히 내 귀에 감미로운 충격으로 밀려오던 또 다른 노래가 있었으니, 20년은 족히 지난 어느 봄, 강릉 '축음기 박물관'을 방문한 날의 일이다. 박물관 관장님은 중학교 시절부터 축음기에 매료되어 일생동안 사재를 털어가며 진기한 축음기는 물론 여러 희귀품을 수집해 왔다고 한다. 커다란 레코드판 한 장에 달랑 노래 한 소절이 녹음되던 시절의 레코드판부터 에디슨이 발명한 최초의 전구에서 부터......개인의 열정이 이룬 진귀한 수집량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우리를 관장님은 작은 음악 감상실로 안내했었다. 100년이 훌쩍 넘었다는 대형 스피커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 후 스피커의 성능을 감상해 보라며 아주 어두운 조명 하에서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를 들려 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나는 음악이, 소리가, 폭포처럼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경험을 했고, 순간 오스스한 한기에 휩싸이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스피커가 방출해 내는 폭발적인 음은 폭포 세례라는 말 이외 달리 할 말을 구하지 못했고, 이 노래를 집에 가다 잊으면 어쩌나 하는 순간적인 조급함에 급한 대로 가사 한 구절을 손바닥에다 갈겨쓰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손바닥에 쓴 한마디의 노래,
'Time to say good bye' 
 
    

요즘은 트롯 보는 낙으로 산다는 친구들이 많다. 좋아하는 가수에게 무한 애정을 보내며 응원하고, 그 가수가  광고하는 식품을 사들이기도 해가며 터널에 갇힌 듯 답답한 시절을 잘 넘기는 것같다. 노년에 찾아든 강력한 팬심으로 세월을 한뼘은 거꾸로 살아보는 재미가 나쁘지 않으니 부디 팬심 잃지 말라고 말해 줬다. 그나저나 시청률 30%를 육박해 가며 전 국민을 TV 앞에 붙박아 두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하는 부정적 마음이 일다가도 심하게 어지러운 세상사 뉴스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이 채널에 마음을 붙여 위안 삼는게 백번 낫지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팬데믹 시대를 보듬어 넘기는 데 TV는 벗으로 구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건 맞다.

이 돌발적인 펜데믹의 혼돈 상황에 딱 맞춤한 '미스터리 신전의 미스터리'라는 소설에 관한 글을 읽었다. 저자는 이집트 투탕카멘 무덤 발굴에서 힌트를 얻어 이 책을 썼다는데, 현재의 지구에 대재앙이 덮쳐 모든 생명체가 사라져 버린 채  4000년 세월이 지난다고 한다. 이후 4022년에 지구의 유적 일부가 발굴되면서 2000년 전- 2021년 현재- 의 생활상, 사회상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에피소드를 줄거리 삼은 것이다. 모든 것은 가상이고 기상천외하나 묘사가 진지하여 웃음을 자아낸다. 장식장 위의 TV는 '대 제단' 이라 추정한다나! 방 안의 모든 것이 그 TV를 중심으로 배치된 것으로 보아 제단임이 분명하다는 설이 유력하다는 말은 듣고보니 그럴싸하다. 이어 양변기는 성스러운 항아리요, 그 위 물탱크는 '뮤직 박스'라는 등 등을 표현했다고 하니, 2021년 우리의 일상을 객관화해 보는 이 엉뚱한 발상이 참신하게 들리기조차 했다. 수년 전 '투탕카멘의 유물전'을 관람하고서도 아무런 영감도 없었던 나는 역시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본 사람이었다고 해야겠다.

비대면의 시대에 음악 듣고, TV 보며 불편 없이 시간을 쓰다 보면, 혼자 놀고 혼자 여유 부리는 생활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잠시 빠져드는데, '카톡' 하며 폰이 울린다. 열어보니 한참, 아주 한참 동생뻘인 친구의 배려가 배달돼 있다. 내가 깜빡 잊지 않게 사중창 TV 방영 시간을 재방송 시간까지 챙겨 오목조목 일러주는 알림장이 와 있는 게 아닌가! 가득한 책 소식이랑 엮어 간단 없이 배달되는 그녀의 작은 패키지는 카톡방에 공급되는 산소같은 보급품이다. 
수고를 마다 않고 신선함을 보내오는 젊은 벗도, 또 쓸말 아닌 말 없이 매일 아침 일념으로 문자를 보내주는 친구도, 자기 좋아하는 가수에게 투표해 달라며 진심을 다해 부탁하는 친구도, 모두 더불어 사는 즐거움이려니......비대면의 시절에도 더불어 평정심으로 살아가게 하니 고마워지는 마음이 우물처럼 깊어져만 간다. 

눈을 뿌리며 겨울의 서기를 충만하게 해 주는 하늘도, 죽은 듯 말이 없는 대지와 부단히 기별을 주고 받으며 자기들의 시간표를 챙길 것이다. 'Time to say good bye'를 마련해 두고, 하늘과 대지는 겸손하게 본분을 다하는데 우리는 어찌 마냥 손 놓고 우울하게 먼 산만 바라보랴! 우리 내면에서 침전해 버린 작은 기대와 다짐들을 흔들어 일깨워 건져 봐야 하리라. 투명한 봄볕에 내다 걸어 새삼스레 바라봄이 어떠랴 싶다. 혹 뿌옇게 흐려져 있다면 반들반들 잘 닦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