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중국

거대하고 맹렬하고

수행화 2008. 8. 28. 13:36

중  국

 

 1. 북경

 황하의 북쪽, 하북성의 중앙에 위치하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

 명대(明代)에는 국도를 지금의 남경에 두었다가
1420년 영락제가 이곳을 국도로 정하고 북경이라 칭했다고 한다.
장엄하고 화려한 궁전, 웅대한 만리장성 등 문화 유적은 중국인의 저력과 스케일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중국은 56개의 민족에서 98%가 한민족이고 2%가 소수민족으로 구성 되어 있다고 한다.
소수민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1가정 2자녀도 허용하고,
지폐에도 소수민족의 얼굴이 인쇄 되어 있었다.

 이곳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그렇게도 언급되던 땅이란 말인가?
 천안문 광장에 서서, 노란 바람이 가볍게 이는 광장의 인파 속에서 중국을 다 본 듯 감회에 젖는다.

 현대화의 거센 물결이 넘실대는 것이 범상치 않은 분위기이며
시내는 이미 외제차가 꼬리를 이어 달리고 있었고
초고층 아파트는 맵시있게 에어컨을 하나씩 매달고 위용을 자랑하는게
벌써 자본주의가 무혈입성한 지 오래인 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빨간 승용차를 탄 젊은 아가씨, 자전거를 타고 대로를 무작정 횡단 하는 아줌마,
목소리가 커서 엄청 신경을 건드린 비행기 앞 좌석의 젊은 여자,
사람을 보고도 그냥 달리려 하는 운전자, 인사성 없어 보이는 멀뚱한 얼굴의 행인들 등,
 나에게 심어진 중국인의 인상은 무례하고 파렴치해 보이기까지?

 그러나 북경의 전체적 이미지는 펄벅의 소설처럼 내게 친근하고 쉽게 닥아 서는 것이었다.
잠깐 본 느낌일뿐,

그러나 무릇 여행에서의 감회는 다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니 어쩌랴.

 '북경서 온 편지'를 다시 읽으면 다른 감회가 있으리라.


 천안문 광장. 멀리 모택동의 대형 사진이 보이는 것이 가히 역사적 공간이란 느낌이 난다.

 동서 500m, 남북 800m, 50만명을 수용 할 수 있다는 중국의 상징물.

 황성의 정면 현관이 나란히 있었고, 광장의 거의 중앙에 높이 38m의 인민 영웅 기념비가 있어 무거운 느낌이나 현재는 시민의 휴식 공간처럼 한가로웠다.

 섬찟하게만 느꼈던 광장에 서서 나는  세계화, 개방화 시대의 현주소를 읽은 듯 거창한 감정에 빠진다.

 

 천안문 동쪽의 역사 박물관. 원시 시대부터 혁명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중국 혁명과 역사 박물관.

 천안문 남쪽은 모택동의 사체가 안치된 모주석 기념당, 서쪽은 우리의 국회의사당에 해당하는 인민대회당이 있다. 인민대회당은 건물이 우리 의사당과 흡사 했다.

 

 북경은 도로나 건물이 규모가 굉장히 크고 시원 시원해 보였고 대중 교통도 이층 버스며 무궤도 전차등이 위엄 있는 도시의 얼굴을 상당히 모던하게 바꿔 주었다.

 그리고 그 운전자가 여자가 많았다는 것.
 
 

 천안문 광장 앞의 삼륜인력거. 뒤쪽에 두 좌석이 있고 좁운 골목에도 다녀서 편리하다고 한다.

 그런데 북경의 심한 황사와 심한 추위는 어떻게 견디지?

 북경의 운전자들은 정말 경멸스러웠다. 신호 무시는 그렇다치고 횡단하는 행인을 보고도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알아서 비켜 가라는 식의 막가파 운전을 하니...

 모두 자기본위같아 보이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행인은 행인대로, 자전거는 자전거대로 각자 자기 본위로 다니니 피장파장인가.

 

 베이징의 명동격인 왕푸징(王府井)거리.

 밤 거리의 풍경이 자유로워 보였고 홍등을 밝히고 늘어 서 있는 노천 포장마차가 운치가 있었다.나오는 길에 들러 보기로 했는데 저녁 10:00시면 불을 끄는 것이어서 아쉬웠다.

 이 거리는 明대 이후에 상업 지구로 만들어져 번창하였고, 淸조에는 현재와 같이 활기를 띄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 고유의 전통 예능인 써커스.

 대개 19세 미만의 아이들이라고 했는 데 어렸고 인간의 기술같지가 않아 보였다.

 온 몸을 엿가락처럼 휘돌리는 것이며 몇개씩의 접시를 한꺼번에 둘리며 움직이는 것이 가능이나 한 일인가?

또 하나의 불가사이, 초인적 능력...

 달에서도 보인다는 유일한 건조물, 또 인류 최대의 건축 잔존물이라고 하는, 총 길이 약 6000km에 달하는 장대한 성벽.

 만리장성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항상 북방민족의 침입과 계속 싸워 온 중국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한다.

  성벽은 반듯한 계단과 경사로가 반복 되어 있고 산의 능선을 따라 구비구비 이어 지다가는 멀리 산 모롱이를 넘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
장편의 서사시를 읽는 느낌이라면?

 

 현재의 형태로 쌓아 올린 것은 진의 시황제. 기원 전 221년의 중국 통일에 전후하여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각지에서 만들어지고 있던 성벽을 이어 맞추어 보강 했다고 한다.

 당시는 흙을 굳혀 만든 것이었는 데 현존하는 벽돌 구조는 명나라 때 몽고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장성을 강화한 것이라고 한다
.

 케이블 카가 운행해서 높이 올라가 볼 수 있어 좋았는 데...
 성벽이 보기에도 견고하고 비교적 깔끔한 데다 케이블 카로 오르니 진시황 시대의 건축물이라는 게 통 실감 되지 않았다는 것.

 숱한 희생으로 쌓아졌을 성벽이기에 만리장성은 거대한 무덤이라고 불리워진다고 하니, 진시황은 영원히 인구에 회자하는 것.

'집념'과 '욕망'의 대명사로.

 

  명의13능 (陵) 지하묘의 옥문. 공개된 정릉(定陵)의 석실문이다.

 지하 27m에 5개의 석실로 꾸며진 호화로운 지하 궁전은 명 3대 황제 영락제에서 마지막 황제 17대 숭정제 까지의 능묘. 정릉, 장릉, 소릉의 3곳이 발굴 되었다고 한다.

  정릉은 13대  황제 만력제와 2명의 황후가 매장 되어 있다고 한다. 구의 복제와 옥좌 등이 놓여져 있어 부장품은 근처의 자료관에 전시 되어 있다고 한다
.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 되어 있다고 하나 일반인이 보기에는 조금 빈약하고 썰렁한 것이었다. 실제로는 규모나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한 모양이다.

 

  전시된 명의 황후가 썼던 관인데 치장된 보석이 너무 곱고 화려하여 찍은 것. 관의 뒷 모습이다.

 명, 청 시대의 황성인 자금성. 이 또 한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됨.

 동서 720m, 남북 970m의 광대한 부지에, 700채가 넘는 건조물이 세워져, 일상 생활 용품, 보물 등 약 100만 점이 넘는 소장품이 진열 되어 있으며 대충 보아도 3~4 시간이 소요 된다.

  바닥이 모두 돌이라 열기가 상당 했다. 황사가 심했던 영향일까?

 주된 건물은 남쪽의 오문(午門)에서 북측의 신무문(神武門)으로 빠지는 중심선에 따라 남북으로 일직선 상에 줄 지어 있으며 모든 건물이 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아름답고 균형 있게 대칭으로 있다.

 남측의 외조와 북측의 중정으로 크게 나누며 외조(外朝)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의 3대 전과 거기에 계속되는 궁전으로 완성, 정치나 의식을 거행한 고궁의 중심이며 관광의 포인트이다.

 관리를 잘 한 것인지, 건축 기술이 뛰어난 것인지, 조금도 허술함이 없는데 마지막 황제까지 살던 곳이라니...
 

 문을 따라 가면 바라 보이는 부속 건물의 지붕. 아름다운 기와색과 황금빛 채색이 햇빛을 받아 위엄 있고 굉장히 단아 해 보인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잘 다듬은 옥돌로 깔려 있어 안정감을 더 해 주고 이 역시 마주 보며 멋스런 대칭이다.

 자금성 관람 시간 : 8 : 30 ~ 16 시 (동절기 15 : 30 )

 문의 앞 뒤 계단에는 머리가 9개인 용의 부조물이 많이 보이는 데 이것은 황제의 상징이라고 한다.

 금방 용틀임을 할 것 같은 모습에서 한때의 영화가 서려 있다.

 중정 입구의 담 벽에 새겨진 문양이 너무 섬세하고 세련 되어 눈길을 끈다. 조각이며 색상이 무척 기품 있다.

 건청문에 있는 중정은 황제나 가족의 거주지로 사용 되고 있던 장소. 현재는 주로 소장품이 전시 되어 있어 종표괸의 미술, 공예품은 꼭 한 번 볼 만하다.

 이 역시 좌우 대칭이며 고운 기와색과 아담한 정원이 깔끔하다.



2.  장가계 ( 張家界 )


 호남성 서북부에 위치한 중국 최초의 삼림공원으로 국내외에서 보기 드문 수려한 자연 경관을 지니고 있다.

 약 4억년 전 바다였으나 지구의 지각 운동으로 육지로 솟아 올라
오랜 세월 침수, 자연 붕괴 등을 겪으며 현재와 같은 깊은 계곡과 기이한 봉우리, 맑은 물의 계곡등 절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연 평균 기온은 16도 정도, 강수량 1200 ~ 1600mm. 이것이 장가계에 관한 일반적 상식이다.

 그런데 장가계 (張家界)란 지명의 유래가 궁금하던 중 남편이 귀한 정보를 알아 줬다.

 2,200여년 전 만리장성을 완성 시킨 진시황이 춘추전국 시대의 막을 내리고 중국을 처음 통일하였을 때,
패망한 전국칠웅(戰國7雄) 중 하나이며  한(韓) 나라 귀족이었던 장량(張亮)이
조국의 원수를 갚기 위해 유방(劉邦)을 도와 항우(項羽)를 이기고 진(秦)을 멸망 시켜 한(漢)을 건국 하게 되었다.
시황 건국 후 겨우 15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토사구팽(兎死狗烹)하는 정치세계의 비정함을 알았던 그는
한고조 유방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이곳 장가계에 와서 은거하고 후손이 길이 삶으로서
장씨 집안의 세계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은거지로서 너무나 적합한 지형이고, 선인(仙人)에 어울리는 절경이라 여겨진다.



 

 장가계 삼림 공원 입장 카드. 무단 입장을 막기 위해 입장객의 지문을 인식 시킨 카드를 발급 한다.

 전자 카드는 이 산골까지 찾아와 유용한 몫을 하니 바야흐로 전자산업이 지구를 평정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

 지문을 인식 시켰으니 당연히 양도도 안 되고 팔 수도 없으니 입장료는 새지 않는 셈이고 카드는 일회용이 되는 것.

 

 장가계와의 첫 대면은 "아", "와", "어머"....뭐 이런 것들이다.

 원가계는 산 정상 정도로 높게 엘리베이터가 운행 한다. 프랑스 기술로 만들었다는 설명.

 깜깜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다 갑자기 유리창밖에 나타난 풍경에 일제히 합창 하듯 "와...". 감격같은 것.
 
 멋있게 깎아 지른 바위는 푸른 나무로 띠를 두르고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카메라의 작은 화면이 어설프기 이를 데가 없다.

 

 산 아래 쪽 산책로는 울창한 숲으로 하여 푸른 그늘을 내리고 있고 걷다가 하늘을 보니 산 사이로 구름이 한뼘밖에 보이지 않고 높은 병풍산만 사면 가득이다.


 멋있게 깎아 지른 바위는 푸른 나무로 적당히 옷을 입어 맨살을 가린 것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강우량이 많다고 하나 계곡에 물이 적은 것은 이렇게 나무가 함께 살고 있는 탓이 아닐까 ?

 

 

 산 속에 또 작은 산.

 분재한 듯한 모습의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그림을 이루고 있고, 가까이 가면 사진과 같은 봉우리들이 하늘 높이 뻗어 있다.

 12만 봉이라나. 금강산 1만2천 봉의 노래가 무색하다.

 

 반자연 반 인공의 거대한 호수. 보봉호.

 배를 타고 40분 정도 초록빛 호수 위에 떠 있어 보니 옛 선인 (仙人)이나 된 듯, 잠깐 여유로와진다.

 보봉호를 지나면 관광객의 재미를 돋구려고 박수를 치면 소년이 나와 노래를 한 곡조 하는 것이 유치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런데 소년의 목청이 툭 트인 것이 보기보다는 제법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동굴,'황룡동굴'의 내부.

 총 길이가 10km인 종유 동굴이고 동굴 내 석순의 오묘함보다 지하 마을처럼 넓고 높은 것이 인상적이다.

 동굴 내부는 널찍한 계단이 있고 적당히 조명이 있어 다니기 좋았고 편도는 보트를 타고 움직여서 동선을 줄였다. 동굴이 깊으니 물이 많아 보트로 움직임.
 
 조명이 조금 유치한 것이 눈에 거슬렸다.사진은 화려하지만.

 장가계, 원가계 모두 한국인이 큰 고객이다.

 관광 버스가 하나 서면 일제히 천원을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가방도 천원, 모자도 천원, 천원에 모두 목숨을 건다.

 이 산골이 중국 시장 경제의 실험장이고, 또 자본주의 안착의 모습이 아닐까 ?

 

 우리에게서 지금은 사라진 풍경, '구두닦이'

 맹렬함에서 중국 여인을 누가 따르랴. 에피소드 하나.

 우리 애들 아빠가 권유에 못이겨 신발을 1000원에 닦기로 했는 데 아줌마가 너무 열심히 닦아서 2000원을 준 것이 화근.

 다른 일행이 구두를 닦겠다고 하니 한 발에 한 명씩 닦길래 할 수 없이 1인당 1000원씩으로 후하게 주었더니 한 쪽에 2000원씩 달라고 따라오며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빚쟁이처럼 큰소리로.

 정나미 떨어지는 풍경이다. 아직 중국인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 ?  

 

  장가계는 1000원 쇼핑의 잔재미가 있다. 물론 터무니 없이 부르니 흥정에 짜증이 나긴 하지만 잘 고르면 그런대로 쓸 수 있는것도 있다.

십자수 쌕        2000원
페브릭 가방     1000원
구슬 염주        1000원

기타 사진에 올리지 않은 나일론 모자는 3개 1000원에 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