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9년 10

김 영하 '여행의 이유'를 읽고...

김 영하 작가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는 출간 후 꾸준하게 베스트셀러 지위를 유지하여 올해 판매부수 최고를 찍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작가는 영감의 원천을 여행에 두고 있지 않나 싶게 여러 글들에서 여행 에피소드나 독특한 외국살이의 경험들을 쓰고 있어 즐겨 읽곤 했었다. 특히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는 시칠리아 살아보기 쯤 되는 글로서, 현지인의 이웃이 되어 장도 보고 밥도 해 먹는 나날들이 손에 잡히듯 그려져 잔잔한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모두가 모두를 다 아는 정겨운 마을, 시칠리의 평화로운 감상이 잊히지 않고 있어 이번 '여행의 이유' 출간소식을 접하고는 그냥 봐야하는 책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작가는 생각으로 일하는 직업이라 가벼운 머리에 지혜만 담으면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으니, 방랑하..

노트북/2019년 2019.12.10

'후회 병동'

'후회병동'은 일본작가 '카키아 미우' 가 쓴 소설이다. 죽음을 앞 둔 환자들이 좀 더 평온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도우게 되는 의사의 일인칭 소설이다. 비유와 유머가 있어 수월하게 읽히나 그 의미는 두루 무겁게 다가온다. "간다가와 내과에서 근무하지 곧 10년이 된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많은 이곳에서 이미 500명 가까운 사람의 임종을 지켜봐 왔다. 그것만으로도 경험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환자 앞에서는 아직도 긴장하고 책임이라는 무게에 짓눌리다 못해 급기야 공포로 바뀌는 때마저 있다." 여의사 로미코는 열심히 지식을 쌓고, 신기술을 익혀 환자의 병을 치료하고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이 의사의 의무라 여기며 열심히 환자를 돌보아 왔지만 환자들은 별 호감을 갖지 않는다. ..

노트북/2019년 2019.10.24

혼자 있는 시간의 힘

무우 속에 바람이 숭숭 들면 헤깝하게 가벼움이 느껴진다. 코에 바람 넣겠다고 이리저리 쏘다니다 보면 가슴 속이 무우속처럼 숭숭해진다. 어디 실한 기둥에 붕붕거리는 마음을 매달아야겠다 싶을 때 책 끼고 앉는 것만한 것이 없다. 순간 순간 집중에 어려움은 있어도 짜투리 시간을 제법 줄이게 되고, 주구장창 놀며 쉬며 뒹굴진 않는다며 마음에 위안까지 얻는다. 부질 없는 강박감은 일종의 허영심이라 누가 타박해도 할 말은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이끌림이 있는 제목이라 읽으려다 미루던 책을 집어 들었다. 일본인 사이토 다카시가 저자라고 알았는데, 같은 제목으로 한 상복 씨의 저서가 또 있어 두권을 나란히 읽게 됐다 '사이토 다카시'는 도쿄 대학교 법학부와 대학원 교육학 연구과 박사 과정을 거쳤고, 메이지 대..

노트북/2019년 2019.09.29

그리울 때면 언제나~~

'링링'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태풍이 지금 서해를 지나는 중이라고 한다. "쏴아아 쏴아아" 소나기 퍼붓는 소리가 요란해서 내다 보니 거센 바람이 나무를 공격하며 머리채를 사정 없이 쥐흔드는 소리다. 무성한 잎새들로 뜨거운 여름을 자랑스레 버티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무력하게 부대끼는 모양이 아주 안쓰럽다. 가지를 꼭 보듬고 유연하고 지혜롭게 견뎌서 부디 꺾이지는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라 보았다. 풍속이 하도 빠르니 비구름 모을 말미도 없는 모양인데 마른 바람만으로도 위세가 이렇게 등등하다. 붉어진 가을 대추 한 알에 태풍 몇개가 담겨 있다고 하는 시인의 성찰처럼 그저 이 거센 바람이 가을의 전령이리라 여겨 보기로 한다. 딸이 두 아이를 데리고 여름 방학 두 달을 나고 떠난 우리 집도 한바탕 태풍 쓸고 ..

노트북/2019년 2019.09.08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아무런 정보 없이, 어떤 선입견도 갖지 않고 책을 읽는 것도 신선한 재미가 있다는 걸 알았다. 책을 사랑하는 이의 추천이라면 앞 뒤 잴 일이 없는 것이다.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주인공 아서는 소설 '오베라는 남자'에서 오베의 캐릭터와 살짝 닮은듯도 하고, 장소를 옮겨가며 에피소드를 쌓아간다는 점에서 '창문 넘어 도망 친 100세 노인' 의 여정을 연상케 하여 낯 익은듯, 독특한 재미를 주었다.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긴장감이 섬세한 문장들과 밀고 당기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어 잘 만들어진 가족 영화 한편 본 느낌도 든다. 아서 페퍼는 은퇴한 열쇠 수리공이다. 아내 미리엄과 아들, 딸과 40년 간 잔잔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렸고 1년 전 아내를 잃었다. 아내가 세상의 전부인양 살아 온 그는 ..

노트북/2019년 2019.04.16

새벽의 약속 - 로맹가리

로맹가리의 자전적 소설, '새벽의 약속'은 이렇게 시작한다. "끝났다. 빅서 해안은 텅 비어 있고, 나는 넘어진 바로 그 자리에 누운 채로이다. 바다 안개가 사물들을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지평선에는 돛대 하나 보이지 않고, 내 앞에 바위 위엔 수천마리 새들이 있다. 다른 바위엔 물개가 있다. 아비 물개는 지치지도 않고 파도 위로 솟아 오른다......마흔 네살에 나는 아직도 어떤 본질적인 애정을 꿈꾸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이것이 전부다. 이제 곧 해안을 떠나야만 한다. 너무 오랫동안 바닷소리를 들으며 그곳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나는 조금만 더 귀를 귀울이며 그대로 있어보려 한다. 항상 금방이라도 대양이 내게 하는 말을 알아 들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듣는..

노트북/2019년 2019.02.28

'파친코' - 이 민진

재미 작가 이 민진은 나에게 낯선 작가는 아니다. 신문 칼럼을 통하여 그녀의 프로필과 글을 접한 것이 오래전이고, 당시의 글들은 나에게 신선한 잔상을 남기고 있어서 새 소설 출간이 반가웠다. 7살에 부모님의 이민으로 미국, 뉴욕에 정착해 성장했고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되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소설을 썼다. 장편소설 '파친코'는 2017년 전미 베스트 도서 10선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파친코'는 1910년, 즉 한일합병의 해로부터 1989년에 이르는 격동의 우리 근세를 배경으로, 재일 동포 4대가 살아 낸 고난과 애환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1910년 부산 영도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양진의 부모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딸을 언청이 훈이에게 시집보낸다. 훈이는 장애를 가..

노트북/2019년 2019.02.06

바다의 기별

회색 겨울은 아무래도 정들지 않는다. 눈이 흣날리고 쌓이는 환상적인 풍경이 아니라면 차거운 겨울비라도 뿌려 선뜩한 겨울맛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조금 배부른 투정을 하고 싶다. 메마른 대지에 트릿한 대기를 숨 쉬는 지금은 속수무책으로 봄만을 기다리게 된다. 봄은 어디메 쯤에 기별을 보내고 있을까? 기별과 기다림을 내내 생각한 탓인지, 김 훈 에세이, "바다의 기별'이 눈에 확 들어 왔다. 몇권 읽지 않은 내 독서이력으로 김훈 작가의 명문장은 매료되기에 충분하여 나의 분류법으로 그분의 글은 믿고 보는 편에 들어있다. '바다의 기별' 첫 페이지."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노트북/2019년 2019.02.01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책 속의 책

"제가 읽고, 잊어버리고, 다시 기억한 책들에 대한 호기심, 여러분을 그 책들로 유혹하기 위해 이 글들을 적어 보았습니다."지면을 통하여 익히 아는 뇌 과학자 김 대식 교수님이 저자라 관심도 관심이었는데, 우선 표지 디자인이 산뜻하고 모던한데다 세련된 편집에 멋이 담뿍한 페이지 구경이 의외로 좋았다. 책 앞 뒤에 저자 프로필이 없어 내가 찾은 책이 맞나 잠시 갸우뚱해지며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떨궈야했다. 1부 삶의 가치를 고민하라. 2부 더 깊은 근원으로 돌아가라. 3부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라. 4부 과거에서 미래를 구하라. 5부 답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라. 6부 더 큰 질문을 던져라. 는 주제로 깔끔하게 6부로 분류돼 있고, 지면의 여백도 여유로워 편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은 했다. 그런데 1부를..

노트북/2019년 2019.01.18

새해 결심, 운명의 날.

소임을 다한 지난 해 카렌다를 폐기물로 내 보내면서 내 시간 한 더미가 뭉턱 빠져 나간 걸 실감한다. 또한 빳빳한 새 카렌다에 올해의 시간이 깨끗하게 담겨 있다. 새 것이 주는 산뜻함에 이런저런 메모를 하며 공란을 채운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2019년은 기해(己亥)년으로 황금돼지의 해라고 하며 행운을 기원하는데 돼지띠인 나는 남다른 각오가 있어야지 않나 싶은데 별 감흥이 없다. 나날의 무탈함과 소소한 성취를 바라며 또 감사하며 지낼 마음 이외 떠오르는 게 없다. 연초에 100수를 건강하게 누리고 계시는 김 형석 교수님의 일상이 TV에 방영되어 장안의 화제가 됐다하여 다시보기로 찾아 보았다. 글쓰기와 강연에 손을 놓지 않으시면서 지극히 절제된 생활을 하시는 정갈한 모습이 감명을 주는데, 건강유지를 위하..

노트북/2019년 2019.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