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2년 14

'이별의 어떤 의식'

지난 가을은 짧았으나 참으로 설레게 화려 했다. 발치에 찬 기운이 슬며시 깔리던 지난 11월 나는 또 하나 친구를 잃었다. 일체의 장례 의식을 생략할 것이며, 모든 절차가 끝난 후에 모두에게 자기의 죽음을 알리라는 당부로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고, 죽음을 기다렸던 친구. 이승의 누구에게, 어떠한 빚도, 마음의 빚까지도 남기지 않고 싶어 했던 마음을 헤아려 보려 애쓴다. 저 세상으로 보냈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 그냥 허무하게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어여쁜 모습, 고운 심성으로 성실한 삶을 살았던 친구에게 병마가 들이닥친 일이 일단 억울하고, 투병 중에도 모든 치료를 잘 견뎌냈고, 환자로서의 수칙을 그렇게 잘 지켰으며, 무엇 하나 건강 상식에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은 친구에게 실로 어이 없고 가..

노트북/2012년 2012.12.10

"너무 추울 땐 추억에 젖으세요"

폭설이 내려 외출을 마다하고 눈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갇혀 있다는 것이 때로는 아늑한 기분에 젖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 시간이다. 신문 기사 한 줄이 눈에 들어 온다. “너무 추울 땐 추억에 젖으세요”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이 감정은 실제로 몸도 따뜻하게 하여 추위에 좀 더 잘 견딜 수 있다는 것. 다소 추상적인 개념을 영국의 어느 대학 연구진이 실험을 통하여 입증해 보인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실렸다고 한다. 그렇다.’ 오늘처럼 눈발이 날리는 휘뿜한 날에는 따뜻한 기억을 불러보자. 지난 주에 ‘멀리 저희들 집(?)’으로 떠난 아이들(영훈. 영지)의 지문이 잘 찍혀있는 유리를 닦으니 통통 튀던 목소리들이 분주하게 떠오른다. 아침에 눈 비비고..

노트북/2012년 2012.12.06

"패티 김의 고별 공연"이 내게 준 의미.

내 생애 처음 본 ‘패티 김 콘서트’가 곧 그녀의 고별 공연이어서 내 설렘과 아쉬움은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성남 아트센터의 돌 계단에 앉아 밝음이 서서이 잦아드는 자리에 깔려가는 어스름을 지켜 보며 사소한 낭만을 생각했다. 순간 야외등이 깜빡 켜져 오가는 사람들을 휘뿜한 배경으로 처리 하면서, 장면은 연극무대처럼 공연을 기다리는 이 시간 또한 내게 멋진 선물이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도 좋겠구나 하는 사치한 망상도 피워 보았다. 참으로 설레인다는 신선한 감정을 느껴본 것이 얼마만의 일이었던가 !아들이 내게 준 콘서트 티켓에는 신선함이 옵션으로 포함된 것이었었네. 나는 패티 김의 노래, 깊은 울림이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늘 좋아해 왔다. 패티 김은 1958년에 데뷔를 했다고 했으나, 내가 그녀를 알..

노트북/2012년 2012.10.05

재치있고 사려 깊은 부모

"Brilliant and thoughtful parents" 미국의 소셜미디어 ‘레딧(Reddit)'에 올라 온 글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읽으며 받은 잔잔한 감동, 그 따스함이 식을까봐 지면에 남겨두고 싶어졌다. 생후 14주 된 쌍둥이 형제를 데리고 처음 비행기를 탄 젊은 부부는 쪽지를 붙인 과자 봉지를 기내의 승객들에게 돌렸다고 한다. 사연인즉, 아기들을 데리고 처음 비행기를 타게되는 지라 아기들이 비행 중 혹시 다른 승객들께 불편을 끼칠까봐 미리 양해를 구하는 내용으로서, 과자 봉지에 사연을 붙여 일일이 돌린 것인데 이를 인상깊게 본 어느 승객이 올린 글을 신문에 소개한 글이었다. 봉지에 붙은 글은 부모가 아닌 쌍둥이 아기들이 일인칭이 되어 승객에게 드리는 인사말로서 너무 재치 있고 귀여워 보였다...

노트북/2012년 2012.09.25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김 영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김 영하 씨가 보내는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으로 아름다운 휴양지, 영화 대부의 무대로 등장했던 곳, 삼면이 각각 아프리카와 스페인과 이태리를 마주 보고 있다는 것 정도의 지리적인 상식밖에 없는 나, 태풍이 올라 온다는 뉴스는 접고 따스한 바람이 있을 것같은 책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 본다. 몇 년 전 어느 날 일간지에 김 영하 작가가 교수직을 버리고 해외에 가서 지낸다는 기사를 접한 기억이 있었는데, 이후 시칠리아 여행을 하여 이처럼 멋진 책을 세상에 내보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이루었고 가졌으며, 남들이 부러워 마지 않는 잘 조율된 시계처럼 정확하고 여유 있게 돌아 가는 일상이라지만 영혼의 1밀리미터도 고양시키지 않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마치면 ..

노트북/2012년 2012.09.24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지금은 조금 열기가 식었지만 이 어령 선생님의 글이라면 무조건 찾아서 읽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먼저 접한 책,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시작으로 "바람이 불어 오는 곳, 이것이 서양이다"를 거쳐 "축소지향의 일본인"... 나는 소박한 애독자로서 맹목적으로 읽고 있었고, 그것으로 나의 지적 허영심을 가득 채웠노라고 혼자 배불러 하기도 했었다. 나의 고3 시절, 몹시 열정적이시고 신선한 수업을 하시던 국어 선생님이 계셨다. 팍팍한 수업 중에도 늘 책을 얘기하셨으며, 교과서 밖의 세상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전하려고 고심하시던 진취적이신 분이셨다. “시선을 멀리 두라” “전교 몇 등, 서울대 입학…뭐 이런 것보다 더 먼 미래를 보라!, 책을 읽어 넓은 세상과 마주 보라……” 그리고 어느 날 당시 출판된 이 ..

노트북/2012년 2012.09.10

사진 속 세상 읽기.

여름은 내게 언제나 독서의 계절이었다. 모두들 떠나는 휴가를 떠나지 않음으로, 딱히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자제하는 편이이기에, 노는 입에 염불하듯 책장 넘기는 것이 좋다. 나이 들어 시간이 많을 때 읽어 보겠노라고 꽂아 둔 책도 많건만 나는 자주 도서관에 가서 이런저런 책을 빌려다 본다. 서가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책 제목을 읽어 보기도 하고 –정말 기발한 제목들도 많다 – 이 책 저 책을 뽑아서 훑어 보다가 두어권 씩 빌려 오곤 한다. 그러다 내 시야에 들어 온 제목.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하루” 무료해지려는 나에게 뭔가 말해 줄 것 같은 제목에 이끌리고, 사진을 담은 페이지가 멋지기에 근사한 사진 구경이나 하며 눈도 쉬어 볼 겸 빌려 왔다. “리지앙에서 라다크까지” 라는 부제에 맞춰 베이징을 시..

노트북/2012년 2012.09.07

'인연' 최인호 에세이.

‘내 영혼에게 가만히 가자고 속삭이는 순간’ 첫 페이지를 펼쳐 눈에 들어 온 말이다. 소년같은 웃음으로 가족 이야기를 즐겨 쓰던 작가의 글이 비장하게 들려 조금 슬퍼진다. “점잖은 사람들은 점잖게 숨지며 그들의 영혼에게 그만 가자고 속삭인다. 임종을 지켜보고 있던 슬픈 어린 벗들이 숨이 졌다 아니다 말을 하고 있을 때 그처럼 우리도 조용히 사라지세나. 눈물의 홍수나 한숨의 폭포도 없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알린다는 것은 이별의 기쁨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 영국 시인 '존 던'의 시를 인용하면서 시인은 스스로의 영혼에게 죽음은 이별이 아니라 타이르고 있다. 이제 그만 가만히 떠나자고 영혼에게 속삭이고 있다니.....적막이란 가슴에 새소리가 쌓이는 것이라 말하는 작가의 고독이 바로 읽혀지니 슬프다. 작가가 투..

노트북/2012년 2012.08.30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오랜만에 정 채봉 시인의 수필집 한권을 읽었다. "풀잎은 왜 나에게는 꽃을 얹어 주지 않았냐고 불평하지 않았다. 풀잎은 왜 나는 지천에 널려 있는 평범한 존재냐고 투정하지 않았다. 해가 뜨면 사라져 버리기는 하였지만 이슬방울 목걸이에 감사하였다. 때로는 길 잃은 어린 풀무치의 여인숙이 되어 주는 것에 만족 하였다. ..... 어느 날 산새가 날아와서 검불을 물어 갔다. 산새는 물어 간 검불을 둥지를 짓는데 썼다. 그리고 거기에 알을 낳았다. 산바람이 흐르면서 검불의 향기를 실어 갔다. 무지개에까지.“ 풀잎의 겸손하고 선량한 향기는 무지개에게로, 또 내게로... 전율과도 같은 가벼운 현깃증이 실려 오더니 머리 위로 서늘한 비가 내린다. 풀잎은 내게 낮은 목소리로 작은 성찰의 시간을 구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노트북/2012년 2012.07.28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현재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는 책, 혜민 스님은 2000년에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받았으며, 하버드 대, 프린스턴 대에서 학위를 받은 후 현재 메사추세츠 주에 있는 '햄프셔 대학교'에서 종교학 교수로 재직 중이시며 트위트 상에서 수만의 팔로어를 가진 ‘가장 영향력 있는 트위트리어’이시라는 특이한 경력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음을 애써 다스리려 들지 말고 생각을 멈춘 채 그 마음과 친해져서 조용히 지켜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말씀이시다. 자신을 관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면, 나의 의식이 약간 뒤로 물러나는 듯한 느낌, 머리 뒤에서 내 마음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잘 살피라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 관계는 난로처럼 대해야 합니다. 너무 가깝..

노트북/2012년 2012.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