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5년 18

인간의 이유기

인간은 일생을 통해 두번의 이유기를 갖는다고 한다. 모유를 먹으면서 자라 치아가 나기 시작하면 첫번째의 이유기에 들어 간다. 갖은 이유식을 거쳐 비로소 어른에 가까운 식사를 하게 된다. 그때 아이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심적인 고통을 겪을 것이다. 지금껏 밀착해 있던 엄마와의 공간적 거리감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싶다.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 가면서 정신적 이유기를 겪는다고 한다. 독립된 인간으로 홀로 서기 위한 고통을 겪어 간다는 말이다. 경중(輕重)의 차이는 있으나 누구나 이 과정을 지나 비로소 인간으로 바로 선다고 한다. 그러기에 자식은 어느 기간부터 의타심을 버려야 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개체로서 아이를 존중하고 먼 발치에서 바라봄이 좋을듯하다. 그러나 자녀 수가 줄어듦에 따라 서로가 서로에..

노트북/2005년 2012.12.03

아이의 말은 시가 되어

규영이는 고모와 노는 것을 많이 좋아 한다. 올망졸망 유난한 잡동사니가 많아서 더 즐거운 모양이다. 고모에게는 밴드에 꽃이 찍힌 시계가 있다.(위의 사진) 시계가 잘 가지 않는다고 고모에게 종달종달 묻는다. 고모 : "세영이가 물어 뜯어서 그래." 규영 : "세영이가 왜 꽃을 먹었지?" "꿀을 빨아 먹었나?" "세영이는 벌인가?" 시계줄 속의 꽃은 어느새 생명을 가져 꿀을 머금은 꽃송이가 되어버린다. 아이의 말은 시가 된다. 시인은 아이의 마음이 되어야 비로소 시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같다. 아이의 말은 사뿐하고 맑은 금속성으로 통통 튀어 와 내 귓전에 내내 매달려있다.. 언어가 가지는 뉘앙스에 탁월한 감각을 발휘하는 규영은 아이가 가지는 직관력으로 연방 빛나는 언어 생활을 꾸리고 있다. 성장하는 과정은..

노트북/2005년 2012.12.03

'다빈치 코드'를 읽고.

13-3-2-21-1-1-8--5 오, 드라코같은 악마여!(O, Draconian devil !) 오, 불구의 성인이여 (Oh, lame saint !) 1-1-2-3-5-8-13-21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h) 모나리자 (The Mona Lisa ) 위의 암호문을 아래의 문장으로 해석한다는 게 상상이나 되는 일인가? 작가의 어마어마하게 광대한 지식과 과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시종 압도되어 쫒기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마치 스릴러 영화에 빠져 든 느낌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한 숫자가 그앞의 숫자 두개를 더한 합과 같다는 피보나치 수열이나, 연속된 두 숫자를 서로 나누어 보면 그 몫이 거의 1.618 이라는 황금분할의 이론이 등장하고, 루부르 박물관, 웨스트민스터 사원 ..

노트북/2005년 2012.12.03

앎을 아끼는 아름다운 마음

'만약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 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50일 만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따듯한 봄볕에 쬐어 말린뒤, 여린 아내를 시켜 백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내 친구의 얼굴을 수 놓게 하여,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玉)으로 축을 만들어 아마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그 사이에다 이를 펼쳐놓고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뉘엇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요즈음에 읽은 정 민 교수의 '미쳐야 미친다' 에 실린 글이다. 정조 시절 이 덕무(1741~1793)의 글. 지독한 가난으로 어머니와 누이가 영양실조로 얻은 폐병으로 죽고, 처참한 가난과 역경 속에서..

노트북/2005년 2012.12.03

'Out of mind, Out of sight'

딸은 임시 거처를 마련하여 오붓하게 들어가 있다. 집을 결정 하더니 저희들 집으로 가겠다며 늦은 밤에 주섬주섬 챙겨서 아주 컴퓨터까지 가져 가며 소위 이사 같은 걸 했다. 깔끔한 보금자리에 참하게 꾸며 살게 하고픈 나의 작은 소망은 잠시 접어 두기로 했으나 쓸쓸하기만 한데, 그래도 저희들은 좋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는 광에서 잠만 자던 딸의 그릇이며 집기들이 아주 조금이나마 빛을 보게 되고, 신혼 살림 연습도 해 보고, 또 자주 통화하고 보게 되어 작은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빈 딸 방으로 깨우러 가기, 불 꺼 주러 가기, 뭐 물으러 가기...등을 하려고 들어 잠깐씩 난감하기도 했었지. 그런데 일요일인데도 딸이 없어 시집 보낸 것이 여실히 실감 되었다. 물론 어김 없이 아들 가족이 와서 아이들..

노트북/2005년 2008.08.25

'가 보고싶은 곳' 머릿 속에 하나 더 추가

딸과 사위의 신혼 여행 문제는 우리에게 상당한 issue였다. 무슨 탐험대인양 둘이 의기투합해서 우리에게 생소한 '보라보라'섬으로 간다고 하니 말이다. 더구나 서울에서는 패키지가 되지 않아 일본에 가서 그쪽 일본인 신혼 부부팀과 합류해서 떠나니 무리하기짝이 없는 것이었다, 세계지도를 펴 놓고 타히티를 찾고, 거기서 또 보라보라를 찾아 보니 아... 남태평양 한 가운데 망연히 떠 있는 작은 섬의 모습이라니... 우려반 걱정반으로 우리는 일주일을 보냈고, 정작 본인들은 멋진 추억을 챙겨 온 모양. 그리고 적당히 그을린 건강한 모습에서 말 그대로 "They're on cloud nine" 이라는 표현이 적절 햇다. 우리는 안도하고 덩달아 여행의 무용담을 궁금해 여기며 분위기가 up되는 것이다. 비취빛 물감을 ..

노트북/2005년 2008.08.25

출발선에 서 있는 딸

단풍이 곱다고, 설악산에 첫눈이 내렸다고, 서정주씨 생가 마을에는 국화축제가 열린다고... 가을 길손이고 싶게 하는 뉴스가 파다하지만 나는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 가을을 지내고 있다. 딸이 드디어 짝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시간과 자유를 조금씩 양보하며 도란도란 정을 쌓아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는 즐겁다. 지금은 긴 마라톤 코스의 출발선에 서 있는 이아이들은 설레임과 애틋함의 빛나는 날을 살고 있다. 천생연분이란 천번의 생을 거듭하며 윤회한 후에 만난 귀한 인연을 일컫는 말이다. 인연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인연에 충실하라는 불경의 가르침이다. 그렇게 지워진 인연을 우리는 공들여 가꾸어야함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들꽃 한송이도 꽃을 피우려면 햇빛도 바람도 비도..

노트북/2005년 2008.08.25

"내 이름은 김 삼순'을 읽은 느낌

요즈음 장안의 화제가 연속극 "내 이름은 김 삼순"인 것같다. 연속극을 못 봤는데 책이 있어 읽어 보면서 현재를 새삼 실감한다. 연속극의 소재로 적합한 신데렐라성 스토리이고, 주인공의 직업이 '파티쉐'와 고급레스또랑의 젊은 오너인 것이 일단 여자들 구미에 맞게 설정 되었으며, 특히 여자 주인공의 프로필이 모든이의 공감을 자아낸듯 싶다. 외모 지상주의인 요즈음에 여자 주인공은 살이 오동통하게 쪘는데도 전혀 기죽지 않고 자신 있게 살아 간다는 것이 크게 어필한 이유인 것이다. 거기다 사이 사이 맛있는 케잌 소개가 추임새 역할을 하며 재미를 뿌린다. 언어가 젊어 다소 경망해 보이나 생동감 있고, 손익계산 없이 순수하게 접근하는 사랑의 방식이 우리가 추구하고픈 점일 것이다. 진한 감동이나 깊은 슬픔이 주는 무거..

노트북/2005년 2008.08.25

신간 '달의 제단'을 읽고

신문의 신간 안내에서 조금 특이한 느낌이 있어 사 본 책인데 나는 읽으면서 몇가지 면에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작가가 아주 젊은 여성이라는 것과 아울러 고문과 현대문을 아우르는 엄청난 어휘력에 놀랐고 또한 경상도 지방의 제사 문화의 접근과 사투리의 묘사는 너무 사실적이라 현란한 감마저 들었다. 국불천위의 제사를 모시는 광영스런 가문이었으나 지금은 쇠락한 종가 효계당이 이야기의 무대로 그려진다. 이야기의 화자는 이종가의 1/2 적자이며 할아버지의 남은 유일한 혈육,손자이다. 종가의 의례와 전통을 목숨처럼 여기는 할아버지의 극단적인 집착의 삶과 부자연한 출생과 성장에서부터 할아버지와는 불협음을 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비춰지는 손자와는 결국 비극적 사건을 만들고 종가의 문을 닫게 되고 만다. 손자에 의해 해..

노트북/2005년 2008.08.25

200%의 노력

200%의 노력 5월 11일자 중앙 일보에서 읽은 200%의 노력이란 칼럼이 오래 마음에 남아 있다. 피아니스트 김용배 씨의 글이다. 연주자가 새로운 곡을 받아 이해하고 연습하여 음악적으로 완성하는 시기는 차라리 행복하단다. 오늘보다 내일은 나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연습만 하면 되니까. 그러나 그곡을 어느 정도 완성 했을 때부터는 고통의 연속이란다. 현재의 실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나태하지 않고 지리한 연습을 해 나가야 하는게 더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서 연주회 날이 가까워 오면 온갖 악몽에 시달리고 신체적 고통이 동반되는 등,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하니... 예술가의 고뇌를 새삼 알게 하는 글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100%의 노력을 쏟았는데 50%밖에 보여 주지 못하였다" "그러면 200% 준비하라"..

노트북/2005년 2008.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