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8년 12

2018년은 과거 속으로

또 한 해가 2018년이라는 한 묶음의 시간 다발이 되어 과거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제야의 타종 현장 중계도 그저 이벤트 하나 보는듯 담담하기만 하다. 무미건조한 공기가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같은 따분한 기분을 달래고 추스려 책상 앞에 앉았다.하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낙관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곧 하게된다. 모르면 몰라도 해가 바뀌어 가는 걸 지켜보는 이 시간만큼은 누구나 경건해지고 소망을 생각하며, 미래에 대한 크고 작은 기대를 마음에 담아 보기 때문이다. 그런 진정성으로 365개의 하루를 공평하게 받아든다. 그렇게 새해를 희망적으로 시작한다. 일년 전 오늘 가졌던 나와의 소박한 약속을 점검해 보려고 올해의 내 일상을 혼자 반추해본다. 달랑 몇 조각의 그림으로 설명이 충분하리만치 단순한 것이 보인..

노트북/2018년 2018.12.31

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 가세요- 멋진 노년 이야기.

언제부터인가 신문은 답답한 뉴스 일색이라 읽는 일이 스트레스가 돼 버렸다, 오늘 아침도 심드렁하게 아침 신문을 넘기는데 사진 한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78세 ‘걸 크러쉬’ 할머니, 펠로시, 트럼프와 설전 후 인기 치솟아…..” 빨간 코트에 선글라스 낀 근사한 여인 사진에 따른 기사 제목이다. 미국의 여성 하원의장 펠로시가 여배우처럼 훤칠해서 놀라고, 더구나 입심 좋은 트럼프와 토론은 마치고 나오는 장면이라 하니 더욱 멋져 보였다. 당당한 태도로 토론을 압도하여 인기를 끌었다고 전하면서 아울러 오렌지색 막스마라 코트와 아르마니 선글라스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고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어쨌거나 내 관심은 78세 나이에 이렇게 멋진 모습일 수도 있다는 데 있었고,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자태에 매료되어 사진..

노트북/2018년 2018.12.14

가을 낮의 단상

가을이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매의 눈을 하고 시간의 길목을 지켜본들 그 종종걸음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산천을 태우려 들던 뜨거운 열기는 어디로 빠져 버린 것일까? 가로수가 가을물을 들이는 것도 하룻밤 사이로, 계절도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자꾸 닮아가는 것만 같다. 어제는 하늘이 너무 높아 가만히 집에 있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고, 어물쩡 하는 사이 가을 하나를 또 잃을 것같아 남편과 목적 없이 그저 나서기로 했다. 집을 나서며 며칠 전 친구가 가볼만한 카페를 일러 주어 거길 가보자고 해가며 일단 내비에게 길안내를 맡겼다. 올해 들어 양평 쪽으로 나들이 간 기억이 없어 강 바라볼 생각에 미리 머릿 속이 시원해졌고, 먼 산마루에 구름이 폭죽처럼 터저 나와 길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했다. 그..

노트북/2018년 2018.10.13

'타샤튜더' - 'still water'

나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 않는다. 여름이 남긴 자투리 더위까지 안고 가려는 가을비는 차분하고 반가운 손님이다. 비가 내린다는 건 늘 장면의 변화를 예고하고 지금 우리는 가을 길목에 있다. 나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비 오는 날은 외출을 잘 하지 않는다. 간단 없는 빗소리를 듣거나 빗줄기가 뿌옇게 장막을 드리우는 대기를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도 우중에 차를 몰고 영화를 보러 나섰다. '타샤 튜더' 몇년 전 '타샤튜더의 정원'이라는 책을 읽고,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에 깊이 매료 되었고, 얼마간 그녀의 일상을 따라잡아보고 싶은 막연한 소망을 가져 보기도 했었다. 그녀의 스토리가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미처 못 본채 넘어 갈까봐 마음이 초조해진 건 당연하다 해야겠다. 영화는 일본인 감독에 의해 만들..

노트북/2018년 2018.10.08

남아 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나는 소박하게 여름나는 걸 좋아한다. 방바닥에 엎드려 쿳션이랑 방석이랑 책이랑 엎치락 뒤치락해가며 더위에 무심한 태도를 보이면 더위는 멋쩍어 슬쩍 한걸음을 물리고, 나는 그 틈을 즐기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신선놀음은 못되어도 이 소극적 피서법이 나에게 적절한 만족을 주어 내가 즐기는 여름나기 법이었다. 적어도 이번 여름의 기록적인 더위를 만나기 전까지는. 요모 조모 책들은 들춰 보긴 했지만 휘적이는 수준이고 그나마 더위 타령을 타고 다 흘러들 가버리고 말았다. 이제 가을 기별이 오고 조금씩 두꺼운 옷을 찾아 입으니 비로소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지나버린 시간을, 붙잡지 않아 나의 인생이 되지 못한 기회들을 생각하게 하는 조금은 쓸쓸한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읽었다.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19..

노트북/2018년 2018.09.23

휘바 핀란드, '진정한 심플라이프'

달은 기울기 위해 차오르는 것일까? 심플라이프를 외치고, 미니멀리즘을 예찬하는 글들에 어느듯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걸 보면 문명한 삶과 풍요로운 위식주를 위해 질주하느라 우리는 많이 숨이 가빠진 모양이다. 우리 마을에 TV 가 몇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인간이 최초로 달 착륙하는 장면을 TV로 보겠다고 우리집 마당에 사람들이 가득하던 때가 있었다. (찾아 보니 1969년). 투도어 냉장고가 최신이라며 들여 놓고 닦고 또 닦으며 행복해 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의 소박했던 지난 삶이 진정 심플한 삶이 아니었을까? 북유럽의 생활 방식이 인구에 회자하고, 그들의 뛰어난 디자인 감각을 높이 사는 분위기가 들불처럼 번져 간다. 핀란드의 논픽션 작가, '모니카 루꼬넨' 이 쓴 '휘바 핀랜드'라는 책이 내 시계에 들..

노트북/2018년 2018.07.14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 - 맨해튼 엄마들의 세계

'Primates of Park Avenue ' -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 뉴욕에 가 보지 않아도, '파크 애비뉴'라는 지명은 익히 알고 있다. 주로 뉴욕 상류층의 부유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거지인가 여겼을 뿐으로 당연히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실로 그곳 거주민은 뉴욕 인구의 0.1% 해당되는 극소수라는 걸 알게 됐다. 작가는 그들을 최고의 서식지에 사는 영장류 중 으뜸이라 분류하면서 제목을 붙인 것 같다. 작가 '웬즈데이 마틴'은 예일대에서 문화 연구와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30대 중반에 파크 애비뉴 70번가에 둥지를 틀어 맨해튼 주민이 된다, 대략 1㎢ 넓이의 맨해튼 어퍼 이스트에 거주하는 최고 부자들의 생활 방식과 행동 양식들을 관찰자적 입장으로 쓴 것으로 소설 같으나 소설 아닌 글이라 큰 관..

노트북/2018년 2018.06.03

'Hillbilly Elegy', - 힐빌리의 노래를 읽고.....

누군가에게서 책을 추천 받거나, 책을 나눠 보는 일이 나는 굉장히 즐겁다. 지인이 'Hillbilly Elergy' 라는 제목도 생소한 책을 건네 주어 고맙게 받아 들었는데, 읽으면서 상상 이상의 울림이 있어 나도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어졌다. '힐빌리'란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지칭하고, 대체로 교육 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의 미국의 시골 백인으로 통한다고 한다. 저자 'J.D. 밴스'는 '러스트벨트'에 속하는 오하이오주의 미들타운에서 태어나 켄터키주 남동부의 탄광촌인 잭슨을 오가며 자란 힐빌리의 자손이다. 가난과 폭력, 약물 중독 등 우울한 환경으로부터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국 최고의 지식인 사회, 상류 사회에 진입하기까지 저자..

노트북/2018년 2018.05.07

'눈치 보는 나, 착각하는 너'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 는 말에서 보듯, 눈치란 드러나지 않게 분위기를 지레 알아내는 영리한 삶의 방식이다. 제목에서 얼른 피로감이 느껴지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 언어임에 틀림이 없어 끝까지 읽었다. 글 쓴 이는 박 진영이라는 사회 심리학자이다. 사회 심리학이란 다른 사람과 더부러 살아 가야 하는 사회에서 피부로 느끼는 많은 궁금증들에 대해 연구하여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실생활에 유용한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각기 달리 형성된 자존감, 정체성, 자기 통제력같은 자신의 문제와 사회 생활을 통하여 발생하는 외로움과 소외감, 눈치 보기등의 심리를 연구하여 과학적 논리를 갖춘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겠고 재미도 있겠다 싶다. "소외감이나 외로움을 느낄 때 활성화 되는 뇌 영역이 신..

노트북/2018년 2018.03.21

'대리 만족의 달콤함'

시간을 도둑 맞은 것같이 1월이 지나가 버렸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추울 것같아서, 눈 조금 쌓인 때는 미끄러울 것같아서, 알레르기 코감기가 꽁무니를 붙잡아서......참 가소로운 이유들로 칩거 비슷하게 어물쩡 거리는 사이 1월은 문을 꽝 닫고 사라져 버렸다. 1월은 말 그대로 두 얼굴의 달이다. 1월(January)의 어원이 고대 로마의 신 'Janus, 야누스' 에서 왔다고 한다. 야누스는 문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문의 앞과 뒤를 살피려 양면에 얼굴을 가졌다고 하여, 과거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1월의 말이 되었고, 우리 마음에도 그 의미가 전해 온다. 내일의 날씨 예보를 보고 "음, 영하로 뚝 떨어지네" "저녁 나절에 눈이 온다나봐" "강이 두껍게 얼어 붙었다는군" 하는 식으로, 나는 겨울을 액자..

노트북/2018년 2018.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