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0년 9

인터넷때문에 사라져 가는 것들

나인 투 파이브 비디오대여점 집중력 예의바른태도 CD 전화번호부 편지쓰기 휴가 프라이버시 사실(fact) 폴라로이드카메라와 필름 백과사전 졸업앨범 스트립쇼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에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생활에 밀접한 것들이 사라지거나 바뀌는 것들에 대해 쓴 기사를 얼마 전에 보고 생각이 좀 많아졌다. 이메일로 업무를 처리하는 일도 가능해 졌으니 나인 투 파이브의 근무패턴이 달라지는 것이고, 세계 각국이 인터넷으로 연결이 되어 있으니 어디를 가도 업무에서 완전한 해방이 어려워 진정한 휴가도 없다는 점 공감이 간다. 25년 전 미국에서 설립되어 3000여개의 점포를 뒀던 비디오 대여 체인점 브록버스터도 지난해 파산했다고 하니 비디오 대여점도 과거의 일이 되었고, 인터넷에 성인 인증만으로 접속하여 얼마든지..

노트북/2010년 2012.12.03

법정 스님의 '서 있는 사람들'

1978년에 출판된 법정 스님의 책. 책 서문에서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둘레에는 부쩍 ‘서 있는 사람들’이 많다.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차 안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계층에서 제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사람이 많다. 똑같은 자격으로 차를 타도 앉을 자리가 없어 선채로 실려 가는 사람이 많다.” 그 선량한 이웃을 생각하며 글을 썼기에 ‘서 있는 사람들’ 이라고 제목을 붙이셨다고 하신다. 1978년에 출간 된 책인지라 누렇게 변한 종이에 세로로 촘촘히 쓰인 글이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함부로 버려졌던 소중한 것들을 기억의 방에서 찬찬히 꺼내보는 마음이 되어 읽었다. 젊은 시절에도 스님께서는 중생의 삶에 대해, 급변하는 사회에 대해, 또 변질 되어 가는 불도량에 대해 그 특유의 맑고 잔잔한 목소리로..

노트북/2010년 2012.12.03

거울이 된 개와 거울에 비친 우리.

"뜨거운 여름 낮에는 햇볕을 받는 흙에서 삭정이가 타는 냄새가 났고 저녁의 공기는 나무들의 향기로 가득 찼지. 밤이 깊어지면 그 향기에 물비린내가 겹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그믐밤에도 먼 냄새는 이 세상에 가득 찼어, 나는 가끔씩 밤새도록 그 먼 냄새 속을 쏘다녔어. 그런 밤중에, 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었어, 별들을 쳐다보면 무언지 와글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귀 기울여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어. 이 세상을 가득 메운 이 먼 냄새가 별에서 오는 것인가 싶어서 별을 향해 콧구멍을 쳐들어도 별로부터는 아무런 냄새도 오지 않았어. 그래서 또 들판을 마구 달렸는데, 아무리 달려도 별들은 가까워지지 않았어." 영혼이 깨끗하고 한 없이 섬세한 누군가가 읊고 있는 서정적 밤 풍경 같은 이 글..

노트북/2010년 2012.12.03

배움의 우주에 별을 띄우고.

우리 세영이는 얼굴도 더 없이 예쁘지만 동그랗게 튀어 나온 이마가 그렇게 예쁘다. 엄마가 읽어 주던 “마빡이”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을 들고 와서는 페이지를 넘겨 가며 아주 큰 소리로 내게 읽어 주어 깜짝 놀라게 하던 아기, 글자도 모르면서 한자도 틀리지 않게 또박또박 읽어 주었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았으리! . “오늘이 너희 엄마, 아빠 결혼 기념일이야” “그럼 우리는 다시 엄마 뱃 속에 다시 들어 가야 돼?” 당연하고도 진지하게 물어 오던 그 천진한 시간을 지나고…. 예쁜 이마 내 놓으면 좋아라하는 할머니를 위해 현관문 들어 서면서, 머리띠로 머리카락을 좍 밀어 넘겨 올백을 만들면서 하는 말, “할머니 소~원”. 우리 마빡이 세영이가 학교엘 갔다. 입학식에 맞춰 옷을 한 벌 사 입혔다. 평소에는 옷 갈아..

노트북/2010년 2012.12.03

구슬이 꿰어져 보배되듯...

우리 규영이는 손재주가 남 다르고 또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늘 좋아 한다. 따문 따문 바느질하여 만든 핸폰 걸이를 선물 받은 건 까만 옛 일이고, 비즈를 꿰어 멋스헙게 만든 반지와 팔찌셋트는 자랑 삼아 몇번 착용하고 나서기도 했다. 터키블루빛으로 샛깔도 예뻐 수제 악세사리 기성품에 손색이 없다. 겨우 아기 손 면한 그 작은 손으로 깨알같은 알갱이를 집어 꿰고 또 꿰어 만들었으니 신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종이접이로 만든 부채는 누가봐도 수준급으로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을 하고 노는 것이다. “이건 할머니 선물이야” “고마워, 정말 너가 만들었어?” “너무 예쁘다. 꼭 가게에서 산 것 같네.....“ 야무지고 꼼꼼하게 완성한 것이 여간한 솜씨가 아니라 선물을 받을 때는 너무 놀랍고 기특하여 칭찬을 아낄 ..

노트북/2010년 2012.12.03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_ 엘리아스 카네티

나에게 있어 모로코의 기억은 멈춰버린 활동사진의 장면처럼 박제된 채로, 꿈결인 듯, 잠결인 듯 설핏한 기억들이 파편처럼 부스러져 나뒹굴고 있었다. ‘모로코와 낙타와 성자’는 딱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의 배합이라 제목에 이끌려 읽어 본 책이다. 엘리아스카네티라는 글을 쓰는 사람 같고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이방인의 객관적 시선으로 차분하게, 그리고 군데군데 애정과 연민을 담아 아주 아름다운 문체로 잘 써 내려 간다. ......낙타 시장에서 흥정 되어지는 낙타, 죽음을 예견하고 발작하는 모습. 아무 언어를 몰라도 알라는 들린다는 시장 거리. 글 써 주는 사람. 그 사람 앞에 온 가족이 진지한 얼굴이 되어 앉아 있는 장면. 여행자에게 무조건 취직을 부탁하고 추천서를 써 달라고 매일 막무가내로 조르는 청년. 세헤라..

노트북/2010년 2012.12.03

영화 'Letters to Juliet'을 보고.

영화 한편으로 모처럼 눈 호사를 했다. 쥴리엣의 생가가 있다는 도시 ‘베로나’. 어쩌면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이 도시가 영화의 주인공인지 모르겠다. 잘게 부서지는 부드러운 햇살 아래 보이는 도시의 붉은 지붕, 햇빛과 시간에 풍화 되어 안으로 깊어진 그 그윽한 빛깔은 우선 깊은 울림으로 가슴을 뛰게 한다. 그런데 사랑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도 특이한 봉사 활동이 있단다. 사랑의 사연을 써서 ‘줄리엣의 발코니’에 붙여 두면 쥴리엣의 비서라고 불리는 봉사원들이 그 편지를 모두 수거해서 읽은 후 그에 적절한 답장을 보내준다는 아주 낭만적인 봉사 활동이 있었다. 실제로 베로나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이라면 ‘베로나‘는 진정 사랑이 넘치는 멋진 도시다. 베로나를 여행하던 작가 지망생 소피는 ‘쥴레엣의 발코니’에서 우연..

노트북/2010년 2010.12.03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스-영적 세계로의 여행>

그늘을 찾게 되고, 방바닥의 찬 느낌이 좋아질 무렵이면 나는 책 읽기가 즐거워진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누웠다 엎치락뒤치락 뒹굴어 가며 긴 소설을 읽으면 여름이라는 계절이 마음에 들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희뿌옇게 새는 새벽을 맞는 것도 좋고, 비 오는 날이면 빗소리를 배경 음악 삼으니 그것도 좋아한다. 아들이 읽어보라고 한참 전에 가져다 둔 책인데 차일피일 시작을 미루다가 더위가 문지방을 넘나 드니 비로소 읽기 시작한 책, ‘타나토노스’. 프랑스의 젊은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이다.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딤 1969 달에 첫발을 내디딤. 2062년 사자들의 대륙에 첫발을 내디딤. 2068 영계에 첫 상품 광고 등장.' 타나토노스란 그리스어 타나토스(Thanatos:죽음)..

노트북/2010년 2010.09.01

이한권의 책, '무소유'

법정 스님의 입적과 함께 범람하던, 스님을 칭송하던 그많은 말들은 시간 속으로 급격히 사라져 갔다. 전 생애를 통하여 보여 주신 가지런한 삶. 그 삶 자체로도 말 없는 가르침이다. “수의도 만들지 말라. 관도 만들지 말라. 사리를 수습하지 말라. 내 이름으로 나왔던 모든 책은 절판해라. 나의 것이라고 남은 것이 있다면 ‘맑고 향기로운’ 재단에 줄 것이며, 내 머리맡의 책들은 아침마다 나에게 “스님, 신문이요” 하며 갖다 주던 소년을 찾아 주면 좋겠다…” 스님의 성품이 여실히 담긴 유언, 이 얼마나 간결한 삶의 마무리인가!. 그러나 막상 몸 하나 뉘이는 관조차 없이 평소 입으시던 가사를 이불 삼아 훠어이 불길 속으로 사라지시는 광경은 차마 똑바로 바라 보기 힘이 들었다. 눈만 뜨면 세상은 가혹하게 욕망을 ..

노트북/2010년 2010.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