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앨범 242

태안반도에서. 1박 2일

더위를 힘들게 업어 넘긴 연유일까, 이 가을 산천이 유난히 곱고 찬란하다. 옷을 껴 입으면 따스한데 나이는 껴 입을수록 오스스하다. 서글픈 증세에는 여행 처방이 묘방이지 싶어, 청춘의 기억이 가물거리는 70년지기 벗들끼리, 사부작 사부작 가을 가운데를 가르며 걸었다. 태안반도 주변 발길 수월한 곳, 천리포 수목원, 신두리 해안 사구, 수덕사, 해미읍성... 으로. 천리포 수목원의 숲은 소슬하고 유순했다. 매표소 지나 솔 숲 오솔길을 들어서면 탄성 이외의 말을 잠시 잊게 된다. 곧 초가인듯 초가가 아닌 오두막 집이 연못 건너 아련하다. 진정 소박해서 아름다운 정경이다. 해질녘이면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를 것만 같다. 천리포 수목원 안내판이 낙관 찍어주는 포토죤이다. 이 곳이 푸른 눈의..

가을 보내기

미처 마중도 하기 전에 이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었다. 가을은 천지를 노을빛으로 물들이며 깊어져만 가고, 우리의 아쉬움은 습관처럼 가슴을 파고 든다. 나뭇잎들은 어떻게 아디지도 아름다운 소멸의 방식을 알아 냈을까? 가을색은 무성했던 여름의 추억만큼이나 다채롭고 오묘하다. 지는 잎새가 너무 아까워 집어 들어 코에다 대어 보곤 한다. 가을 내음이 담담히 스며 있다. 나뭇잎이 머금었던 시간은 함부로 나뒹굴며 영원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의 시간들이 함께 구르는 것을 보는 일은 슬프다. 감정 지수가 마이너스를 향해 급강하 한다. 어쩌나? 더 깊은 가을에 풍덩 빠지다 보면 플러스로 반전되지 않을까? 가을 마중, 또 배웅이 필요해진다. 미룬다는 것은 늦어지기 마련인 법, 더 미룰 것 없이 우리는 가을을 배웅하고자 의..

4월에 - 보림사

목련의 생애는 짧다. 그리고 생을 마감하는 일은 처절하고 고통스럽다는 걸 보여 주려 한다. 그러나 그 짧은 생은 고고하고 찬란하다. 생애 최고의 순간에 있는 목련을 보림사 경내에서 보았다 실낱같은 비가 이리 저리 흩어지던 오후, '보림사' 도량에서 만난 자목련.... "백목련이 지고 난 뒤 자목련 피는 뜰에서 다시 자목련 지는 날을 생각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시인은 읊었는데, 지는 날을 왜 미리 앞당겨 걱정하는지 모를 일이다. 지는 목련잎을 보는 것은 애잔하다. 그러나 목련이 지는 모습까지 어여쁘기를 바라는 건 내 가당찮은 욕심이리! 지금 한 폭 그림이 되어 내 사진에 와 있음이 행복이므로. 올 봄 우리의 사찰 순례지는 전남 장흥 '보림사' 였다. 다섯 시간 가까이 버스를 탔..

겨울 신륵사의 고요

강물을 바라 보고 싶을 때, 씻어 내리고 싶은 그 무엇이 안에 응어리져 있을 때, 걸으며 막바람만 훠어이 훠어이 쐬고 돌아 다니려니 어쩐지 속이 달래지지 않을 때, 신륵사로 발길을 돌릴 일이다. 작고 소박한 위안이 있다. 신라 시대에 창건된 고찰이 이렇게 근거리에 있다는 게 참 고맙다. 여주 봉미산 기슭이라 하지만 강을 바라 보는 흔치 않은 절집이라 엇비슷한 산세의 풍수와 확연히 다르다. 강월헌 강월은 고려 공민왕의 왕사(王師)인 나옹선사의 당호로서 선사는 여강이 휘도는 물가에서 화장되어서, 그 화장터에 석탑과 6각형의 정자를 건립한 것이 강월헌이라 한다. 관광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광장같은 구역을 가로 질러 일주문으로 향한다. 일주문은 번다한 것들 벗어나 절로 향하는 길을 눈짓으로 가리킨다. 템플 스..

변산 반도 둘러 보기.

파다하던 단풍 소식이 살짝 기울어지려던 즈음(11월7~8). 변산반도를 다녀 왔다. 죽마고우와 함께 하다 보니 웃음 반, 구경 반 덩더꿍 휘돌았고........즐거웠다. 내 자리에 와 앉아 그 시간들 반추하며 일구는 내 작업. 귀찮아야 할 이 일이 초이스할 사진이 적어 의외로 싱거우려 한다. 하지만 괜찮다. 가을 변산에 갈 이유를 또 가졌으니까. 전북 고창군에 소재한 백제 위덕왕 24년 (577) 검단 선사와 신라의 국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금산사와 더부러 전라북도 내 조계종의 2대 본사이다. 유 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책에 크게 문화적 충격을 받아 그의 답사 코스를 뒤밟아 다니던 해가 있었다. 돌이켜 보니 1994년의 일, 20년 전이었다. 이후 두번은 ..

서울 숲을 걷다보니.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서울 숲에서 가을의 여러 얼굴을 바라 보았다. 걷기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는 날은 걷는 날이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바라보던 숲길, 동네 공원 산책하노라며 무심하던 내 시선에 닥아 선 여린 숲. 수채화 한 폭에 내 발길은 멈추고 그 가을 빛 배경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작은 연못도 가을을 담고 있고. 눈이 부시지 않은, 한편 겸손한 늪의 풍경도 있다. 어린 숲도 가을을 성심껏 준비하고 있어, 나는 자꾸 뒤돌아 보며 걷게 된다. 은행잎 노란 빛을 나는 너무 좋아 한다. 되바라지지 않은 노랑. 열매를 품은 품위 있는, 그러나 화려한 노랑이 그렇게 좋다. 야간에 조명을 쏘아 올리나보다. 숲이 만들어 내는 소실점은 늘 먼 그곳 같다. 소실점은 현실감이 없어 그림 속같다. '바람의 언덕..

버스 투어를 나선 나의 하루

친구들과 하루 나들이로 관광 버스투어를 해 보았다. 정암사며 부석사를 거치고, 기차 타고 이름도 생소한 역에 내려 보기도 하는, 일정이 쉽지는 않았다. 1. 정암사 정암사의 적멸 보궁은 우리나라 4대 보궁 중의 하나이다. 보궁이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이어서 불상을 따로 조성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사자산의 법흥사, 상원사의 적멸보궁, 정안사, 양산 통도사의 네군데 보궁이 있다. 월정사의 말사로서 선덕 여왕 14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고 말해 주는 단정한 안내판. 몇번을 다녀 온 곳이나 여름은 이번이 처음인데다, 버스 안에서 먹은 약이 가벼운 구토와 어지럼증을 가져 와... 숲 그늘에 내 어지럼증을 부려 놓고 싶은 마음에 가파른 숲길로 내달렸다. 고려시대 칠층석탑으로 보물 410..

운주사, 생각을 불러 오는 절.

구름이 머문다는, 이름도 아름다운 운주사엘 다녀 왔다. 언제부터인지 운주사는 나의 묵은 그리움이었다.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에 자리 잡은 사찰로 신라말 도선 국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고 하나 조성 연대가 대략 고려 중기 12세기 정도로 평가된다고 한다, 천불 천탑이라는 전설같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불국토를 꿈 꾸던 영화로운 시절이 있었나보다. 현재는 21기의 석탑과 93기의 석불만이 남아 있다고 하나 그래도 꾸미지 않은듯 꾸민, 소박한 매무새를 간직한 절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다 선채로 돌부처가 된 것일까? 애잔한 모습을 한컷 찍으며 내 그리움의 상념을 살짝 건네 준다. 우선 '생각하게 하는 절'이다. 키가 늘씬하게 큰 이 멋쟁이 탑이 9층 석탑이라고 한다. 탑신 사이사이 아로 새긴 꽃도 어..

5월을 기다린 남이섬

많은 동남아 관광객이 시간 내어 들러는 곳을 이제야 찾는다니 참 철 늦었다는 생각이 들던 오월 아침, 이상 기후로 한냉한 기류가 봄이 오는 길목을 자꾸 어지럽힌다고 하지만, 어김 없이 봄은 닥아 와 있다. 비를 품은 하늘은 햇살 가리려 하나 바람은 어쩔 수 없는 훈풍이다. 2002년 '겨울연가' 이후 아시아권 관광객이 급증하더니 최근에는 북미, 유럽, 중동관광객의 발걸음도 잦아지고 있다는 섬. 2006년 3월 1일 나미나라공화국으로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독자적인 국기와 애국가, 화폐, 여권, 우표를 발행하는 미니 국가로 탈바꿈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화나라로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고 한다. 남이섬을 '나미나라 공화국'이라 부르짖는 안내가 유머러스하게 보이더니, 입장료 처리는 '나미나라 비자 발급'으로 통하..

투탕카멘, 비밀의 방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 제 18왕조 제 12대 왕의 신분이다. B.C 1316년 9세 나이에 등극하여 18세까지 9년간 재위했다고 한다. 투탕카멘의 유물이 발굴되면서 널리 알려진 인물인가 한다. 젊은 나이에 죽은 그에 대한 많은 의혹, 타살설, 저주의 설... 그러나 그는 전차 사고에 의한 부상의 감염 쇽크로 죽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왼쪽 다리의 골절로 보아 전쟁이나 사냥을 위해 고도의 전차 훈련을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는 것이다. 1922년 11월 26일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 1873~1939)와 재력가 카나번 경은 3300년 동안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투탕카멘의 무덤을 열었다. 놀랍게도 1703점의 유물이 매장 되어 있었고, 도굴되지 않은 유일한 왕묘로서 당시 파라오의 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