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 쁘람빠난(Prambanan)사원. 왕궁. 발리 (Bali)

수행화 2008. 8. 28. 13:45

인도네시아 (Indonesia)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이며 이스람국, 인도네시아의 거대한 불교 유적이며
세계 7대 불가사이의 하나라고 하는 보로부두르 사원(Borobudur)

직항 노선이 없으니 발리를 경유하여 가야만 하는 다소 까다로운 여정이나 ,
화산재에 묻혀 1000년 세월을 잠자고 있다가
지금 우리가 그 얼굴을 본다고 하니 얼마나 감격한 일인가...

그 보도부드르는 우리의 방문에 맞춰 시원한 비로 화답하여
열대림 속의 사원은 발 아래 평원을 아득한 안개로 덮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마치 홀로 우뚝 하늘 아래 '유아독존(有我獨存) 의 모습으로.

인도네시아는 지금이 우기에 접어 들어 간간이 비를 뿌리고 있었다.
우기는 대개 10월~3월, 건기는 4월~9월까지라고 한다.
건기에는 일교차가 굉장히 심하고, 우기에는 게릴라성 소나기가 하루에 서너번씩 내려 과일이 흔하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한반도의 8배크기로 13,677개의 섬으로 구성 되어있고, 6000여개의 섬에 사람이 살고 있고,
인구 1억 6,700만(세계 5위)에 300여 인종이 어우러져 산다고 하니 그 다양성은 알 만한 것이다.

오스트렐리아와 아시아 대륙 사이의 적도에 위치하여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나누어지며
연 평균 28.5°c 로 연중 고온다습하여 벼농사는 3모작이라 푸른벼와 누런벼가 함께 자라고 있었다.

호텔에서 별 모양의 희귀한 과일을 보고 조금씩 맛 보았는데 지나 가는 길에
그 과일이 떨어져 소복히 쌓여 있는게 보였으니
애초에 기아에 시달릴 필요는 없어 보였고, 그래서 더 종교 생활에 심취 하는지...

인도네시아에는 국내 간에도 시차가 있어 동부, 중부, 서부로 나뉘어 있고,
동부의 이란자야는 우리나라와 동일하고
발리와 킬리만탄, 슬라웨시등은 우리나라보다 1시간이 느리고,
쟈카르타와 쟈바와 수마트라는 2시간이 느리다.
다양성의 다른 한 면이다..


1. 보로부두르 사원

 세계 최대의 불교 유적, 보로부드르와 힌두교 유적의 정수라고 하는 프람바난 (Prambanan) 사원이 있는
족쟈카르타(Yogyakarta)는 특별한 도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고
옛 쟈바의 중심지이며 현재 왕이 거주하는 왕궁이 있었다.

8세기 경 쟈바를 지배 했던 전형적 불교 왕국 사이렌드라 왕국에 의해 세워졌다가, 왕조의 몰락과 함께
흙 속으로 묻혀 버렸다가 붕괴의 위기에 처한 것을
1814년 이 지역을 통치하던 영국인 스탬포스 래플스 (T.s Raffles)의 발굴 지시로 발굴,
1968년부터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복원 되었고 1983년 2월에 새롭게 태어 났다고 한다.

족쟈카르타는 우리나라로 보면 경주같은 도시라고 하니 왠지 고도(古都)의 분위기가 느껴지나  
이색적인 것은 젊은이가 탄 오토바이가 많았고 도시 인구의 40%가 대학생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우리의 가이드도 한국에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으면서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고
현실 감각이 남 다른 것 같았다.
우리의 관심 밖, 세계의  모든 도시들이 다 나름대로 열심히 발돋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

보로부두르 사원은 총 면적 1.5ha에 35m 높이로,약 100만개의 안산암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태는 피라미드와 같이 아래에서 위로 좁아지며, 4층까지는 4각의 기단으로 되어 있고,
그 위로 3층은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어,4각과 원이 입체적 공간을 이룬다.
그리고 최상층부에 돔 형태의 거대한 중심 스투파가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1층에서 4층의 한변의 길이는 120m, 각층은 2m 넓이의 회랑이 있고,
2층은 부처님의 일대기가 1460면의 돌에 부조 되어 있고,
상층부 원형의 단은 3층으로 되어 있고, 아래서부터 32, 24, 16개의 종모양 스투파가 있어 가히 장관을 이룬다.



 안개에 쌓인 숲을 내려다 보며 앉아 있는 사원의 상단부,
저 숱하게 많은 스투파(stupa:佛塔) 마다 마다에 한 분씩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많이 훼손 되어 거의 목부분이 없거나 코가 변형되는 등 온전한 모습은 드물었다. 그러나 화산재 속에서 이 정도나마 복원 돤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인류의 문화재 보호를 위해 애 쓰는 분의 사명감에 감사 했다.

 그런데 돌이 마치 쇠로  만든 종인양 착각하게 하는 기술과 세련되고 예술적인 안목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인간 능력의 무한함을 또 본다.

 비에 젖어서 종 모양은 더 조형적이고 사실적이며, 스투파에 선명하게 돌의 이음새가 나타나는 것이 아주 예술적으로 보여 혹시  뤼이비똥의 디자이너가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핸드백의 문양을 디자인한 건 아닌지?...흡사하지 않은가?

 그 첵크 무늬 사이의 틈새로 손을 넣어 부처님을 만지면 소원을 성취한다고 하여 팔을 최대한 뻗어 부처님 무릎이며 손이며를 만져 보고들 했다.

 스투파 내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용한 사진이다.


 언덕 위로 우아하고 섬세한 사원의 원경(遠景)
보로부두르는 '언덕 위의 대가람'의 의미라는 게 꼭 맞다.

 사진을 찍을 때 느끼는 안타까움. 디테일한 장면은 잡을 수 있으나 웅대한 전체는 늘 앵글 속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1층에서 4층까지의 네모꼴 기단의 입구에서 보면 저 위쪽 둥근 스투파의 쭈빗 쭈빗한 모양이 보인다.

 

 2층 벽면은 부처님의 팔상도를 형상화하여 얕은 양각으로 부조 되어 있다.

  출생후 일곱 발자국을 내딛는 모습,고행으로 피골이 상접한 부처님 모습 등 섬세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표현 된 것이 우리의눈높이를 따라서 긴 사면벽을 장식하고 있다.

 사진을 얻겠다고 기대에 찼던 나는 돌이 비에 젖어 얼룩을 남겨 그렇게 가슴이 아팠는데 그런대로 사실적으로 보인다(?)

족쟈카르타의 하이야트 호텔 입구.

보로부두르의 스투파를 조형물로 만들어 인테리어를 했는데 연꽃과 어울려 보기가 좋았다
.

 그런데 1000년전 실물보다 덜 멋있다.

 사원 구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찾은 그림이다.

 1층에서 4층까지의 하부는 네모꼴 로 설계되고
 그위 3층은 원형으로 이루어지고, 종 모양의 스투파가 32, 24, 16개의 순으로 있으며, 최상층에 거대한 중심 스투파가 있다.

 사각의 중앙의 가파른 계단을 통해 오르니 가이드의 말대로 욕계, 색계, 무색계의 세계로 햐하는 느낌이었다.



 쁘람빠난(Prambanan)사원

 신화와 전설로 하여 신비로움을 더하는 사원이 바로 쁘람빠난 사원.

 로로 종그랑 (야윈 소녀라는 뜻의 공주 이름) 이라고 불리는 우아한 사원인데 얼핏 앙코르왓트의 건축 양식과 비슷해 보였다.
보로부두르 사원과 함께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사원 중 하나로 힌두의 여러 신들이 모셔져 있다.

 
반둥의 왕자가 족쟈카르타 왕의 암살 임무를 띄고 궁에 침입했으나 로로종그ㅡ랑 공주를 만나 청혼을 한다
청혼을 거절하기 위해 공주는 하루밤에 1000개의 사원을 쌓으면 결혼하겠다고 하고, 왕자는 마술을 부려 999개의 사원을 쌓으니
다급해진 공주는 가짜 닭울음 소리를 내어 날이 새었음을 알리나 공주의 거짓을 안 왕자는 공주를 마지막 1개의 사원으로 만들었다는 신화를 지니고 있어 이름 지어진 사원.


 시바 신전은 높이 47m, 넓이 30m²으로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시바 신전이며 바로 로로종그랑 공주가 변했다고 하는 신전이다.

 9세기경에 만들어졌다고 하나 1000년 전의 사원으로 믿기지 않게 보존이 잘 되어 있었으며 계속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다.


사원 표지판 지붕이 우리네 기와와 비슷한 것이 이색적.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사원의 좌, 우의 모습이다.
아직도 완벽한 복원이 안 되었다는 것이 여기 저기 보인다

.


 시바 신을 모신 본당을 중심으로 남, 북으로는 '브라프마'와 '비쉬뉘' 신을 모시고 있고, 건물 전체는 원래 8개의 방으로 되어 있었고 신전 외벽에는 우리 눈 높이에 비슷한 여신의 모습이 연이어 있는 것이 잘 보이는 데 표정이 각기 다르고 과장된 몸매가 익살스러웠다.

 계단 입구의 코끼리 형상의 조각에서 긴 코는 길운을 부른다고 해서 지압봉같은 코를 모두 만지며 지나 간다.


신전 벽에는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라마나야 (Ramanaya)'이야기가 세밀하게 부조 되어 있다. 산스크리트어 문학의 대작이라고 하고 세계에서 가장 긴 서사시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내부에도 많은 신들의 부조가 관광객의 손길에 반질거리고 있다. 꼭 한가지만의 소원을 들어 준다는 가이드의 말에 또 중생심이 발동.

가까이에서 보면 섬세하고 생명력 있고 아기자기하게 배치 되어 상당히 여성스러워 보이는 건축물이다.

소녀는 영원히 사랑스럽다.

이슬람이라 스카프를 두르고 다니니 우리 눈에 조금 생소하다. 거북해할까봐 살짝 찍었더니 귀엽게 웃어 보인다. 그림을 그리러 온 모양이다.



 왕궁 (Kraton)

    족 쟈카르타에 왕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지 싶다.

    1756년 하멘크 부오노 1세가 건립한 이래, 역대의 술탄(왕)이 살았고, 현재는 술탄 10세가 가족과 살고 있다고 한다
    사진실에는 왕과 왕비 외 다섯 공주의 초상화가 있었고 역대 술탄의 가족 나무의 그림도 있었다.
    한 그루의 나무에 자녀 수가 잎사귀로 표현된 그림으로 특이하고 보기 좋았다.
    .
    접견실, 부속 박물관 등이 일반인들에 공개 되고 있고, '그림자 공연'도 하고 전통 악기 (가믈란) 공연장도 보였다.

 왕궁의 직원은 모두 바틱으로 된 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사람 좋은 미소를 띄고들 있었다. 회랑의 기둥과 내부의 천장이 화려해 한 번 찍어 보았다.

 전시실에는 역대 왕이 쓰던 생활용품이 진열 되어 있었으며, 또 다른 공간에는 현 왕비와 다섯 공주의 초상화를 비롯한 사진이 많이 있었으나 크게 권위적이거나 화려 하지 않았으며 특히 요리를 좋아 한 술탄 7세가 손수 사용했다고 하는 조리 기구도 있어 서민적이고 소박하게 보였다.

 왕궁 입구의 가루다 휘장. 인도네시아의 상징이 독수리이고 그래서 자국 항공사도 가루다 항공이다.




발리 (Bali)

'노을은 언제나 짧았다. 해의 죽음은 언제나 짧았다. 가슴이 터질 듯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찰라였다'
는, 어디에서 읽은 글을 생각하고 기대에 찼던 여정.

 그러나 아름다운 노을 대신 초목의 싱그러움이 주는 진정한 생명의 빛깔, 그렇게 소담스럽고 향기로운 갖은 컬러의 꽃들,
긴 비치의 백사장과 함께 잘 정돈된 융단같은 잔디의 초록빛이며...이런 것들을 머리에 담아 왔다.

 발리는 제주도 3배 정도의 크기로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며,
소박한 삶 속에서 제물 마련을 위해 산다고 할 정도로 종교가 생활의 확실한 한 부분인 것 같았다.

 차창 밖으로 보는 거주지의 모습은 비교적 깨끗하고, 특히 반듯한 지붕 모양이 세련 되었고
집인지 사원인지 분간이 안 되게 집안에 탑 모양이 많아 물어 보았더니 여유 있는 집은 자체 내에 가족 사당을 두는데,
이를테면, 할아버지 사당,손자 사당, 하는 식으로 식구 숫자대로 사당을 모시고 지극히 공양을 바친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공양물을 이고 사원을 향하는 여인네가 자주 보였는데 공양물은 꽃으로 장식까지 한 것이었다.
신들의 섬이라는 표현은 이런데서도 비롯된 것인가 !


 바다의 신, 라우(Dewi Laut)를 숭배하는 울루와뜨 사원은 해발 75m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작게 올려다 보이는 사원과, 깊이 내려다 보이는 옥빛깔 파도가 절묘한 하모니를.... 우리는 곱게 밀려와 아름답게 부서지며 사이다 빛 포말을 일으키는 푸른 인도양의 파도에 넋을 잃었다.

 그런데 거기 원숭이가 굉장히 극성 맞아 관광객이 곤욕을 치룬다고...,아니나다를까 찰라에 우리 보살님 옆을 스치더니 순 깜짝할 사이 안경을 채 간 것이다. 겨우 간식거리로 유인하여 돌려 받았는데 잠시 후, 이번에는  벗어 들고 있는 보살님의 안경을 쏜살같이 채가서는 지붕 위로 올라가 있는 게 아닌가!

 한참만에 되돌려 받은 안경은 못쓰게 되고...안경을 벗고서도 나는 벌벌 떨고 가까이서 사진도 못 찍었다.


 따나롯 (Tanah Lot)해상 사원이라고 하는데 바다 위에 돌출한 조금 높은 곳에 지어진 사원이다.

 물이 빠지면 걸어서 들어 갈 수 있을 정도였고 16세기에 어느 고승이 풍광이 좋아 사원을 지었다고 하는데 우리네 깨끗한 절집을 연상하면 꺼멓고 이끼가 끼어 미끈거려 보이는 사원이 고와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자기네 참배객들이 상당히 많은 걸 보면 발리 사람들은 지극한 종교관을 가진 것은 확실한 것이다.

 해상 사원 입구의 석문.

 시내에는 이런 양식의 석문이 심심찮게 보이며 사뭇 예술적 분위기를 연출해 보여 줬다..

 
이러한 석문은 귀신의 출입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어 건축물에 많이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호텔 앞의 해변 풍경은 격조 있는 휴식의 한 전형을 보여기라도 하듯 차분한 분위기다. 떠들썩한 우리의 휴가가 꼭이 나쁘다기 보다 너무 대조적이라 여겨진 것.

 아름다운 비치에 비키니 수영복을 한 할머니 부부는 의자에 나란히 누워 낮잠을 청하고 어여쁜 백인 소녀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 독서 삼매경에 들고, 거기 우리도 한 장면이 되어  담소를 나누고...

 호텔은 건물과 조경이 너무 아름다워 그 자체가 예술같았다.

 높은 엘리베이터를 목조 건물의 긴 복도로 대신 설계 한 듯, 길게 뻗은 복도와 뜨문 뜨문 자리한 호텔의 건물들이 수풀 속에 너무 아름다워 찍어 본 사진들이 많다.

 우리가 고층의 잘 폐쇄된 건물에 길 들여져, 넓은 대지의 저층 건물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

 붉은 지붕과 초록 빛 나무와 풀잎은 자연스런  보색 대비로 서로의 얼굴을 빛내 주고 있었다.  


자연은 색채의 마술사다.
이런 충만한 색상의 꽃들이 호텔의 얼굴을 더욱 화사하게 해 준다. 이런 화초가 이역만리 우리네 나라에 와서 적응에 고생이 많음을 알았다
.

차창을 스치는 거리 풍경. 조각과 어우러진 조경이 어디에나 좋았고, 예술적 분위기를 한껏 풍기고 있다.

 시내에서 북쪽으로 시간 반 정도 달리니 표고(標高)가 높아지면서 점차 고원 지대 풍경이 나타나고, 커피, 망고, 두리안 등의 무성한 과수가 빼곡했는데 이 지역이 화산 지대라고 한다.

 멀리 아름다운 호수를 품은 화산이 보이는데 호수의 폭이 250m라고 하며. 최근의 폭발은 1936년에 있었다고 하고 지금은 휴식 중이라고

 발리는 의외로 농지가 많았고, 한폄 땅도 요모 조모 이용하여 논농사를 지어 인상적이었는데 역시 엽서가 있어 사 보았다. 거기도 농자천하지대본 (農者天下之大本) 인가 ?

 웃통을 벗고 '게짝 게짝'을 처음부터 끝까지 높게 혹은 낮게 소리 맞춰 외치는 게짝 댄스.

 왕자 라마와 공주 시타의 사랑 얘기가 주제라고 했는데 게짝의 배경 소리가 상당히 피곤 했다.

 내가 예술적 감수성이 적은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