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프라하

몰타바 강과 아름다운 중세 여행

수행화 2008. 8. 28. 13:47

프라하 (PRAHA)

 

체코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는 중세기에 합스부르크 제국으로서 많은 영화를 누리며 유럽 4~5위의 경제국이었으나 멸망하며 8개의 국가로 분할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체코는 지리적으로 중부 유럽에 속해 있고 남쪽은 오스트리아, 남동쪽은 슬로바키아, 북동쪽은 폴란드와 인접해 있다.
면적이 한국의 1/3이며 인구 약 천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발음하기 어려운 체코어를 쓰고 있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서부의 보헤미아 지역(수도 프라하가 있는)과 동부의 모라비아 지역(중심지는 브르노)의
역사적으로 다른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1993년 1.1일에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은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분리 되었으며
체코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깊은 연관을 가져 왔으나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종교의 탄압을 받아 왔던 것을
1989년.11월 민주화 혁명 이후에야 비로소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였다고 한다.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며 신비스런 고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좁은 골목, 돌이 깔린 차도, 세월을 모습으로 말하는 옛스런 건물들...
상상 속의 중세를 조용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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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스 이북의 로마라는 애칭이 잘 어울리는 도시. 프라하...
프라하성의 야경을 바라 보며, 어둠 속에 소리 없이 반짝이는 몰타바강을 다시 떠올려 보며
내 생애 또 한 잊지 못할 감동의 시간이었음을 새기며 나는 이글을 쓰고 있다.

평소 내가 사랑하던 음악, '몰도의 강'을 들으며, '나의 조국'을 작곡했던 스메타나의 애국심을 상상하며,
도도한 몰타바 강물을 생각해 보곤 했었다.
 그 몰타바 강은 약간 검은 빛을 머금었으며 너무 고요하고 서정적이라 더욱 음악과 어울린다고 여겨졌다.
나는 분주함 속에서 홀로 음악과 나와 강물을 한데 어울려 보며 행복해 보았다.  

중세의 시간 속에 들어 와 서 있다는 작은 흥분으로 바라 보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건물, 거리들.
지난날 그들의 문화적 식견에 경탄하며 인간의 능력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무한히 키워지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나의 기억력을 총동원하여 머리에 입력하려 애를 썼으나 바쁜 일정에 언제나 그렇듯이
주마간산(走馬看山산)식 관광은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프라하 성의 야경

어둠이 깔린 몰타바 강에 조용히 내려 비친 프라하 성의 야경.
어둠은 많은 것을 삼키고 있었으되 우리의 감성은 충격파를 받으며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구시가지 광장

옛 사회주의 국가의 흔적은 찾기 어렵게 야경을 즐기는 인파로 대낮처럼 북쩍인다.

광장 주변은 고딕, 르네쌍스, 바로크, 로코코 양식 등 모든 건축 양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중세 건축물들로 감싸여 있다..

황금빛 조명은 고도(古都)의 정취(情趣)를 한껏 고조시키고 건물들은 옛 영화(榮華)를 추억하듯 고즈늑하다

광장에는 또 1915년 얀 후스 사망 500주기를 기념하여 세워진 얀 후스 기념비(Pomnik Jana husa)가 있다.

구왕궁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있어 경비병이 서 있었다.

입구의 윗부분 조각이 조금 살벌하였으나 성 내로 들어 서니 구 왕궁, 성 비투스 대성당, 황금소로등이 있어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졌다.

귀빈 영접이 있는지 사열하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뒤쪽으로 비투스 대성당의 아름다운 선이 하늘을 잘 분할 하고 있다. 야경에서의 신비로운 베일에서 벗어 나는 아침의 프라하 성이다.

프라하 성 주변 마을

궁 아래 나직한 담장이 있고 거기 중세의 모습을 띈 건물들이 빨간 지붕을 이고 오밀 조밀 너무 예쁘게 앉아 있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영락 없는 동화 속 마을이다.
아침 햇살이 눈이 부셔 멋지게 담지 못해 아주 아쉬웠다.



성 비트 교회(St.Vitus Cathedral)

프리히 성 안에 위치하며 교회의 건축이 시작 된 것은 600여년 전인 1344년이나 증 개축이 계속 되어 체코와 역사를 함께한 것이라고 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29년이라 한다..
926년에 교회가 들어 선 것을 11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축했다가 카를 4세에 의해 현재의 웅장한 고딕 양식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높이 124m, 길이 124m, 너비 60m, 천장 높이 33m 의 웅장한 건축물. 가로로도 세로로도 카메라에 잡을 수 없어 부분적으로 찍어 보아 웅장함은 내 마음 속으로 느낄 수 밖에...

 

바츨라프 광장

보헤미아와 폴란드의 왕으로 국가를 훌륭하게 다스렸다는 바츨라프의 이름을 붙인 광장.
 

체코 민주화의 상징인 '프라하의 봄'이 일어 났던 현장.
많은 젊은이들이 소련에 저항했던 곳이며 오스트리아의 독립 선언,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건국 선언 등 역사적 사건이 많았던 곳이었다고 한다.

마주 보이는 건물이 국립 박물관이고 그앞에 바츨라프의 기마 동상이 서 있다. 광장에 나온 많은 젊은이들 모습에 영화 '프라하의 봄'을 대입 시켜 바라 보았다.

광장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트여 있는  너그러운 공간이라 좋다.

광장은 국립 박물관에서 구시청사 광장까지 이어지고 여기가 우리의 명동을 연상케하는 상업, 교통의 중심지라고 한다. 주차 사정이 어려운 관계로 우리는 구시가지를 계속 걸었고 동 유럽 여행에 하루 만보(萬步)는 기본이라고 하더니 맞는 말이었다.

틴 성모교회

아름다운 탑을 지닌 교회 건물은 밤에 조명을 받아 하얗게 전설처럼 떠 있다.

80m 높이의 2개의 첨탑이 섬세하게 하늘을 가르고 있는 것이 과연1000년이 지난 건축물이란 말인가!
(1135년 초석을 세워 1365년 현재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고 함)

 

오를레이 시계탑

1437년에 제작된 이천문 시계는 천동설에 기초한 두 개의 원이 나란히 돌아 간다. 매시간 마다 정확히 시간을 알리기도 하지만 몇 백년 전의 제작 기술도 놀랍고 건물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더욱 감탄하게 한다.

3시에 종이 울리면 두 개의 원반 위에 있는 천사의 조각상 양 옆으로 창문이 열리고, 죽음의 신이 울리는 종소리와함께 그리스도의 12제자가 창 안 쪽으로 천천히 나타 났다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시계의 윗 쪽에서 닭이 우는 아름답고 신기한 장면을 보여 줬다.

잠깐의 신기한 장면을 보려고 광장에는 관광객이 넘쳐 났다.

황금 소로

연금술사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여 황금소로라고 불리우는 중세 그대로의 거리. 조약돌이 반질반질 귀엽게 박힌 작은 골목길을 들어 서니 '프란츠 카프카' 이름이 눈에 들어 오는 게 아닌가!
22번지의 이집이 '변신'의 작가 카프카가 작품을 집필했다는 곳이란다.

좁은 계단을 오르니 전쟁 중 사용했다는 무서운 갑옷들이 전시돼 있어 중세의 전쟁 장면을 잠깐 떠올려 보게 한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인가?

16세기 때의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좁은 거리. 동화 속에 들어 선 듯  낮은 집들이 이채롭고 500년이 지났건만 옛날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니...이런 게 바로 문화 유산이리라.
이제는 서점이며 기념품점이 들어 서 있어 눈길을 끌었다.

나는 이 역사적 거리에서 기념으로 접시 2개를 사서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 본다.

 

몰타바 강과 카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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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하의 상징, 아름다운 강, 검은 빛의 몰타바...
내가 바라 보고 걸어 보기를 그렇게 소망했던 다리 위를 시간이 스쳐 감을 아까워하며 걸었다.

카를교는 강을 따라 이어지는 붉은 지붕의 옛스런 건물들과 녹지들로 하여 수채화같은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1357년 카를 4세때 교회 건축가인 피터 팔레지(Peter Paler)가 건축하여 1402년에 완공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며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30개의 조각상이 다리에 예술적 표정을 만들어 준다.


강을 가로 지른는 폭 9.5, 길이 520m의 보행자 전용 다리.

 

시민들이 모두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은 중세풍의 거리에 나와 있는 노천 카페의 풍경에서이다.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는데 도무지 큰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거기 그림 속에 들어 가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부려 보지 못한 것이 많은 아쉬움 중에 큰 아쉬움이다.

프라하는 대부분의 길이 거의 돌을 깔아 만든 것이라 뾰족한 구두는 사양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잃어 버린 것들, 시간과함께 버려진 과거의 모습들을 그들은 수백년을 간직하고 있음이 우리와 판이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