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4년

강촌 휴게소에서

수행화 2008. 8. 24. 17:43

닻 올린 배처럼 생긴 외관이 좋아,
순한 강을 끼고 달리는 정경이 아름다워,
틈만 나면 내달리던 경춘가도, 강촌 휴게소.

올 무더운 어느날, 남편과 오랜만에 가 본 그곳은,
오래고 낡은 영화를, 이름 없는 시골 장터에서 보고 있는 쓸쓸함이 있었다.

나는 처량한 심정이 되어 시골 간이역처럼 썰렁한 휴게소 식당에 앉으니,
이 곳을 사랑했고 제법 부지런히 드나들던 젊었던 날들의 기억 저장고에 빤한 불이 지펴진다. 
그땐 정말 젊었었지!
그리고 엄마와 함께 와서 강물을 바라보던 어떤 날의 기억에서 장면이 고정된다.
강물이 어제의 그 강물이 아니듯 많은 것이 변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도 강물을 바라보며 강인한 모성과 지극한 자식사랑을 생각했었다는 것까지 함께......

생각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엄마로, 할머니로 살아내야 하는 내 남은 날을 생각해 본다.
그런데 아 ! '아내인 나'에 이르러 나는 여지 없이 유탄(流彈)을 맞는다.
더위 가운데 서서 강물에 눈을 둔 남편을 바라보며 때 아닌 깊은 서글픔에 빠진다. 
무심 속에 흘려 보내고 있는 내 일상이 초라하게 반추된다. 

돌아 나오며 바라보니 바로 옆에 비슷한 건물의 까페가 번쩍이며 서 있었다.
이 근사한 모습도 옛 것이라며 밀리는 것인가 ?
공연한 서글픔이다.
우리는 오랜 것을 간직할 인내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추억할 자격은 있는 것이다.


2004-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