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백조의 성

Schloss Neuschwanstein Castle

수행화 2008. 9. 22. 02:27

백조의 성 (Schloss Neuschwanstein Castle)
 

중세 도시 퓌센(Füssen)에는 4Km 떨어진 곳에 슈반가우 숲이 있고,
그 숲 한자락에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 성을 건축할 때 모델로 삼았다는
노이슈반스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 Castle) 일명 '백조의성'이 솟아 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새로운 반석 위에 앉은 백조'라는 뜻으로, '슈반가우'라는 작은 마을에 있다.
이 성은 중세 기사 전설에 매료된 바이에른 국왕
루드비히 2세에 의해서
1869년부터 1886년에 건축 되었다,.

바이에른 국왕 루드비히 2세는1846년 8월 뮌헨의 님펜부르크궁에서 바이에른 국왕 마크스 2세와
프로이센 王家 하노버 브라운 슈바이크家의 왕녀 마리와의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 났다.
루드비히 2세는 부왕의 사망으로 1964년 약관 18세의 나이에 바이에른 국왕의 좌에 오른다.

예술을 사랑한 왕은 궁전을 떠나 알프스 부근의 전원에서 지내며 더 행복을 느꼈고  
왕정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는 고귀한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하게 된 결과
노인슈반스타인 성을 짓게 된 것이다. 

왕은 17년 동안 짓고 102일밖에 이곳에서 살지 못했다고 한다.
성의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루드비히 2세의 고독하고 기구한 죽음은 지금도 많은 사람 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어 '동화의 나라'라고 불리는 퓌센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백조의 성은 성은 성 자체의 예술성이나 역사성보다 신화를 사랑하고 신화처럼 생을 살다 간
루드비히 2세에 대한 연민으로 더 깊이 기억 될 것같다.

멀리는 알프스를 두고 호수를 바라 보는 산자락 숲에 고고하고도 외롭게 떠 있는 성의 모습에서
 우리는 건축에 열정을 가진, 음악을 사랑한 젊은 왕을 연민과 함께 동화 속의 인물로 그려 본다.

당시로서는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보이는 오페라의 장면같은 벽화며 실내 장식.
호수와 마을을 내다 볼 수 있는 창, 우아한 가구들, 배우가 대기할 수 있게 만든 공간 등...
그의 광적 섬세함은 결국 병적인 집착이 되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원력(願力)을 세워 몰입하는 것은 멋진 경지라고 생각한다.


백조의 성은 건너 편 현수교에서 바라 볼 때 진정 아름답다.
우아한 실내를 둘러 보며 받은 무거운 감동은 침착한 조명이나 실내의 중후함 때문이었나?
아니면 안내 이어폰에 우리말이 없어서였을까?

우리의 국력과 위상을 생각케 하고, 한편 우리의 문화적 식견이 미숙하고 얇은 것을 인정하게 된다.



백조의 성

수풀이 울창하고 아름다운 바위산 저 높이 홀로 우아하고 고독한 모습을 한 백조의 성

멀리 호수가 보이는데 가까이에 세 개의 호수, '반발트시에','알펜지','호프남제'를 끼고 있다고 한다.

바그너를 좋아한 루드비히 2세가 오페라 '로엔그린' 중 백조의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은 성이라고 하는데... '

동화 속에 있을 법한 성의 모습이 실재해 있다.

백조의 성의 원경(遠景)

신비로운 자태는 구름 드리운 산으로 하여 더 애잔하다.

차창을 통하여 처음 만난 백조의 성 모습은 구름을 막 걷어 내고 있는 몽환적 분위기였다. 사치스런 외로움이 느껴지고 있다.


현수교

19세기 중반 오늘날의 '호엔 슈방가우 성'을 재건한 루드비히 2세의 부왕이 이 깊은
페랏트 협곡에 목제 교량을 설치하였다.
그후 1866년 철재 교량으로 보강 되었다고 한다.

협곡으로부터 91m라고 하는데 현수교이기 때문에 사람들 통행으로 출렁거려 아찔하고 공포스럽다.

현수교에서 바라 보는 성은 바로 환상적 그림이 된다.

성에서 본 풍경 (↓)
호수와 초록과 함께 펼쳐진 마을.

성벽에 기대서서 

성 입구 오르막에는 성벽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 보는 사람으로 붐빈다. 성을 보는 것만큼이나 감동을 선사 받는다
아래 펼쳐 놓은 마을도, 숲이 짙은 산도, 보고 있고만 싶은 정경이다.

백조의 성 입구

성으로 입장하려면 입장권을 끊고 대기 번호가 파란 불이 들어 오도록 기다려야 한다. 입장권은 극장처럼 입장 시간이 지정 되어 있다.

질서를 지키기 위한 방법같은데 기다리며 성 아래 멀리 펼쳐진 호수와 푸른 들에 수놓인 마을을 바라 보는 시간이 너무 좋다.

 

백조의 성 오르는 길

바위산을 8m정도 폭파해서 성을 지었다고 하는 백조의 성은 상당히 경사가 급한 산자락에 있다.
키 큰 나무 우거진 숲 길을 걸어 올라 가는 기분이 아주 좋다. 삼림욕장에 온 듯 상쾌한 기운을 받는다.

그리고는 둥글게 성을 돌아 들어 가는 아스팔트 길을 만난다.

미술, 시, 회화, 음악 등 예술 세계에 심취한 루드비히는 1861년 뮌헨 극장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관람하고 감명을 받은 것이 운명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바그너에게 뮌헨과 루쩨른 교외에 집을 제공하고 작곡료를 주는 등 마음껏 창장 활동을 할 수 있게 후원해 주었다. 덕분에 바그너는 <리벨룽겐의 반지>에 몰입하고 창작에 손을 댄지 26년만에 작품을 공연하였다.

건물의 벽화는 증세 독일 혹은 고대 북구 의 신화와 전설에서소재를 따와
바그너의 영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1886년 6월 8일 폰 겟덴 박사를 주석으로 하는 의사단은 왕을 정신병자로 진단하였고 성에서 이송 되었으며 6월 13일 산책 나간 왕은 의사와 함께 익사했다고 한다.

성을 나가며 루드비히 2세는 시종에게
 "내가 쓰던 방을 성전처럼 잘 간수해 주게. 호기심이 가득찬 이들에게 더럽혀지지 않도록. 나는 이곳에서 내 인생에 가장 쓰라린 시기를 견디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신화에 심취하고 신화 속 주인공처럼 살고자 했던 왕은 신화 속의 주인공처럼 생을 마친 것이다.
'니벨룽겐의 반지'의 주인공이 모두 비극적 최후를 맞은 것처럼...

백조의 성 실내

루드비히 2세의 입상이 있고 그가 좋아 했다는 백조의 도자기 작품이 장식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중후한 인테리어이고,  왕의 거실 벽은 '니벨룽겐 노래'의 가장 오래된 형태의
'지글트 전설'을 그려 넣었고 이 전설을 기초로 바그너는 '니벨룽겐의 반지'를 작사 했다고 한다.

사진의 방은 하인의 방으로 입구에 있다. 아래는 주방으로 쓰던 공간같고, 층 사이에 성의 모형도를 설치해 놓아 성 전체의 윤곽을 보여 준다.

 

아래는 이해를 위해 구해서 실은 사진이다. 각 방의 사진으로 좌측은 드레스 룸이고, 우측은 집무실이다. 지그프리트의 전설을 벽화로 그렸고 우측의 집무실에는 마주 보이는 곳에 성당이 있다.

루드비히 2세에게 많은 영향을 준 바그너는 여느 음악가와 달리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행동으로 나타낸 사람이며, 독일 민족의 우월성을 믿고, 독일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유대인을 싫어 했으므로 힛틀러가 바그너의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 했던 큰 이유라고 한다. 2차 대전 중에도 바그너의 작품은 연주 되었고 바이로이트 축제를 계속 열었다는 것이다.

바그너가 작사한 <니벨룽겐의 반지>는 4일에 걸쳐 15시간을 공연하는 서사 오페라이고 신화 속의 세상을 그린 장대한 드라마로서 독일 민족주의의 짙은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