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6년

아이를 가진 딸을 바라보며

수행화 2008. 8. 25. 14:24

산천은 눈이 부시게 푸르름이 번져 가고 찬란한 봄을 열더니, 그 화려함은 강욜한 여름을 향해 내달린다.
봄이 눈 틔우며 기지개하는 그속에서 우리는 생명의 엄숙함을 본다.
생명을 움직이는 역동적 힘으로 하여 나는 차츰 봄이 좋아진다.

이렇게 생명력으로 충만한 계절에 딸아이가 아기를 가져 우리 가족은 이봄을 오롯한 흥분 속에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공연히 일손을 놓는 일이 있어지며 마음이 상당히 편치 않아졌다.
가뜩이나 심적으로 불안한데 입덧을 하게되니 못 먹을테고 말할 수 없이 서러워지기까지 할텐데...
진정 엄마가 필요한 시기에 엄마 노릇을 못하는 여건이 못내 야속하기도 하다.

남편이 걱정하고 끔찍히 돌보고 있어 걱정도 사치겠지만
나는 푸석한 딸의 얼굴만 보면 마음 한 귀퉁이가 저려 온다.
남편이 한 시간여에 걸쳐 온갖 정성으로 만든 닭도리탕을 한 숟갈도 먹을 수가 없었노라고 하며 너무 상심한 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차라리 고문의 수준이었다.

아 !! 그러나 아들이 카메라며 프로그램이며 모든 컴퓨터 환경을 만들어 주어 매일 저녁 화상으로 대화를 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그나마 우리는 행복한 가족이라고 여겨야 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이와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화상으로 먹거리도 챙겨 보고 구입해야할 가구도 의논해 보며 길게 저녁 시간(딸은 아침)을 보낸다.

모성은 본능이어서인지 나는 잠을 줄여가며 딸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애를 쓴다.
일상적인 소박한 대화가 딸에게 위안이 되고 공간적, 심리적 거리에서 오는 소외감을 좀 줄여줄까 하는 소망을 가지고.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고통을 기꺼이 이겨내며 여자는 몰라보게 강해지고,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의 모습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하물며 힘든 시간을 그 먼 곳에서 홀로 견뎌가는 딸은 더 없이 잘 다져진 모습을 가지리라고 혼자 위안해 본다.  
위안은 위안일 뿐 고통은 강을 이루며 가슴 속에서 흘러 넘쳐난다.

딸의 입덧은 요즈음 나의 화두가 되어 생각의 끈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머리 속에서만 북쩍일뿐 달리 해 줄 일도 못 찾으면서.

그러나 딸이여!
봄 들을 마음에 그려 보라.
언 땅을 밀고 돋아나는 한 포기 풀도 긴 겨울을 이기는 고통을 견뎠지 않을까?
하물며 한 생명을 잉태한다는 일이 그렇게 녹녹치 않음은 당연한 일이리라.
힘내고 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현재를 사랑하고, 열심히 행복을 가꾸어 보라.
화이팅!!!

2006-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