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일본

Japan,

수행화 2008. 10. 3. 22:51

일본 ( Japan )

 

일본의 공식 명칭은 니혼(Japan)이고,  
혼슈(本州), 시코쿠(四國), 규슈(九州), 홋카이도(北海道)등 4개의 큰 섬과 400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인구는  약125,869,000명 (2006 현재)이고, 면적은 약 38만㎢ (한반도의 1.7배)의 나라이다. 

남북으로 2,800㎞에 걸쳐 있으나 산지가 대부분이라 고작 16% 정도만이 경작이 가능하다고 한다. 

가히 화산의 박물관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모든 유형의 화산을 가진, 세계 최고 규모의 화산 지형이고
 우리가 여행 하기 직전 강도 7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는 등 해안 지방을 지진은 연신 강타하는 모양이다.
 
일본이 위치하는 아시아 대륙 동안(東岸) 일대는 바다와 육지의  분포 및 대지형의 영향으로
편서풍이 남으로 비스듬히 흐르는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열대처럼 여름이 무더운 반면 겨울에는 대설이 내리는 등 계절 변화가 심한 만큼
설해·냉해·태풍재해 등 기상재해가 빈번해 국민생활·국민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

현재 국가원수는 125대 아키히토일왕 (明仁天皇)이고,
황은 상징적 원수로 일본 헌법에는 일본국 및 일본 국민의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되어 있고
정치 형태는 수상을 중심으로하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선거 유세 도중 야쿠자의 총에 맞아 죽은 도지사의 사건은 낙후한 일본 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의 종교는 토착 신앙인 신도(神道)가 대부분인데, 신도는 씨족신과 고장의 수호신을  신사에 모시고 섬긴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서 아기의 건강과 미래를 빌고,
결혼식은 성당이나 교회에서 현대식으로 화려하게 치루고,
장례식은 사후세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불교적으로 치룬다는 대목을 보더라도
수입된(?)  문화는 한꺼번에 용광로에  녹여 자기들만의 독특한 합금을 만들어 버리는 식이다.

그들은 그들의 것을 감히 송두리째 내 주지 않는다는 것은 낮은 기독교 전도율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어령 씨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 전 여옥의 '일본은 없다' 어릴 때 읽은 '가정 교사', '설국'. '빙점'...
일본은 말 그대로 가까우나 심정적으로 멀고도 먼 나라였다.
그러나 곁 눈질로 본 며칠 간의 감상은 역시 우리는 많은 부분  일본 문화와 동질 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좋지 않은 이미지로 일본이 언론에 회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 교과서 왜곡 , 독도 문제와 '다케시마의 날 제정 문제, 군 위안부 문제,
일본의 국보 1호인 '불상 반가사유상'은 우리 것이며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끌려 간 도공의 이야기,...등등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주는 주제 뿐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입은 피해와 그들의 침묵은 언제나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그래서 일본은 우리에게 경멸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화의 흐름은 거센 물결이 되어 도도히 시공을 넘나 드니 한류(韓流)가 일본 열도를 데우고
남이섬과 춘천으로 관광객이 몰리는 등,
 세계화 시대에 사는 우리의 젊은이에게는 이제 일본이 경멸의 대상만은 아닌 것같다.
동경 밤도깨비 무박 3일의 여행 상품이 인기를 모은 것이 새롭지 않을만큼 우리에게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일까!

비록 짦으나 짦은 시간 주마간산으로 둘러 본 일본의 표정을 정리해 보면서 
 여행은 나의 팍팍한 일상에 부드러운 긴장을 안겨 주었다고 여긴다.

 

(1) 오사카 (Osaka)

간사이 공항.

비행기에서 내려 모노레일을 타고 입국 심사장으로 향한다.

오사까 도심에서 40Km 떨어져 있어 우리는 오사까만의 풍경을 바라 보며 버스로 오사까로 이동 했다.  


바다를 메워 인공섬을 만들어 공항을 건설 했기에 소음을 해결할 수 있어 24시간 이착륙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사까 성

오사까 성은 일본 3대 성의 하나이며 1583년에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세웠으나 1625년 전란으로 파괴된 후 도구가와 가문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 했다고 한다.

오사까 성을  감싸고 있는  해자와 돌담이 엄격한 분위기를 더 하고 특히 돌담의 안정적이 곡선이 내 시선을 끌었다.

매화 나무 1250그루와 벚나무 4500그루가 꽃을 피우면 아주 아름답다고 하나 벚꽃을 보지 못하고 돌아 서며 서정주 시인의 '동백꽃'을 떠올린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꽃을 보지 못한 서운함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내부는 8층으로 설계 되었고, 5층까지 엘리베이트로 올라 가고 그 윗층은 걸어서 오르는 구조이다.

일본인에게 풍신수길은 '입신 출세의 신'이라고 한다.
7층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애'이고 아래 층으로 내려 오면서 오사까 성에 관련된 문서, 미술품, 전쟁 도구 등을 전시하여 박물관 형태로 꾸며 놓았다.

갑옷, 검, 북 등 전쟁 도구들을 바라 보니 임진왜란 등 우리와 얽힌 역사적 사실이 오버랩 되어  씁쓸하기만 했다 . 

맨 위 층은 전망대로 오사까 시내를 조망 할 수 있고 용마루 끝의 잉어같은 금제 장식품은 실제 크기로 천수각 안에 전시 되어 있다.

 

도톤보리

오사까의 대표적 먹거리 골목. 좁은 길 양쪽으로 극장, 패스트푸드점,작은 술집, 오락실 등이 밀집 되어 있는 젊은이와 패션의 거리.

그러나 우리 시선을 붙잡는 기발한 건 보이지 않았고...이제 도시 문화는 세계 어디나 대동소이 하다고나 할까?

도톤보리를 상징이라도 하듯 게 모양의 간판이 이채롭고 우리는 이것을 이정표 삼아 움직였다.

다코야끼라고 문어를 넣어 튀긴 요리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기다리는 줄이 길어 사먹어 보지 못해 아쉬웠다.

도톤부리 입구 길거리에 보관된 자전거들.
주차 몸살이 대단한 우리의 압구정동이나 명동을 떠 올려 보면 조금 소박한 느낌도 나고, 일본은 자동차 왕국일텐데 의외로 자전거가 많다. 실속파만 이 동네에 모였나 모르겠네.

신사이바시,

에도 시절부터 유명한 상점의 거리.

도톤보리와 이어져 있고 많은 인파가 넘실대고 있어 오사까 최고의 번화가
다운 모습이다.

특이한 복장을 한 신세대들도 보였으나 몰카를 할 용기는 없었슴.

 

우리는 이미 사람에 부딪치며 걷는 정도는 단련이 되었나!
이리 저리 헤집고 기웃거려 보았으나 쇼핑에는 의외의 애로가 있었다.

영어를 구사하는 판매원이 거의 없다는 것.

노을은 어디에나 내리고  어둠 이전의 도시를 곱게 채색 한다. 아름다운 내일을 기대해 보게 한다.

 

(2) 교토 (Kyoto)

교또는 794년에 일본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약 1000년 동안 일본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교또가 사치의 도시이고 유행의 도시라고 하나 겉 모습은 역시 고도(古都)다웁게 예모습이 잘 간직되어 보인다. 물론 도시 깊이 들어 가보지 않았고 차창울 통해 본  짧은 소감으로...
그런데 4월 10일자 중앙 일보를 보다 보니 1000년의 고도를 지키기 위해 시는 '건물 높이 10층 이하, 옥상의 광고판 설치 금지, 네온싸인 간판 전면 금지' 등을 조례로 정해 9월에 전면 시행에 들어 간다고 한다.
년간 4700만명의 관광객을 의식하여 각종 문화재를 지키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금각사(킨카쿠지)

1397년부터 10년에 걸쳐 제3대 아시카가 요시마추 쇼군이 세운 누각으로 그가 죽은 후 유언에 따라 절로 바뀌게 되었다.

원래의 킨카쿠지는 1950년에 화재로 소실 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그 이후에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3층의 누각에 2,3층을 금박을 입혀 지었다고 해서 금각사로 이름 붙여 졌다고 하는데, 연못에 금빛 그림자를 띄우며 그윽한 멋을 내고 있다.

1,2,3층이 각기 다른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서  더욱 유명하다고 한다.
1층은 헤이안 시대의 귀족 주의 건축 양식이고, 2층은 무사들의 취향에 따른 것이고, 3층은 선방(禪房)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한다.

초가 지붕이 우리와 달리 단발을 한 것같이 깔끔하고 산뜻하다.

특이한 지붕을 이고 있는 기념품점에는 뭔가 특이한 게 있을 것같았다.

그러나 가랑비내린 봄 날, 코 끝에 맴도는 오스스한 기운은 길손의 발길을 재촉 한다.
 
 나직한 담장 너머로 어깨를 비비며 서 있는 나무들이 친근하고 보기 좋다. 위로만 무성한 나무 모양이 멋스럽다.

길 옆 대나무 울타리는 시골 마을 마실 나선 것처럼 소박하고 정답다.


중국풍의 조금 무거운 문을 통해 입장을 하고 나올 때는 담장을 낀 계단을 통해 나오게 된다.
흰 띠를 두른 노란 담장이 아름답다.

청수사(淸水寺)

780년에 나라에서 온 승려 엔친이 세운 것으로 알려 지고 교토의 대표적 관광지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교토 시내가 멀리 보이고 바로 아래를 보면 깎아 지른 절벽위의 절이라는 걸 실감한다.

절벽으로부터 10여m 돌출 되어 있는 본당의 마루를139개의 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다.

청수사를 나오는 길에서 올려다 보면 숲과 벗나무가 에워 싼 삼중탑은 날렵하고 은근한 위엄이 있다.

삼중탑(三重塔)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경사진 골목을 오르다 보면 계단 위에 갑자기 탑이 나타 난다. 우리 눈 높이가 금방 적응 안되는 이 삼층의 탑은 국보로 지정된 것이라고 한다.

단청이 너무 선명해 금방 축조한 느낌이라 보물인 줄 모르고 지나쳤다. 우리네 절의 그많은 불사들을 보다 보니 채색이 환한 것이 싫어진 내 개인적 취향 탓이리라.

나무에 자기의 기원을 담아 걸어 두는 것이라고 우리 가이드님이 설명 하고 있다.
나무 명패만 찍고 싶었는데 도무지 각도가 나오지 않아 가이드님의 초상이 들어 가게 되어 미안하게 생각 된다. 초상권 침해가 될테니까...

중생심은 매 한가지인가 보다. 일본이나 우리나 절에만 오르면 숙연해져서 뭔가를 기원하고 싶어지니까 말이다.

 

절과 신사가 같은 맥락인지 같이 있는 곳이 많아 보인다. 신사 표지와 좋은 인연을 기원한다는 표지가 나란히 있어 솔직하고 순진해 보인다.

3줄기의 폭포가 있다고 하더니 가느다란 3줄기의 물을 일컬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건강과 장수, 학문의 소원을 들어 주는 물이라고 하여 모두들 열을 지어 마시곤 한다. 

청수사 한 족의 양지 바른 비탈에 있는 납골당(?)

위패가 나무 아래에  촘촘히 박힌 것으로 보아 납골당 내지 수목장인가 한다.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탄생·결혼 의식은 신도 의식으로 행하고 장례의식은 불교의식을 따른다고 한다.

이 산자락의 봄은 여기에 먼저 내렸나? 새 움이 많이 트고 있다.

지진으로부터 언제나 자유롭지 못한 일본은 유사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알미늄 기와를 사용한다고 한다.

우산 장식이 돋보이는 상가 모습. 교또가 종이가 유명하니 종이 우산을 전시한 모양이다.

어린 시절 쓰던 기름 먹인 종이 우산에의 향수가 있어서인지 내려서 들어가 보고 싶은 상점이다.
또 한번 단체 여행의 애환을 맛 본다.

왠 일인지 난는 전봇대를 오랜만에 보았다. 그리고 차를 타고 지나면서 너무 많은 전봇대를 보게 되어 거의 한 가구당 전봇대 하나인가 싶을 정도였다. 지진 때문에 매설이 어려워 지상에 전부 꽂혀 있나보다.

교또는 지하철과 얕은 수로들이 많다고 하더니 우리네 청계천같은 물길이 더러 보였다. 큰 강을 보지 못한 탓인지 은근히 반가웠다.
가로변에 벚꽃도 심어진 것이 자기들도 아끼는 모양이다.

천변을 따라 노천 까페도 보이고 고급스런 식당도 보인다. 일본인들이 우리의 한강을 보고 부러워 한다는 가이드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되는 장면이다.(→)

우리는 지진도 없고 유장하고 수려한 한강도 있는데 왜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는 걸까

하트 모양을 지붕에 매단 택시가 MK택시라고 한다. 우리 버스 옆에 지나는 M K버스도 보아 마음 뿌듯했다.

일본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우리는MK 택시의 유봉식 회장을 기억 한다.

남해 출신의 재일 동포로 1960년 교토에서 10대의 택시로 출발한 그는 '손님은 신'이라는 서비스 정신으로 오늘날 7개의 계열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3) 나라

동대사(東大寺 :Dodai ji) 입구의 표지석.

일본은 한자도 가져다 자기 글로 소화 해서 쓰고 문화도 가져다 자기 목적에 맞게 적절히 변형해 쓴 국가이다.

나라는 710년부터 70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기에 교토와 더부어 일본 문화가 잘 간직된 곳이라고 한다. 

동대사의 본전을 건너편 회랑에서 바라 보면 한 줄기 벚나무가 더 해져 멋진 엽서가 되어 버린다.

오사까에서 못 본 벚꽃이 여기 절 마당에 만개해 있어 그나마 일본 벚꽃을 잘 보았다.

그러나 토양 관계인지 우리 나라  벚꽃보다는 덜 예쁜게 확실했다. 줄기가 길고 송이가 덜 탐스러워 보이니까...꽃송이가 촘촘히 달려 일제히 피면서 커다란 송이를 만드는 우리 벚꽃의 아름다움을 그들은 구경 와야 할 것같다.

우리 것의 아름다움...예전에는 미쳐 몰랐습니다.

동대사의 본전(大佛殿)은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로 원래 8세기 중엽에 세워졌으나 소실된 후 1709년에 재건 되었단다.

2층 건물로 축조 되었으나 내부는 천장이 높고 비로자나불을 위시해서 관세음보살상이 크게 조성 되어 있다.

자존심 강한 일본인을 보듯 꼿꼿하다.

여기 절의 목재들도 단청이 곱게 바래어 풍화의 세월을 느끼게 한다.

목재 부식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나는 풍진 세상을 맨 살로 이겨 낸 이런 나무결을 좋아 한다.

바쁜 걸음 와중에도 한참 올려다 보았다.

일본 건축 양식의 특징인지 중국에서 모방 해 온 것인지...지붕 전체에 또는 출입구 쪽 처마 부분에  곡선을 그린 건축물이 많이 보였다.

일본에서 내게 깊은 인상을 주는 절의 키 큰 출입문. 문만이 아니라 지붕에서 바닥까지 건물 전체를 가리는 늘씬한 문이 병풍 접듯 겹겹이 열려 있는 것이 일사분란하고 정돈된 느낌을 주어 보기가 좋았다.

문이 크니 따라서 금속 장식도 큰 게 멋있다. 문만 따지고 보면 스케일이 큰 것처럼 보인다.

햇살에 따라 바래임의 정도가 다르다 보니 그라데이션이 멋지다.

본전을 건너다 볼 수 있는 긴 회랑을 지나면 본전으로 내려 갈 수 있는 계단을 만나게 된다.

길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잠시 난간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자아내게 한다. 본전을 좀 더 바라 보기도 하고, 만개한 벚꽃 매무새도 살펴 보고, 바람벽처럼 본전 옆에 서 있는 건물도 궁금한데...

우리는 모범적 관광객이 되어 촌음을 아끼며 달린다.

일본 최대의 청동 불상.

높이가 약15m, 무게는 452톤으로, 두 차례의 화재 후에 8세기 초에 복구된 것이라고 한다.(← )

우리의 천수관음상과 상당히 표정이 비슷해 친근한 부처님이다.( →)

동대사 입구에 있는 사천왕상.
우리네 절 입구에 있는 사천왕상과 흡사 했으나 채색이 없는 것이 일단 다르고 다른 차이점은 모르겠다. 보수 중인지 망으로 가려져 있었다.

건축이나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은 이런 저런 차이점들을 잘 알겠거니... 세상에는 모르는 분야가 너무 많다는 걸 또 절감 한다.

일본의 불교는 정령신앙과 조상숭배를 바탕으로 불교·도교가 함께 녹아 토착적인 고유신앙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부처님을 보는 시각은 다분히 기원의 여러 대상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법당 안이 특별히 경건하다고는 보이지 않으니까. 

입구에는 향을 피우며 기원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일본 사찰의 스님은 대부분이 대처승이라 그런지 동네 아저씨같아 보여 존경심이 덜 한 것이 사실이다.

동대사 입구는 사슴 공원(Nara-koen)이고, 1880년에 조성 되었으며 1,100마리의 길들여진 사슴들이 관광객 사이를 유유히 다니고 있다. 사슴 공원(Nara-koen)을 방문한 명치 천황 방문 기념 비인가 보다

호수도 끼고 있고 풍광이 좋은데 센베이만 열심히 먹은 탓인지 사슴들이 영양이 좋아 보이지 않아 안쓰러웠다.

센베이를 사는 사람을 보고 있다가는 옆에 와서 달라고 치는 바람에 너무 놀라게 된다.

인사하라고 하면 갸웃하고 인사도 하게 길들여져 있다.

 

 

(4) 하코네

1964년 도쿄와 신오사까를 연결하는 동해도 신칸센을 개통한 것이 세계 최초의 고속철이었다고 한다.

시속 240Km의 속도로 전국의 주요 도시를 연결한다는 신칸센 열차.


1981년 프랑스의 TGV, 1991년 독일의 ICE, 1992년 스페인의 AVE, 2004년 한국의 KTX

40년 전에 고속철을 개통한 나라. 그들은 결코 간과 할 수 없는 저력을  가진 민족이다.

오와쿠다니 계곡.

하코네 국립 공원은 화산 지대로 깊은 산과 호수, 계곡, 고원에 둘러 싸여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의 이병철 씨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별장이 많다고 한다.
지나는 길목의 갈대밭이 장관이라고 했는데 모두 태우고 없어 빈 고원의 모습만 봤다.

화산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곳으로 연기와 유황 냄새가 계곡 여기 저기 뿜어 나오고  있어 화산과 지진의 땅임을 실감케 한다. 

오와쿠다니 온천물에서 찐 계란, 쿠로다마고(黑卵)는 한 개를 먹으면 7년을 장수한다는  하코네의 명물이다.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호수, 아시노코 호수를 유람선으로 가다 보면 또 신사의 모습이 눈에 띈다. 신사는 일본인들의 정신을 충전하는 곳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에너지 떨어질 일이 좀처럼 없을 것이다.

녹음이 우거진 계절이면 풍광이 좋을듯 하다.

아시노코 호수의 유람선 모습이 유럽 의 범선 형태라 조금 어색해 보였다.

동경과 가까워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곳이라고 하고 그래서인지 선착장 주변에는 위락 시설이 많이 눈에 띄었다.

 

(5) 동경

지상 202m의 도쿄 신 도청 건물로, 45층에 전망대가 있고 입장료는 무료라고 하고 도쿄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맑은 날은 후지산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신 도청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도쿄의 밤 풍경.

우리 남산 타위에서의 전망과 다른 점. 끝 없이 펼쳐진 도시만 있고 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경은 과연 과밀의 도시, 세계적인 도시라는  생각에 의의가 없다.(←)



저녁을 먹는 한식당 이웃은 여기 저기 한국 간판이 보인다. 동경 한자락에서 이렇게 버젓이 우리식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장한 마음이 든다.
열심히 살아 가시는 그누구에게...화이팅!!

일본 천황의 가족이 살고 있다는 황거.(←)

해자로 시내와 완전히 분리 되어 있어 위엄을 갖추고 있으나 겹겹이 두른 성의 모습이 고독해 보인다.

메이지 유신을 거치고, 제 2차 세계대전 등 일본의 군국주의, 식민지 침략 행위의 중심에 천황의 존재가 있어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 받았으나 지금은 상징적 존재일 뿐.

황거 앞은 넓은 녹지로 잘 손질 된 소나무가 아담하게 늘어 서 있다. 우리네 소나무처럼 기상대로 자라지 못하고 인위적 모습이라 얼핏 분재 정원에 서 있는 느낌을 받는다. 

황거 앞은 차가 드나 들 수 없게 경계석을 줄지워 놓았다. 해자와 경계석 바깥으로 자동차의 빨간 라이트 행렬이 도시의 동력을 말해 준다.
갑자기 사람 사는 마을에 내려 오는 기분이다.

동경의 명암을 단숨에 바라 볼 수 있는 광경. 황거 앞 공원의 벤치에 노숙자가 웬 말인가!

몇 개의 가방, 쇼핑백을 옆에 두고 유유자적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를 황당하게 한다.

근면하고 언제나 남에게 폐 끼치지 읺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는다는 일본인도 거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어쨋거나 그들은 드넓은 공원을 자기 안마당처럼 살고 있다

황거 앞 넓은 광장 너머로 고층 빌딩이 밤을 밝히기 시작 하고 있다.

넓은 공간을 황족에 할애 하고 자기들끼리 북쩍대고 산다면 일본인은 황족에 우호적이고 황실을 사랑한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명치신궁의 입구.

굉장히 잘 가꾼 숲 사이로 굵은 자갈길을 걸어 신궁으로 들어 가노라면 먼 어느 사색의 길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도시인에게 이 소슬한 길은 더 없는 휴식을 줄 것같다. 걸어 오는 사람의 모습이 마치 소인국에서 온 것같다.

높이 12m나 되는 일본 최대의 목조 도리이가 위엄 있게 서 있다.(→)

메이지 신궁은 1
920년에 건립 되어 메이지 천황과 소헌 황태후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신궁을 근위하듯이 세워진 두 그루의 나무가 너무 쌍둥이같아 신통하고 아주 보기가 좋다.(↘)

마당을 정성껏 쓸고 있는 남자 또한 소인국 사람같다.(↓)

신궁 입구에 즐비한 술통들. 어린 시절 우리집 하얀 도자기 술통 '정승'이 생각 키운다.

입구는 이것 때문에 산뜻하고 경쾌한 분위기로 멋을 준다.
설치 미술이 뭐 별건가!

여기에도 기원을 담은 나무판이 걸려 있다. 우리말로도 쓰여 있는 패말에는 기원을 적어 걸어 두면 기도를 해 주고 나무판의 값은 500엔이라고 적혀 있다.

일본인은 확실히 많은 신을 섬기고, 그런 정령 신앙이 생활에 녹아 다소 샤머니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정해년의 액년이 드는, 즉 삼재를 알리는 표가 여기 잘 붙어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내가 개인적으로 멋 있다고 생각 했던 길다란 문과 금속 장식...
튀지 않고 절제된 장식의 문양이 세련 되어 갈색문에 은근한 멋을 더한다.

경내에는 무슨의식이 있는 모양이고 관광객은 실내에 들어 갈 수 없고 밖에서 들여다만 본다.

어느 아가씨가 뭔가를 기원하며 그림처럼 서 있다.

몇 십년은 좋이 공 들여 가꾸었을 멋진 숲. 간결한 건물들. 이런 정적인 분위기가 어쩌면 일본인을 융합케 하는 정신의 오랜 근원인지도 모르겠다.
 
여기 종사하는 남자는 푸른 하의에 흰 저고리, 여자는 붉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유니폼처럼 입고 있다. 여자는 붉은 댕기까지.

신궁 입구에 정갈하게 놓인 대나무 국자들. 목 마른 사람을 위한 것일텐데 혹자는 손을 씻는 것이라고도 하고...우리네 약수터 플라스틱 바가지가 떠올라 혼자 실소를 머금는다.(→) 




한켠에는 늘 무슨 공연이 있는지 의자들이 빙 둘러져 있었다. 아름다운 공간을 도시인의 휴식처로 제공하는 것도 좋은 일일 것같다.(↓)

 

(6) 닛코

난타이 산(男體山)


일본인은 좌우 대칭이 되는 산을 좋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후지산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남체산도 비교적 안정적 이등변 삼각형이다.

닛코를 보지않고 일본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는 명언이 있을 정도로 일본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쥬젠지 호수.

난타이산 화산 분출로 흘러 내린 용암으로 생성된 호수로둘레 21Km로서 닛코 국립 공원 안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산중에서 만난 의외의 호수. 먼데 산은 눈 골짜기를 그리고 있어 서기롭다.

옛날에 큰 신사가 있었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눈발이 남아 있는 조금 쓸쓸한 산 속에 도리아는 붉게 남아 강한 엑센트를 주고 있다.

계곤노다키(계곤 폭포)
99M의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로 닛코 국립 공원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굉장히 높은데 사진으로는 감동이 전달 안된다.

그러기에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은 물줄기가 거대한 파도로 보이기도 하는 등 영상은 마술을 부리나보다.

국토의 1/4을 차지하는 산지는 기복이 심하여 급류성 하천에 의한 침식으로 V자형 계곡이 발달해 일본 특유의 계곡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폭포의 낙차도 엄청 나고, 여기는 40구비를 가파르게 올라 온 산정인데 실감이 없어 광장에 서 있는 표고의 표지를 카메라에 담아 봤다. 나처럼 답답한 사람을 위한 배려(?)

폭포 앞의 자그마한 광장에는 커피숍과 기념품 점들이 있는 것이 우리와 흡사하다. 그런데 그네들은 우리보다 덜 먹고 덜 마시는지 쓰레기가 별로 없고 엄청 깔끔하다.

동조궁(東照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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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이고,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신 신사.
 
1200년 전 나라 시대에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손자,도쿠가와 이에미스가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곳이라는  닛코(日光)에 할아버지를 기리며 지은 신사이다.

양명문(陽明門)(←)
금,은빛을 발하나 현란하지 않아 더욱 고풍스럽고 왜색이 짙게 묻어 나는 건축물이다.

동조궁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의 하나로 알려져 있고,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문양과 조금 대담하다싶게 화려한 채색이 어우러져 한껏 멋을 부렸는데 세월이 느껴지지 않게 보존 상태가 좋다.

눈 가리고, 귀 가리고, 입가린 원숭이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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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수백년 전에 심은 아름드리 삼나무 숲이 장관이다.

동조궁을 둘러 싸고 있는 삼나무 숲길은 30km가 넘는다고 한다.

좁은 길 양쪽으로 곧게 뻗은 삼나무 숲 아래 사람들 행렬은 또 무슨 소인국의 사람들(?)... 

왼쪽으로 꺾어져 신사를 향하는 길은 정연히 서 있는 석등이 우리를 사열하듯 서 있다.

멀리 소실점이 나타날 정도로 좁고 긴 길이다.

경내에는 네델란드에서 온 종이 보존 되어 있다.

일본은 삼국시대부터 네델란드와 교류가 있어 문화가 유입 되었으며, 조선 중기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하여 아시아 최초로 서구화한 나라이기에 상징성이 있나보다.

동조궁 입구의 거대한 석조 도리이.
높이 9m로 1618년에 봉납된 것으로, 에도 시절에 만들어진 석조 도리이로서는 가장 크며, 일본 3대 도리이 중의 하나라고 한다.

고주노토(五重塔)
도리이를 지나 왼쪽에 있고,  다이묘(大名)가 가 봉납한 것 중 유일한 목조 건물이고, 이 탑은 아래층은 모두 일본 양식이고 가장 위층은 당나라 양식이라고 한다.

현대적인 조금 간결한 건물도 현관 지붕의 곡선은 옛과 같다.

그들은 오늘도 쪽지에 뭔가 염원을 적어 여기 꼬깃꼬깃 매달아 두고 있다. 옆에는 부부 원만이라고 쓰여 있는 팻말이 서 있다. 귀여운 생각이 든다.

보편적인 한끼 식사.

밥, 된장국, 계란찜, 튀김, 불에 올린 고기 두 점, 생선회3점, 연어회 2점, 어묵 조금, 장아찌,
여기다 우리네 우동 정식처럼 우동 한 그릇이 나오기도 해서 먹기에 충분 했다. 메뉴를 보면 일본인의 건강, 장수의 비결이 보일 것이다.

이어령씨의 글에서 지적 했듯이 일본인은 공기에 밥을 담아 들고 뱅뱅 둘리면서 젓가락으로 먹고, 우리네는 큰 주발에 담아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 가며 한 입씩 먹고, 일본인은 밥을 도시락으로 싸고 우리네는 밥상 채로 함지박에 담아서 들에 내 간다고... 

그렇게 우리와는 스케일이 다르다고. 축소 지향적 일본인이 된 배경을 말하면서.

후쿠시마의 작은 온천 마을.

뜨거운 사우나 좋아 하는 한국 사람의 구미에 맞게 온천 물이 아주 뜨거웠고, 시골이라 그랬던지 인심이 소박 했다. 봄은 언제 오려는지 오가는 삼나무 숲은 아직 눈 풍경이었고.

4월인데도...

어느 휴게소에서 무심코 바라 본 간판이 산뜻하다.

식당 안내 깃발 또한 멋쟁이다. 작은 것에도 센스가 보이지 않는가! 간판만 바라 보고 일본을 두루 다녀도 눈요기가 대단할 것같다.

작은 온천 마을의 토산품점(↑)
글자체에 강온(强溫)이 실린 것이 그래픽 디자인 같다. 이런 풍의 글씨가 도처에 많았다.
자판기 왕국

길을 가다 보면 온갖 종류의 자판기가 마치 상점처럼 줄지어 있는 걸 본다. 마트의 식품 매장이 밖에 나온 형상이다.

동경의 고속 도로 모습이다. 고가 도로인데 굉장히 노면이 좋고 깨끗하다.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보는 할아버지 모습이 반갑다. 우리는 아가씨나 젊은 사람이 할 법한 일을 할아버지가 하고 있으니...,고령화 사회의 노인 문제는 어느듯 우리 나라에도 무거운 과제가 되고 있으니...

센다이 공항
건물의 스카이라인이 말 그대로 하늘에 멋진 라인을 그리며, 마치 리본이 되어 펄럭일 듯 서 있다.

 

<2007년 3월 29일부터 4월 2일까지 다녀 온 일본 여행에 대해 나름대로 열심히 요약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