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8년

나의 유별난 명절 증후군

수행화 2008. 10. 9. 00:20

명절의 계절이 되면 신문, 잡지, 텔레비전 할 것 없이 온 메스컴은 주부들의 ‘명절 증후군’을  큰 사회 문제로 기사화하며 자못 심각하다고들 한다.

지난 추설명절에도 어김없이 이 주제는 수면 위에 올라 와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다.


명절 직후에 이혼 소송이 부쩍 늘어난다는 뉴스에다, 이혼 숙려제가 도입되고부터 그나마 이혼율이 조금 줄어들었다는 아주 희망적(?) 메시지까지 전해준다.

철통같이 단단하고 권위적이던 남성우월주의는 이제 대수술을 기다리는 환자가 되어 수술대 위에 눕혀진 가련한 처지가 되었다.

주부는 시댁에서 가사노동(?)에 절어 있고, 남편은 저의 부모님 댁에서 편히 쉬어 자세로 대접만 받으려고 한다!

설정이 좀 불공평하기도하고, 또 온갖 치다꺼리에 심신이 피로한 주부에게 관심을 보여야 하며, 가사 노동의 분담을 강조함이 목적이겠으나 나는 그 욱하고 떠들어대는 모양새들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인을 분석하고 기발한 처방이 제시되더니 급기야는 ‘지친 아내에게 스파 선물을...’하며 호텔 팩키지를 권해 주는 광고까지 나오는 현실이 되었다.

격세지감(隔世之感). 달리 할 말이 없다.


살아가면서 미처 해소되어지지 못한 누적된 개인적 문제점과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시기인 모양인데 명절의 순기능에 너무 부정적 그늘을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본다.


모처럼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기회를 다른 각도에서 좀 밝게 조명해 주면 좋으련만.

일상의 두터운 화장을 지우고 맨 얼굴의 가족끼리 서로 웃어 주고 삶의 피로를 보듬어 주고,

조상님을 기리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더듬어 보기도 하는, 좀 내면적 성찰의 시간으로 가꾸도록 많은 언론은 물꼬를 틀고 계도해 주는 게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명절을 기해 아내를 골탕 먹이려는 남편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인데...

세상은 마치 며느리와 시댁을 적대적 대립관계로 설정해 두고 해법을 찾으려는 것같아 조금 걱정이 된다.

왜 요즈음은 그렇게도 흑백논리만이 논리가 되는 걸까?


그런 북쩍이는 언론을 뒤로하고 나는 언제나 홀로 나름의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다.


선물 꾸러미를 넘치게 싣고 달리는 자동차 행렬, 쇼핑백을 양손 가득 들고 분주한 걸음을 내닫는 이들. 백화점 선물 코너에 쏠려 있는 인파. 명절 선물을 추천하는 백화점 카달로그 속, 명품 내지 고가품들...

실제로 내가 살던 테헤란로 주변은 명절 즈음이 되면 택배 오토바이가 까맣게 몰려다니고 택시며 승용차며 마구 쏟아져 나와 드넓은 차도는 거대한 주차장이 되기도 한다.
소화 불량 상태의 차량들은 체증을 이기지 못해 온갖 다급한 클랙션 소리들을 내지르고, 가뜩이나 탁한 대기에 신경질적 긴장감을 마구 뿌려댄다.

그 숨 막히는 광경과 들뜬 분위기는 차분한 나의 명절맞이를 어이없게도 고통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서 내게는 명절이 되면 해보고 싶은 소망 하나가 생기게 되었다.

선물하고 싶은 사람 리스트 작성 해보기. 받는 사람에 어울리는 참한 선물 궁리해 보기, 그리고 승용차 뒷좌석을 선물로 가득 채우고-가능하면 뒷 창문이 가릴 정도로- 저 정체된 차들과 군중 속으로 들어가 여유롭게 그 흐름에 실려 보기...

뭔가를 나누고 베푼다는 행복감과 일종의 성취욕은 까짓 자동차 정체쯤이야 뭐 별 거 일까?

그런 일련의 세속적 행사는 어쩌면 내 정신을 살찌우고 삶을 신선한 의욕으로 담뿍 채워 줄 것만 같은데...

해 보고 싶다는 공연하고 다소 과장된 상상은 해를 거듭하면서 명절이 가까워 오면 은연 중 나를 압박해 오고,
오갈 데 없이 울적한 심사가 되면서 가슴 속은 가랑 잎 딩구는 소리를 내어가며 내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마음 속 못난이만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늘 차분한 나의 명절로 나갈 수밖에 없고...

올 해도 손녀 둘에게 작은 선물 하나씩, 사돈댁 양가에 약간의 선물만으로 리스트는 끝 맺고야 말았으니 제대로 또 증후군에 시달린 셈이다.

내 명절 그림은 또 그려지지 않고 넘어갔고 시간은 나를 도와 내 시름을 다독이며 훗날을 또 기약하게 하곤 한다.


듣기에 따라 뚱딴지같기도 하고, 남 따라 부화뇌동하는 일이라고 무시 당하기 좋을 일이다.
또 뭐 별 것도 아닌 것인데 해 보면 될 것을.,..하면 할 말이 없다.


명절의 계절.

돌아갈 집도, 반기는 가족도, 또 찾아 갈 고향이 없으매 삶이 천근만근 무거운 자에게 나의 노래는 사치스럽고 참으로 공허하고 가당찮은 곡조이려니.

내 명절 증후군은 삶에 또 다른 윤기를 덧칠하고 싶은 욕심의 다른 이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