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상하이

샹하이, 열기와 혼돈의 도시.

수행화 2008. 11. 6. 23:22

1.상해 (Shanghai)

 

북경이 중국의 문화와 정치의 도시라면 상해는 명실공히 경제의 수도이다.
6000년 역사를 가진 도시이고 6,184㎢의 면적에 1200만명의 인구를 가졌으며 북경, 천진과 함께 3대 직할시이다.
원래 상하이는 창지앙(長江)하구의 어촌에 불과했으나,
아편 전쟁 이후 영국에 의해 개항 되면서 국제적인 항구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등 열강에 의해 계속 조차 지역으로 승계 되었던 상하이는 중국 최대의 공업 도시이며,
오늘날 중국의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서 뿐만 아니라 과학, 무역, 산업, 기술의 중심지로 발달 되었다.

'우후죽순'이란 말은 지금의 상해 시가지 전체의 모습을 생생히  대변해 줄 수 있는 표현이다.
위로 위로 뻗어만 가는 건물들은 규모와 교역면에서 세계적 도시의 반열에 우뚝 서 있다는 사실을 잘 증명 해 준다.
수세기에 걸쳐 가져 온 자만심, 자부심은 그들에게 저력을 일깨우고 의욕을 끌어 낸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여행객에게 비춰 지는 상해는 무질서와 혼돈 한 가운데 있다는 느낌이다.
시민들은 혼돈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인지 공격적이고 고집스럽고 거칠게만 보였다.
극도로 무질서하게 운행하는 자동차 행렬, 횡단 보도가 아무런 의미가 없이 건느고 싶은 곳으로 건너 버리는 사람들,
하루 종일 클랙션 소리에 신경이 지칠만큼 지친다.
왼종일 다녀도 클랙션 소리 들을 일이 별로 없던 미국이랑 너무 비교 된다.
도시는 외형적 팽창으로 하염없이 비대하여 있으되 시민의 문화 수준은 평균점을 한참 밑돈다는 감을 받는다.
자본 주의에 눈 뜨고 자고 나면 부자가 속출한다고 하는데... 

그러니 관광객의 편의며 배려는 애초에 없고 그들은 우리를 한낱 수입원으로만 여긴다. 너무 노골적으로.
중국은 지금 '전국민 혈안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연변 출신의 가이드 말이  어쩐지 계속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자기들을 무시하고 있으며 연변 출신 불법 체류자들이 엄청난 고생을 한다고,
그래서 자기들은 돈을 벌어 한국인들에 복수해야 한다고,
연변 출신 파출부들이 가격 담합을 하여 자기들 주장을 관철한다고 하던 신문 보도까지 떠 올라 답답하기만 하다. 

 

동방명주 탑.

중국의 미디어 그룹 동방명주가 소유하고 있는 방송 수신용 탑이라고 하는데, 1992년 푸둥 개발을 기념하여 3년여의 기간에 건축되었다고 한다.순수 자기 자본과 기술로 완공하여 그들의 기술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진주가 옥쟁반에 담겨 있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고 캐나다의 'Canadian Nathional Tower' 와 모스코바의 'Ostankono TV Tower에 이어 세계 세 번째의 높이를 자랑한다고 한다.

워 총 높이는 468m, 일반 관광객이 이용하는  전망대 높이는 263m이다



동방명주 타워 1층 로비

중국 어디에서나 붉은 등 장식을 많이 보게 된다. 둥근 천정에 매달린 빨간 등은 실내에 생동감을 주고 있고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지루함을 조금 덜어 준다.


돔방명주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황포강과 빌딩 숲은 상해를 대도시로 매김하기에 유감이 없다.
우리 나라의 위상과 안위를 걱정스레 떠 올려 보게 되니 나는 소박한 애국자임에 틀림이 없다.

와이탄(外灘) 거리.(→)

넓은 황포강에 연하여 1Km가 조금 넘게 조성되어 있는 세련된 이거리는 근 백년 동안 상하이의 중심 역할을 한 곳이라고 한다.

산책로는 인파가 넘쳐 나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석조 건물들의 각기 다른 얼굴을 바라 보며 걷다 보면 도무지 중국을 실감할 수가 없다.  

유서 깊게 보이는 유럽풍 건물들은 외국 영사관, 외국은행, 상점, 신문사등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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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오따샤 (금무 빌당)

1999년에 지어진, 현재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금무 빌딩이 동방명주 전망대 앞에 바로 보인다.

높이는 420.5m에 총 88층 건물로 3층에서 50층까지는 일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53층부터 87층까지는 하얏트 호텔, 88층은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자본이 지은 것이라는데 바로 옆에 쌍둥이처럼 올라 가는 건물이 더 높을 것이라고 하니 초고층 건물의 경연장이 아닐까?

와이탄(外灘) 지역과 푸둥 지역은 우리가 익히 들어 온 세계적 기업들의 간판을 원 없이 보게 된다.

그러나 살짝만 골목을 들어 서면 무질서가 질펀히 깔린 재래식 건물들이 우리네 여행객 마음을 산란하게 한다. 퍽 대조적이다.

난세에 큰 부자가 난다고 했듯이 고도 성장에 따른  빈부의 격차는 여기서도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으리라. 

거부장자가 엄청나게 많고 고층 건물과 고급 외제차가 온 거리를 누빈다고 국제적 도시라고 나는 칭하고 싶지 않다. 거리의 무질서한 교통 사정과 끊임 없는 경적 소리, 안하무인의 매너...등 갈 길이 멀다고 본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상해 중심지에서 포동 공항까지 430㎞, 50분 거리를 자기부상 열차로 7분만에 달리고 있다.

써커스 공연장.

조명을 발하는 돔 형태의 지붕이 어둠 속에 멋스럽다.

공연장 시설도 좋고  공연 내용도 충실하고 좋았다. 실제로 보면 단원들이 아직 어리고 체구가 왜소한데 그기예가 대단해서 놀라게 된다.

1시간 30분 정도의 공연 동안 내내 꼼짝 없이 집중하게 한다.

기본적인 공연 외에 큰 항아리를 베공처럼 돌리는 아저씨, 아름답고 우아한 몸짓으로 나비처럼 허공을 날아 드는 그네 타는 커플,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지구의 모양의 큰 철제 통 속에서 펼쳐지는 오토바이 묘기이다.
지름부분에서는 넉대의 오토바이, 그 아랫부분에서 석대의 오토바이가 좁은 지구의 안을 빙글 빙글...누구 하나라도 실수하면 바로 대형 사고가 되는 것이라 내내 마음 졸이며 보게 된다.

유람선을 타고 바라 본 황포강변의 야경.

야경은 우리에게 언제나 낭만적 감정에 잦아들게 한다. 한낮의 피로는 보내고 우리는 어둠이 주는 안정 속에 있고, 정제된 빛의 아름다움만 바라 보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만 보여 주는 야경이라 하여 조금 씁씁하나 개성이 넘치는 상해 건축물들을 조명 아래에서 일별해 보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마담 투쏘의 밀랍 인형 전시실.

런던, 뉴욕, 라스베가스 암스텔담. 홍콩에 마담투쏘의 밀랍 인형을 전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상해도 동방명주 타워 아래에 전시실을 두어 관광객을 불러 들이고 있다.

밀랍은 꿀벌이 벌방을 짓기 위해 분비하는 물질이라 벌꿀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부스러기를 모아 불순물을 제거하여 얻어진다고 한다.

마리린 몬로, 아인슈타인, 브레드피트 부부, 다이아나, 타이거우즈, 빌 게이츠, 빌 클린턴, 오드리햅번 ...

조금 어색한 모습도 더러 있으나 실물과 똑같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인간의 능력은 참으로 무한하고,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발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새삼 느낀다. 밀랍 인형은 만들기도 어렵고, 배우기도 어려워 유명 배우의 인형은 하나에 거의 1억원을 호가 한다고 한다

 
남경로(南京路)

중국 제일의 상업 거리이고, 또 아시아의 가장 번화한 상업거리 중 하나라고 한다.
건축물이 화려하고 맥도날드를 위시한 패스트푸드점들이 크게 자리 잡고 있고, 코카콜라 병 광고물이 이정표가 될 정도로 서구적이다.

문화는 낮은 곳으로 흐르는 속성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쇼핑가는 세계적으로 평준화 하려나보다.

보행자 전용 도로, 노천 까페, 쇼핑 센터...
쇼핑센터에 들어 가 보니 의외로 물가가 비싼데 놀랐다. 

근사한 '오메가' 시계탑이 서 있다. 중국이 대단한 고객이며 시장임을 말해 주고 있다.

예원(豫園)

전형적인 명나라 시절 강남의 고대 풍치림이고, 현재 전국 문화재 보호 구역이라고 한다.

여럿의 건물이 정원과 어우러져 있고, 연못 가 정자가 한가롭다.
개인 주택으로 규모가 엄청니고 용 조각을 올린 기와하며...역시 부자들이 그들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 후세의 우리에게 볼꺼리를 제공하고 있다.

돌을 잘 다듬어 보도블럭을 깔았는데 그것에다 가장 많은 공사비를 썼다고 한다.

 

상하이 라오지에(上海老家)

예원을 나서면 아주 좁은 골목 양쪽으로  상점들이 촘촘히 늘어 서 있다.  19세기 중기에 조성 되었고 전형적인 명청 시대의 거리 모습을 잘 재현하고 있다고 한다. 200여개의 점포가  당시의 번영을 상상케 하듯, 판매원도 영어를 어느정도 구사하면서 장사에 기세를 올리고 있다.

송성에서 7불 매겨져 있던 찻잔을 거금 20불에 팔고 있다. 송성에서 본 물건이라고 했더니 갑자기 얼마를 원하느냐고... 결국 나는 5불에 샀는데 너무 속 보인다.

역시 비단 장사 왕서방의 정신을 이어 받은 후손들인가! 

 

정원 안에서는 높은 누각에서 악기도 연주 하고 있고, 길거리에는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보이며 분위기를 띄우는 가장 행렬이 지나 가기도 하는 등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려 애쓰고 있다.

대한만국 임시 정부 건물

상하이
 마땅루(馬堂路)에 있으며, 1926년부터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 직후까지 청사로 사용하던 곳이다.

1층에는 태극기와 회의실이 있고, 2층 김구 선생의 사무실에는 선생의 가족 사진, 침대, 책상 등이 전시 되어 있다.

좁은 계단을 오르니 마치 흑백 영화의 장면같은 분위기의 소박하고 간결한 사무실겸 주거 공간이 나타난다. 선구자들의 고뇌와 애환을 생각하며 숙연해지면서...

마주하고 있는 퇴색한 건물에는 긴 장대에 빨래까지 뻗쳐 있어 임시정부 건물을 더욱 초라하게 하고, 바로 옆집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짝퉁 가게가 있는 걸 보니 어이가 없다. 한국인 관광객이 고객임이 분명한데 뭐 여기까지 와서 짝퉁을 사야 하나 싶어 한심한 마음이 든다.

우리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던 역사적 장소치고는 너무 초라하여 부끄럽고, 우리는 우리의 지난 역사의 평가에 너무 인색하고 폄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2.항주 (抗州) 

항저우 시는 저장성의 성도로서 중국 7대 전통 도시 중의 하나이며 진시왕이 도시로 발전 시킨 이후
지금가지 2,2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남송 시대에는 수도의 역할도 했다.
송대(宋代)에는 100만 인구의 대도시로소 노래와 춤의 태평성대를 누렸다고 한다.

19세기에 태평천국군(太平天國軍)의 싸움으로 파괴되었고,
난징조약[南京條約]에 의해 상하이[上海]가 개항되자 항구로서 번영은 상하이에 빼앗겼으나
오늘날 성도로서 정치,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13세기 무렵 이탈리아의 유명한 여행가 '마르코폴로'가 항주를 방문하였다가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항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녹차(綠茶)의 최고급품으로 알려진 룽징차[龍井茶]의 산지이며, 전통적인 직물공업을 바탕으로 근대적 설비에 의한 견(絹)면직포 ·염색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
항저우 평균 기온은 15℃~17℃ 정도, 1월 평균 기온이 3~5℃, 7월 평균 기온은 27.4~28,9℃로서 온화하다.


기후가 온화하여 그들은 용정차(龍井茶)가 질이 좋다고 대단히 자랑하나 우리의 녹차보다는 훨씬 맛이 떨어진다.
거지닭
(
현대식의 거지닭은 닭의 내장을 발라낸 후 그 속에 버섯을 비롯한 야채등을 넣고 연잎으로 싼 후 그 위에 진흙을 발라 구워서 만든다고 한다) 을 먹어 보고 동파육 (일종의 돼지고기 조림으로 돼지의 삼겹살이나 오겹살 부위를 썰어 기름에 튀긴 후 간장 양념에 오래도록 조려서 먹는 요리) 도 먹어 본다. 

유람선위에서 호수 끝자락으로 보이는 도시 모습이 안정감 있고 멋지다.

 

 서호(西湖)

삼면이 산, 또 한면으로는 멀리 도시가 보이는 서호를 아득히 바라 보며 소동파가 아니라고 해도 시를 생각케 한다.

반 자연 반 인공의 호수로 서호 10경의 하나이며 백낙천과 소동파는 물론 중국 4대 미인의 하나인 서시(西施)의 추억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달빛 내리는 밤에 수면과 술잔에, 또 당신의 눈에 비친 달을 읖조리던 풍류를 생각해 보며 즐거워했다.

 "서호는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비 오는 날보다 안개 낀 날이, 안개 낀 날보다 눈 오는 날이 더욱 아름답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나...

영은사(靈隱寺)

항주 서북쪽에 있고 동진 시대에 인도 승려 혜리에 의해 건립된 후, 명나라 초기에 다시 건축하여 '영은사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절 옆으로 작은 계곡이 흐르고 있고, 바위 면에는 많은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인파가 상당하여 차분한 절 분위기는 있을 수 없다.

늘 느끼는 점인데 우리네 절은 진정 깨끗하고 정갈하며 수행 도량으로 너무 좋다는 것이다.

절 안은 보수가 잘 되어서인지 비교적 깨끗하다. 절의 건축은 항상 그나라왕궁의 건축 기법을 따른다고 한다.  꼬리를 하늘로 뽑아 올린 지붕 모양새가 특이하고 서로 겹쳐 보이는 모양이 은근히 멋스럽다.

절안의 건물은 대웅보전, 천왕전, 약사전, 대비사, 연등각 등이 있고 특히 대웅보전은 33.6m에 단층 겹친 지붕으로 아릅답고, 석가모니 불상이 높이 24,8m에다 24쪽의 향나무로 조각하여 만들어져 있고 참배객이 붐빈다.

 

'

20존자 천불상(↑)

조각을 바탕으로 하여 입체적으로 조성된 불상이 현대적 분위기를 풍긴다.

중국인들은 스케일이 큰 것인지, 자기 본위의 이기심인지 향을 한다발씩 태우는 것이 너무 볼썽사납다. 향을 많이 태워야 소원을 이루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그러니 절집은 정갈할 수가 없고 연기에 그을려 부처님도 고생하신다. 이곳은 비교적 깔끔한 장소인 셈이다.

 

 

 

송성 가무쇼

송대의 역사와 고전, 신화와 전설을 토대로 세계의 가무와 현대 과학 기술을 접목시켜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대형 쇼.총 4막으로 1막은 태평 성대를, 2막은 전쟁을, 4막은 세계를 표현한다.

조명이며 무대 장치며 출연자들의 세련된 몸짓이며... 세계적인 쇼라는 평점을 받을 것같다. 예전에 심천에서 경극과 민속쇼를 보며 그거대한 규모에 가슴이 철렁했던 기억이 새롭다.
총 4막 중에는 대한민국을 공연하는데 아리랑 음률은 우리네 가슴에 파문을 그리며 일렁인다. 1시간 동안의 감동이 정점을 이루는 시간이다.

 

 

 

쇼 관람을 기다리며 사람들은  저자 거리에서 쇼핑도 하고, 마당에  마련 되어 있는 가마도 타 보며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낸다.

폭포에 연못까지 만들어 조경에 신경을 썼고, 돛단배 한척을 띄워 저자 거리에 고풍스런 모양새를 더해 준다.   

쇼를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보면 8년 동안 500만명 이상의 관객에 감동을 주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알게 된다.

잘 정비된 도로, 깨끗한 아파트 촌, 녹지가 많고 여유로워 보이는 시가지..., 항주는 소득 수준이 높고 의료 시설도 좋아 중국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 중의 하나라는 말이 맞는 것같다.
 

 

길거리에는 외제차가 상당히 많고, 푸른 색상의 영업용 택시가 멋스럽다. 택시도 거의 외제차 라고 한다.
 

 

서시(西施)
서시는 지금의 항주출신으로 중국의 4대 미인 중의 하나로 불리운다. 잘 웃지 않는 서시를 웃기기 위해 황제가 변방의 봉화를 올렸다는 고사도 있고, 비단 찢는 소리를 좋아하여 엄청난 비단을 찢었다는 이야기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표본이 되고 있다. 찡그린 모습조차 어여뻤다는 서시는 그러나 주나라를 침입한 흉노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3. 소주 (蘇州) 

2500년의 역사를 지난 소주는 시 전체가 와이청허(外成河)라는 운하에싸여 있고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운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물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쌀, 명주, 차, 물고기 등이 풍부하게 생산 되어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 불리기도 한다.
소주 시내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데 그중 주워정위안(拙政園)과  류위안(留園)은 중국 4대 명원의 하나라고 한다.

도시를 가로 지르는 운하와 잘 정돈된 건축물들, 유유자적하게 운하를 오르 내리는  배, 거기 정취 있는 정원들...
700년 전의 풍경을 상상하면 어쩌면 '동양의 베네치아'라는 표현이 썩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 
퇴락한 지금의 얼굴에서 옛날의 영화(榮華)는 찾기 어려우나
자본 주의를 스폰지처럼 빨아 들이고 있으니 변화는 시시각각 초 읽기에 들어 간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쑤저우에서는 도시 한가운데를 운하가 흐르고 있어 잘 보면 운치가 있을지 모르나 일단 물이 탁하여 지저분한 느낌이 먼저다.

주변 집들과 어우러진 운하와 다리의 풍경은 지난 날 아름다운 도시였음을 입증하고 있으나 지금으로서는 다소 초라하여 '동양의 베네치아'라는 말이 그들 특유의 과장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한산스(寒山寺)

육조 시대에 세워진 고찰로, 당나라 시인 장계가 '풍교야박'이라는 시를 써서 이곳의 정경을 묘사하여 유명해진 곳이라고 한다.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천지 가득 서리가 내리네
풍교에는 고깃배 등불 마주하고 시름 속에 졸고
고소성 바깥 한산사에
한밤중 종소리 울릴 제 객선이 닿았네."

 

선비촌의 모습

한산사와 맞 닿아 있는 고색 짙은 고을. 예전의 선비촌이었고 옛 모습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고 하는데 한산사 위층에 올라 가서 내려다 보면 실감이 난다. 우리의 남산골 정도인가 한다.

선비를 상징하여 종이와 먹을 대비한 흑백의 건물을 지었고 그대로 보전된 모습이 보기가 좋다.

역시 멀지 않은 곳은 개발이 되어 아파트가 빼곡하다.

한산사 경내는 소원을 이루게 한다는 부적이 장대 가득하게 펄럭인다. 물론 그들이 가장 좋아 하는 붉은 헝겊이다.

절 건물 입구에서 보시하는 우리 남편에게 그들은 갖은 공대를 다하여 감사 했고 금빛 나는 뱃지까지 달아 주었다. '무주상 보시' (댓가를 바라지 않는 보시) 를 익혀 알고 있고 실턴하려는 우리에게 쑥스런 환대인 것같았다.

 

한자는 본국에서 아주 빛을 발한다. 한자를 읽으며 다니니 중국은 역시 우리와 같은 문화권임을 새삼 알 게 한다. 하지만 중국도 자국의 어려운 한자 탓에 문맹이 많다고 판단하여 지금은 간자체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 전체가 공사중

소주의 첫 인상은 황사와는 다르게 먼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제 예전의 명성을 뒤로하고 현대화 물결에 발맞춰 도시 전체가 변화하느라 공사중인가 한다. 새로운 건물들이 치솟는 쑤저우는 멀지 않아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날 것같다.

삼정 전자를 위시한 우리 기업이 많다고 하고 그래서 우리 교민도 많이 거주한다고 한다. 호구탑을  차창으로 바라 보며 지나쳤다.

차창 밖의 세상은 지금 막 역사의 낡은 잠에서 깨어나 내일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표정으로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