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8년

스페인 여행기를 올리고 나서.

수행화 2008. 12. 22. 01:47
 

나에게 여행은 나비의 출생처럼 어제나 싱그러운 가벼움으로 시작한다.

내가 두르고 있던 일상을 허물처럼 벗어 둔 채 한 마리 가벼운 나비가 되어 날아본다는 기분이 일단 들기 때문이다.

나비의 삶이 유한하듯이 내게 허용된 자유가 길지 않기에,
나는 나비로서의 내 여정을 남 달리 더 소중히 여기며 매순간에 충실하려 애를 쓰는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은 보면서 또 찍으면서, 들리는 것은 들으면서 또 메모하면서...

그리고 우리의 목적지에 대한 사전 공부가 미흡한 나를 내심 질책해 가면서...

나를 힘 들게 하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임을 또 한번 알게 해 준다.
그렇게 힘 든 내가 나는 좋다. 그렇게 치열한 순간이 나는 좋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여행의 현기증이 다소 엷어지면서 정작 힘든 일은 시작 된다.

여행 사진 정리가 그것이다.

사진을 선택하고 손질하는 일에서부터 기억을 되살리고 메모를 정리해서 댓글을 쓰는 것,
그리고 그걸 최종적으로 홈 페이지에 올리는 일이 나에게 막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따금 하는 여행인지라 홈페이지에는 자연히 먼지가 지북하려니와
지난 번 작업한 것을 살짝 잊고 엉뚱하게 딴 짓을 벌이기도 하는 등 시행 착오를 거듭해 가면서 정리를 마쳤다.
나의 스페인 여행은 비로소 끝이 난 것이다.
내가 보내지 않고 붙잡고 있던 작은 기억들은 사뿐히 나에게서 떠날 것임을 나는 안다.
그러나 늦은 밤 컴퓨터에 눈이 찔려 가면서 즐거이 얹어 둔 사진들이 있어 슬프지 않을 것이다.

내 노고는 올리브 그린을 닮아가며 서서이 잦아들 것이다.  
스페인 여행에서 내가 본 Olive green, 초록에서 형광빛 선명함을 훅불어 날려 버린 빛깔,
이글거리는 태양에 약간 기죽은 채, 그러나  그안에 강인함을 지닌 멋쟁이 빛깔.
나는
올리브 그린을 확실히 알았고 끝 없이 이어지던 올리브 나무 숲을 스페인과 함께 기억할 것이다.


아름다운 것들, 애잔한 것들, 내가 보냈던 애정에 보답이 미흡했던 것들... 
내가 마주쳤던 공간에도 시간에도 감사하며 나는 또 다른 생의 나비를 꿈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