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0년

이한권의 책, '무소유'

수행화 2010. 9. 1. 18:15

 
법정 스님의 입적과 함께 범람하던, 스님을 칭송하던 그많은 말들은 시간 속으로 급격히 사라져 갔다.
전 생애를 통하여 보여 주신 가지런한 삶.
그 삶 자체로도 말 없는 가르침이다.

“수의도 만들지 말라. 관도 만들지 말라. 사리를 수습하지 말라. 내 이름으로 나왔던 모든 책은 절판해라. 나의 것이라고 남은 것이 있다면 ‘맑고 향기로운’ 재단에 줄 것이며, 내 머리맡의 책들은 아침마다 나에게 “스님, 신문이요” 하며 갖다 주던 소년을 찾아 주면 좋겠다…”

스님의 성품이 여실히 담긴 유언, 이 얼마나 간결한 삶의 마무리인가!.
그러나 막상 몸 하나 뉘이는 관조차 없이 평소 입으시던 가사를 이불 삼아 훠어이 불길 속으로 사라지시는 광경은 차마 똑바로 바라 보기 힘이 들었다.

눈만 뜨면 세상은 가혹하게 욕망을 부채질하고, 그 바닥 없는 욕심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으로 우리는 일생을 소진해 버리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채우지 못하는, 결코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뒤척이며 지새우는 우리네 삶에 스님의 말씀
‘무소유’는 한번쯤 스스로의 내면을 살펴 보게 했었다.

오래 전에 스님의 책 ‘무소유’를 사서 읽었으나 읽었다는 느낌뿐,
그 책이 문고판으로 작고 워낙 빈약하기에 이사 통에 쓸려 나간 줄로만 알았는데 일 삼아 찾아 보니 그래도 책장 한구석 작은 자리를 차지하고 남아 있었다.
정가 1600원이 붙어 있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소박한 책이다.
스님의 말씀대로 내가 이 책과 시절 인연이 닿아서인지 없어지지 않고 있어 너무 반가웠고 단숨이 읽어 내려 갔다.
전에 읽었던 기억은 갈피 사이 가뭇 가뭇 보이고 새로운 감회가 오롯이 서린다.

24편의 짧은 글을 모은 것 중 한편의 제목이 무소유로 붙여져 있었다.
오래 동안 애지중지 난을 길렀으며, 난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에 행복해 했었다는 것,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관심과 애정은 속박이 되어버렸다는 것.
난을 떠나 보낸 연후에야 그 간에 난이 자기 정신을 많이 지배 했음을 알았고,
그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짐이 행복이요, 무소유의 삶이 진정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짧은 감상이다.
자기가 소유한 물건은 궁극에는 거꾸로 그 물건이 자기를 소유하게 되는 현상이 되어버린다는 깨달음이다..

짧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글이다.

1954년에 출가하여 쌍계사에 은사 효봉 스님과 수행하고 계셨다 하니 공연한 유대감, 친근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 어릴 쩍, 초등학교 시절 쌍계사의 기억.
화개장에서 하루에 한 두 번의 버스편이 전부라 대개 걸어서 장터까지 다녀야만 했던 시절.
고시 공부 하는 오빠에게 먹거리를 전하러 가시는 엄마를 따라 가 본 그길 위에 내린 적막, 개울물 흐름이 천둥처럼 느껴지던 그 고요.
더더욱 적막하고 고요했던 쌍계사 탑전과 금당의 기억이 스님의 글에 오버랩 되면서 공연히 슬퍼짐은 무엇이가?

스님을 올곧은 수행자로 나게 해 준 쌍계사의 기억을 망치기 싫어 가보지 않고 마음에 아껴 두고 있다시는 말… 가슴 저린다.
세월이 많이 지나 쌍계사를 찾았을 때 나의 감회로 미루어 스님의 마음을 이해해 보기도 한다. 옛 그리움이 받은 치명적 손상...

어린 왕자에게 편지를 쓰고 또 쓰고, 가을은 독서하기 보다 차라리 모든 이웃을 사랑하게 하는 이상한 계절이기도 하다고 노래할 수 있는 스님의 영혼은 어린 왕자를 닮았나보다.

“오늘 나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다.”
스님다운 스님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이었기에…..모든 것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보다 많은, 보다 큰 것이 주는 행복의 면역성, 중독성과 거품.
아는 것과 실천함에 크나 큰 간격이 바로 내게 있음에 슬프다.
나를 다독이게 하는 이 한 권의 책. ‘무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