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0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스-영적 세계로의 여행>

수행화 2010. 9. 1. 18:16

그늘을 찾게 되고, 방바닥의 찬 느낌이 좋아질 무렵이면 나는 책 읽기가 즐거워진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누웠다 엎치락뒤치락 뒹굴어 가며 긴 소설을 읽으면 여름이라는 계절이 마음에 들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희뿌옇게 새는 새벽을 맞는 것도 좋고, 비 오는 날이면 빗소리를 배경 음악 삼으니 그것도 좋아한다. 아들이 읽어보라고 한참 전에 가져다 둔 책인데 차일피일 시작을 미루다가 더위가 문지방을 넘나 드니 비로소 읽기 시작한 책,
타나토노스’. 프랑스의 젊은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이다.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딤
1969 달에 첫발을 내디딤.
2062년 사자들의 대륙에 첫발을 내디딤.
2068 영계에 첫 상품 광고 등장
.'
타나토노스란 그리스어 타나토스(Thanatos:죽음)와 나테우스(nautes:항행자)가 조합된 말이라고 한다. 즉, 저승을 항행하는 자, 영계 탐사자라는 의미라고 한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첫 페이지에 우리가 유념해야 할 연도들을 또박또박 기록하면서 사후 세계 여행을 안내한다.



죽음은 연습도 경험도 없는 단절의 말이다. 사후 세계에 대한 여러 묘사들은 증명할 수없는 궁금증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궁금증에 착안한 인간은 영계탐사라는 기발한 대 도전을 감행한다. 영계 탐사팀을 결성하고, 숱한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천계(天界)의 단계를 알아냈고,  단계별 탐사도 성공해 내는 쾌거를 이룬다. 이후에도 탐사는 계속 되어 영계()에 대한 상세한 지도까지 완성하는 눈부신 성과를 이루면서 인간의 현실세계애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영계란 결국 은하계의 거대한 블랙홀이며, 그 우주적인 대륙은 일곱의 천체로 이루어져 있고, 제 6의 천계까지는 윤회의 세계이고 제 7의 천계는 천사의 세계라고 밝힌다. 사자(死者)의 영혼은 이승에서의 자기 업장(業障)에 따라서 각기 다른 천계에 배치 되는데 그런대로 제 6천계까지는 입문이 되어지는데 제 6천계의 끝자락에서 제 7천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승에서 쌓은 선업과 악업의 계량이 이루어지고 이 판정에 따라 자격이 주어지면 제 7천계에 진입하게 되는데 그것으로 윤회는 끝이 나며 영원히 생사가 없는 천사의 세계로 나아가는 시스템으로 되어있다고 밝혔다.
제1천계:청색
제2천계:암흑
제3천계:적색
제4천계:주황색
제5천계:황색
제6천계:녹색
제7천계:백색

그래서 제6 천계의 끝에는 업장을 계량하는 계량소가 있어 엄격하게 심사를 받게 된다. 제 7천계에 진입하려면 업장의 계량 커트라인 점수 600점을 넘어서야 가능하다. 악업은 물론이요, 타고난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태만한 자에게도 마이너스 점수가 매겨지는 독특한 전형 방식으로 천사를 선발하는 것이다. 재능을 낭비하면 대가를 치루게 하는 전형 방법이다.

영계 탐사의 성공이 굉장한 관심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초로 영계를 탐사하고 온 자는 유명인사가되어 온갖 미디어에 얼굴을 내보이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게 된다.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시절의 우주인을 재현해 보여주는 느낌이다.

이런 영계 탐사를 통해 천국에 들기 위한 전형 방법이 소상하게 알려지면서 세상에  변화의 폭풍이 불어 닥친다.

보다 나은 내세의 행복을 꿈꾸는 사람은 일찌감치 현세를 정리하겠다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게되고, 자선단체에는 기부금이 홍수처럼 밀려 들었고, 세상 곳곳에 야기됐던 만성적인 분쟁은 저절로 종식 되어지고, 거지의 깡통 앞에는 적선하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줄지어 거지를 귀찮게 하고, 자기가 훗날 혹시 태어날지도 모를 제 3세계의 가난이 걱정되어 미리 도와 놓으려는 원조가 쌓이는 등 선행의 고득점 확보를 위해 갖은 노력을 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들이 업장 관리에 매달리고, 600점이라는 커트라인 환산에 연연하게 되니 급기야 일본의 어느 전자 회사는 선업과 악업의 점수를 환산하는 기계를 발명하게 된다. 매일 매일 자신의 선행과 악행을 입력하며 실시간으로 자신의 업장 점수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영계 탐사가 안정적 단계에 접어들면서 영계를 직접 체험해 보려는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은 상업성과 잘 부합하여 2068년에 최초로 영계 여행단이 모집되는 역사적 계기가 생겼다. 영계 여행 기념품점이 생겨나서 호황을 누리더니 곧 이어 영계의 입구에 상업광고가 펄럭이는 역사적인 날이 오게도 되었다. 탐사여행의 인기가 가열되니, 세계 각국은 각자 영계 탐사대를 조직하며 기득권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생물학적 죽음을 맞은 1인칭의 화자는 이승의 삶을 마치고, 버라이어티한 천계의 단계를 각고의 노력 끝에 통과하고 마침내 제7의 세계, 천사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으면서 다음 ‘천사들의 제국’에서 활약하게 된다.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이와 연관성이 있는 또 다른 책을 끼워 읽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를 비롯한 각 민족의 신화와 설화들이 거론되고, 종교나 철학에 대한 언급이 군데 군데 짜깁기 되어 있어 이해를 도와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상상을 도우고 무게감을 느끼게 하여 가상과 현실은 더 강하게 조합되는 것 같다.

모르긴 하지만 작가는 이 소설 테마의 근간을 불교 경전에서 얻었지 싶다. 불교의 내세관과 절묘하게 맞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일곱 단계의 천상계를 거치는 점이 우선 맞다. 제 6 천계까지는 영혼이 육도 윤회를 거듭 하게되고, 제7의 천계에 이르면 윤회는 끝이나면서 더 이상의 환생이 없는 영원한 자유와 해탈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 불교의 내세관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행간에 씨줄 날줄로 불교적 관점이 차용된 것으로 보아 작가의 불교 공부가 아주 깊지 않나 혼자 생각해 봤다.

보살을 정의하는 부분도 눈에 들어 왔다.
교리 상으로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이 진정한 해탈이요, 해탈을 얻는 데는 카르마(업)가 작용한다. 해탈을 이루지 못한 영혼은 많은 생을 거듭하면서 끊임 없이 윤회한다. 그러나 여기 해탈해서 이미 윤회의 고리는 끊어졌고, 영원한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스스로 이승의 고단한 삶을 다시 선택하여 자비행을 베푸는 자가 있으니 즉, 그를 보살이라고 정의한다는 부분에서는 불교 교리 인용편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저승 입구에 업경대라는 거울이 있어 자신의 일생에 걸친 업을 일시에 비추어 보아 심판이 내려진다고 하는데, 소설 속에서 일본제 저울로 응용된 것이니 그 기발한 발상이 읽는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아주 강조하고, 이러한 설법이 있다. 육도 윤회의 세계에서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좋은 스승 만나기 또한 어렵다는 점이 아주 강조된다.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함은 환생의 기회인 제 6의 세계까지는 진입해야 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어렵고 희귀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비천한 삶을 영위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이라는 생명 자체는 전생에서 많은 공덕을 쌓은 결과라는 것이다. 비유하기를 마치 망망대해에서 거북이가 자기 몸 의지할 널빤지 하나를 만나는 우연만큼의 확률인 것이니, 모든 중생은 자신을 아끼고 인생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윤회의 진정한 의미로 내가 늘 간직하고 싶은 가르침이다.

죽음은 모든 것과의 이별이며 슬픈 맥락의 주제라 어둡고 무거워야 할텐데도 작가의 영계 여행은 죽음이 그저 삶의 또 다른 과정같이 여겨져 재미있게 들린다. 작가의 상상력과 공력으로 사후 세계를 역동적이고 유머러스하게 경험해 봤다고 해도 될 것같다. 그리고 우주탐사가 현재 진행형이듯이 이 기상천외하고 거대한 영계탐사의 프로젝트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것만 같은 공상이 작동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