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1년

'혼불'을 다 읽은 후

수행화 2011. 8. 31. 00:59

 삼복 더위는 장편 소설과 함께

더위에는 책 읽는 것만한 게 없어, 읽겠다고 벼르고 벼르던 장편 소설 혼불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쉬엄쉬엄 읽으려고 게으른 자세로 엎드려 첫장을 훑어 보던 나는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나 앉아 공손한 자세로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너무나 공이 들어 간 아름다운 글귀를 마주하니 저절로 예를 갖추게 된 것이었던가 한다.

그래서 총 10권을 일주일 만에 소나기 퍼붓듯이 다 읽었는데

 

마지막 10권에 접어들며 느끼던 불안은 차가운 사실이 되었으니 실로 애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울적한 심사가 오래 갔다.
작가 최명희는 작픔을 끝맺지 못하고 생애를 마친 것이다.
원고지 앞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장엄하게 전사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주 무리한 상상은 아닐 것이었다.


종가의 영광을 위해 생을 바치는 종부 3대에 걸친 고통과 애환의 가족사는 일제 시대의 격동과 개화의 물결과 씨줄 날줄로 슬프고도 애잔하게 엮어지는 이야기이다.

 

폐쇄적인 집성촌에서 홀로 심정이 연두로 물들어 버린 근친간의 사랑은 비극의 시작이며, 상하가 엄연한 계급 사회에서 신분 상승을 꾀하는 상민의 가혹한 도전, 거스를 수 없이 밀려 오는 개화의 물결에 출렁이는 가문에 드리우는 잿빛 어두움, 이 격한 파도를 여인의 몸으로 온 지혜를 다해 헤쳐 가려 했으나 작가는 뜻을 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날 밤 인월댁은 종가의 지붕 위로 훌렁 떠오르는 푸른 불덩어리를 보았다. 안채 쪽에서 솟아 오른 그 불덩어리는 보름달만큼 크고 투명하였다. 그러나 달보다 더 투명하고 시리어 섬뜩하도록 푸른 빛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청암부인의 혼()불이었다.

어두운 반 공중에 우뚝한 용마루 근처에서 그 혼불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윽고 혀를 차듯 한 번 출렁하고는, 검푸른 대밭을 넘어 너훌 너훌 들판 쪽으로 날아갔다.

서늘하고 눈부신 불덩어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향하여 인월댁은 하늘을 우러르며 두 손을 모은다.

삭막한 겨울의 밤하늘이 에이게 푸르다.

사람의 육신에서 그렇게 혼불이 나가면 바로 사흘 안에, 아니면 오래 가야 석 달 안에 초상이 난다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강인함과 자애로움으로 종가를 일으켰으며, 굳건히 지키던 종부의 혼이 너울거리며 사라지는 장면이다.

치밀하고도 아름답게 묘사한 것이 감탄을 불러 온다.
지난 시대 우리의 삶을 부분, 부분 끌어 내어 깊고도 아름다운 언어로 또박 또박 전하고 있는 것이다.
혼례나 상례, 상민들이 즐겨 부르는 가락이며, 설화며, 모녀 간에 오고 간 서간문이며, 심지어 윷으로 보는 점괘에 이르기까지

예스러운 정취가 행간에 가득하니 가히 잘 그린 단아한 한 시대의 풍속도를 보는 것처럼 진진하다.

잘 복원된 문화재를 바라 보는 것과 진배 없는 감동은 나만의 것이 아니리라 믿는다.

민속과 전통의 지침서라고 할만하니 미국에서 대학교재로 활용하나 보다.

 

꽃심을 지닌 땅이라 예찬하는 자기의 고향, 전주,

실로 너무 생생한 전라도 사투리와 시간의 강을 따라 흘러 가 아주 잊혀져 나간 언어들이 되돌아와 많은 지면에 춤을 추며 살아 움직이니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질겨서 더 슬픈 상민의 삶은 진한
전라도 사투리와 해학적인 얘기들로 질펀해져 인간미를 물씬 풍긴다.

우리 삶의 원형을 보는 것, 먼 과거의 행로를 쫒아 보는것, 슬프고 애잔함만 남는다. 아름답다.

 

쓰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나는 엎드려 울었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를 파 나가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공경의 마음으로 작가의 말을 들었고 혼을 불어 넣어 쓴 아름다운 글은 고운 등불이 되어 꺼지지 않으리니.
늦으나마 작가의 영면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