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앨범/2011앨범

국립 중앙 박물관 산책

수행화 2011. 11. 6. 15:36



 

관람차 몇 차례 박물관 출입을 했건만 한가로이 걸어 보기는 처음.
아름다운 정경에 놀란다. 
지하주차장에서 관람실로 직행했고 또 바로 돌아 갔던 지난 어리석음에 잠시 어이가 없다.



물에 뜬 정자를 바라 보며 박물관 안으로 걷게 된다.
이제 전시실이 궁금하지 않아도 될 것같다.



시선은 포물선을 따라 가다 차분한 원을 만들며 멈춘다.
일부러 물을 따라 걸으며 아름다운 계절과 나의 시간에 감사한다.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저 물 곁에서 얼마간 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어디에 어떻게 시선을 두어도 멋지기만 하다.
인파에 떠밀려 바쁘게 숙제를 해 치우듯 관람장으로 돌진했던 내 여유 없었던 모습에 홀로 실소한다.



머리를 들어 본다.
우주를 향한 시간의 째각거림이 들리는 것같다. 
 유물에 겹겹이 입혀진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는 바로 그시간들.
찰라와 영속성...한이름이다.
       


자연광 아래 밝은 실내가 좋다.
밝아서 더 기하학적 그림이 되는 멋진 그림자도 좋다.


햇빛은 멋쟁이 지붕을 투과하며 세련된 음영을 곳곳에 드리운다.
키 높은 탑은 이층에서 보아도 높고 우아하다.



이층 커피숍.
다리도 쉴겸 앉아 바깥 정원을 봐도 좋다. 
액자 속 저고리를 보니 명절마다 설레이며 입어 보던 설빔, 추석빔 생각이 떠올라 애틋해진다. 



박물관 옆 오솔길은 용산 가족 공원과 이어져 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뜻밖에도 어여쁜 연못이 미니이쳐같은 숲을 안고 있다.  
'미르 연못'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귀여운 폭포까지 갖추어 여간 멋진게 아니다.  
미르는 '용'을 의미한다는데 아무래도 좋다.



 현실과 수면의 세계가 모호해진다.
 "세월이 팔을 한껏 비틀어도 나는 내 그림자에 취해 여기 이렇게 살꺼야 !"
나무는 말하고 바위는 묵묵히 듣고 있는 것같다.
내 아이폰 카메라가 푸른색을 좋아한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지만 주인의 취향을 아는 것같아 나는 좋다.   
영원한 나의 blue...



실내에 전시할 수 없는 많은 유물들로 야외 전시장은 또 다른 볼거리다.
우리 유물은 불교 유적이 대부분이라 사찰 순례라도 온 기분이 들어 즐겁다.



가을을 마련하는 많은 전령이 있다는 걸 내 정녕 알지 못했다.
갈대만이 가을을 노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강아지풀이 자라 갈대의 모습으로 가을 가운데 있다는 것을...



돌아서 나오며 저 단아한 정자에 다시 한번 눈길을 준다.
박물관은 우리 영혼의 쉼을 위한 또 다른 의무를 수행하기도 하는가 싶다.



따끈한 가을 해가 마당에 막대 그래프를 그린다.
밤을 밝히는 소임은 따로 있으나, 햇빛을 긴 목에 가득 담고 길목을 지키는 모습 또한 근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