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7년

세월이 가르쳐 준 것

수행화 2008. 8. 25. 14:30
눈이 내리고 쌓이고, 쌓인 눈 위로 밤이 내리고, 시간도 그렇게 소리 없이 쌓여 가는 그림같은 겨울 속에서... 지금 우리는  동면하듯 긴 휴식 속에 있다.
보름이 넘게 내린 눈은 천지를 설국으로 만들었고 창을 스크린인양 나는 그영상을 즐기고 있다.

딸의 산후 조리로 집에서만 지내는 우리에게  찬란한 창 밖의 설경은 우리의 휴식을 축복하듯 멋진 정경으로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아기는 우리 생활의 단조로움을 순식간에 떨쳐 주는 커다란 존재로 우리에게로 와 이고요한 풍경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아기를 낳아 안아 보면서 여자는 자기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고통과 함께 내게 와 안긴 이 생명에게 불현둣 피어 나는 사랑의 감정을 바라 보며 사랑의 의미를 다시 정립하게 된다.
지난 날 사랑이라고 여겼던 많은 것들이 혹은 허구이고 혹은 감정의 낭비였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어줍잖은 말이나 감정의 사치로 사랑이라는 말을 떠 올리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된다.

출산의 고통을 겪는 딸을 바라 보는 것은 내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고 내가 지나 온 힘 든 시간의 기억을 떠 올려 보게도 했다.

시간이 지나 감정의 여과를 거쳤기에 담백한 상념만 남아 있는 그시절의 기억을.
출산은 내게 한 없는 소외감과 외로움으로 닥아 왔다.
지금껏 내가 가졌던 모든 것을 이아이와 바꾼 것이라는 우울한 심정에 빠지고,
내가 지향하고자 했던 갖은 갈망은 아이 엄마라는 현실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는 것.

나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내게 의지해 이세상에 온 아이에 대한 예의와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이아이는 나를 불사른 재 위에서 불길같이 일어 나 내 모든 갈망을 태우고 푸르디 푸른 한그루 나무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나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하여 아이에게 몰입했고 의식, 무의식의 노력에 들어갔던 것같다.

아이를 기르면서,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우리는 인간다워지고, 성숙해지고 낮은 자세로 살려고 애 쓰게 되고,
그래서 아이는 우리의 인생을 길 들이고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딸은 지금 심리적 안정기를 거쳐 가는 중이다.
아기를 바라 보면 얼마나 경이롭고 벅찬 감격을 맛보면서 이율배반적으로 절대적 고독과 또 마주하게 되는지!
아이와 가족과 무관하게 내면적 외로움은 강물처럼 마음 깊이 흐르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엄마의 힘으로 그고통을 견디게 된다는  것.

아이는 세상에 나와 엄마에게 많은 걸 가져다 주고 또 엄마에게 많은 걸 요구하게도 된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려서는 안 되는 엄마 본연의 모습을 요구 받는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엄마 되는 일이 가장 힘 든 일이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엄마는 처음 보는 세상이며 세상의 모든 것이기에 엄마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엄숙한 의무 앞에 세게 된다.

지난 세월 주문처럼 뇌이며 살던, 거의 좌우명이 되어 버린 나의 결론이다.

딸은 삶에 정면으로 당당하게 도전하는 강인함이 있기에 짧은 시간에 멋진 엄마의 모습으로 거듭 나리라 믿는다.
정말 빛나는 변신이 기다릴 것이다.
눈과함게 깊어진 겨울 밤에 생각을 해 본다.

행복하게 잠든 아기를 바라 보며...
아기에게 빛나는 세상을 가져다 줄 딸을 생각해 보며...

2007-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