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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멘, 비밀의 방

수행화 2012. 2. 27. 16:22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 제 18왕조 제 12대 왕의 신분이다.
B.C 1316년 9세 나이에 등극하여 18세까지 9년간 재위했다고 한다.
투탕카멘의 유물이 발굴되면서 널리 알려진 인물인가 한다.

젊은 나이에 죽은 그에 대한 많은 의혹, 타살설, 저주의 설...
그러나 그는 전차 사고에 의한 부상의 감염 쇽크로 죽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왼쪽 다리의 골절로 보아 전쟁이나 사냥을 위해 고도의 전차 훈련을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는 것이다.

1922년 11월 26일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 1873~1939)와 재력가 카나번 경은
 3300년 동안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투탕카멘의 무덤을 열었다.
놀랍게도 1703점의 유물이 매장 되어 있었고,
 도굴되지 않은 유일한 왕묘로서 당시 파라오의 매장 관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 것이다.

 독일 학자와 기술진이 투탕카멘의 무덤과 보물 1300여점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실물과 똑같이 제작해
 선보인 것을 전시한 것이다.



무덤의 구조
짧은 계단을 지나면 전실, 별실, 현실, 보물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각방에는 600개가 넘는 유물들로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보물뿐 아니라  의류, 소형 가구, 보드게임 등 무수한 일상용품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투탕카멘의 보물은 고대 이집트의 오랜 전통을 반영한 것으로서, 내세로 안전하게 들어가도록 보장하는 것인데,
고대 이집트인들은 왕이 즉위후 자신의 무덤을 계획하고 물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투탕카멘의 미라가 든 상여을 12명의 귀족이 열을 지어 운반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벽화.
보물의 방 입구가 있는 동쪽 벽의 그림이라고 한다. 
투탕카멘 무덤은 왕묘 중 장례 행렬 장면이 장식된 유일한 무덤이라는 것과,
개인의 무덤 벽화에 묘사돼 있는 귀중한 장례용품들을 완벽하게 갖춘 유일한 무덤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한다.


 

왕이 사후에 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장하려고 복잡한 의식이 생겨 났고,
이 의식에 사용한 것들이 함께 출토 되었으니,
왕의 영혼이 내생에서도 영원히 삶을 지속하기 위해 사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봉헌한 것이다.
관을 따라 미라의 내장이 담긴 상자, 카노포스 사당이 바로 뒤따르며 무덤을 향해 엄숙하게 행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투탕카멘이 하늘의 여신 누트 앞에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먼저 목재에 금도금을 한 거대한 사당이 나타나고, 다시 그 안으로 제2의 사당, 제 3의 사당,
  마지막으로 석관이 들어간다.
석관 안으로 두겹의 금빛 관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미이라를 보관한 금관이 나타 나는 어마 어마한 구조이다.



제 2 사당의 외관. 목재에 금도금을 한 재질로서, 
글이며 조각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을 터이나 우선 아름답고 장엄한 것에 감동부터 하게 된다. 
암호 형태의 글들은 해독이 어려워 '저승 세계의 신비로운 책'이라고 묘사하였다고 한다.
문에는 섬세한 조각이 있는데 '이시스 여신'이 왕을 저승 세계의 신에게 인도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제 3사당.  사후 세계의 밤의 두번째 시간이라는 설명.
위쪽에 씌어진 글들은 사후 세계의 신들이 죽은 투탕카멘을 자신의 일원으로 환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제 4 사당, 수호신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얕은 부조 형식으로 조각 되었는데 각종 신과 장기를 지키는 신의 모습이라고 한다.


 

분홍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마지막 석관으로 현재 투탕키멘의 무덤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석관의 긴면 양 옆에는 머리끝 부분 와제트의 눈이 장식 되어 있고,
여신 이시스(왼), 네프티스(오)는 모서리에 부조 양식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모두 미라의 머리 쪽을 쳐다보고 있다.


 


몇개의 사당과 몇겹의 관을 담고 가는 상여에 새겨진 문양.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도이다.
거대한 사당(祠堂) 속에 몇 겹의 작은 사당들이 중첩되어 있고, 그 한가운데에 황금관이 있으며,
관 속에 빛나는 황금 마스크를 쓰고 보물로 장식된 미라가 누워 있는 구조이다. 



석관 안쪽에 안치된 바깥 관, 금박을 입힌 나무로 만든 오목한 형태의 거대한 카우치,
앞 부분은 사자 두마리의 머리, 뒷 부분은 꼬리로 장식 되어 있다.
(길이 221cm, 너비 85cm, 높이 26.5cm)


 
윗쪽은 첫번째 관, 아랫쪽은 가운데 관.
가운데 관은 깃털 모양의 옷으로 싸여 있으며,
 휘장과 턱수염은 그가 내세를 지배한는 통치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황금 마스크를연상시키는 두건을 쓰고 있다.
( 204cm, 68cm, 78.5cm)



 여신 이시스가 날개를 펼친 새모양으로 조각 되어 있는 관. 

 

 


깃털 모양의 무늬는 수많은 도금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고 잘라 놓은 다양한 색채의 유리와 준보석이 박혀 있다.
하늘색, 터키석, 감청색은 라피스 라즐리, 적색은 홍옥수.
칠보세공으로 이집트 전역에 널려져 우리도 익히 보아 온 문양이다.


 

 무게 110.4Kg 나가는 가장 안쪽의 순금관은 무덤에서 나온 유믈 중 가장 멋진 보물.
다리 부분에 여신 이시스와 네프시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미이라 형태의 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금관.
깃털 옷을 입고 신을 상징하는 턱수염을 하고 있으며, 양쪽 팔에 왕홀을 쥐고 두건을 썼다.
이관의 얼굴 표정은 공식적이고 이상적인 왕의 초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순금관 속의 왕의 미이라.
황금 마스크, 가슴 주위에 여려 겹의 목걸이 장식,
독수리와 매, 날개 달린 뱀의 형상, 팔뚝에 여러겹의 팔찌,
143개의 부적 역할을 하는 이런 장식들은 고정된 패턴에 따라 미이라 위에 고르게 놓여진다고 한다,

새는 내세를 사는 사람들의 일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고,
언제라도 관 속에서 미이라와 자유로이 재결합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금관 속의 황금 마스크
무게가 11Kg인 이 마스크는 미이라의 머리 위에 씌워져 있다.
살아 있는 듯한 눈에는 석영을, 눈동자에는 흑요석을 상감해 넣은 것이라고 한다.
줄무늬 두건 앞 이마에는 신성한 상징 두개가 달려 있는데 이집트의 독수리 머리와 이집트 뱀의 몸통이다.



이집트의 상징처럼 칠보 세공으로 널리 퍼져 있는 황금 마스크.
 


이집트에 간다고 해도 더 잘 볼 수 없으리만치 자세히 바라 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된다.

 


카노포스함.
왕의 부활에 필요한 내장을 담기 위해 네 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네 칸은 각각 왕의 머리모양 뚜껑으로 닫혀 있다.
모서리에 부조로 묘사된 네명의 여신은 팔을 양쪽으로 뻗어 함을 보호하고 있다.  
궤는 썰매에 연결되어 끌 수 있게 만들어졌다.

( 높이 55.5cm, 너비 54cm ) 


카노포스 사당
예배당 형태의 카노포스 사당, 글이 새겨진 모서리 기둥과 함께 궤가 덮고 있고 썰매 위에 놓여 있었다.
사당 사면에는 네명의 여신이 각각 보호하듯 팔을 뻗어 사당을 지키고 있다.
여신은 각각 이시스, 셀케트, 네으트, 네프티스라고 한다.
( 높이 198cm, 길이 153cm, 너비 122cm )



왕의 내장을 담기 위한 황금단지를 넣기 위해 만들어진 만들어진 금도금의 궤 ,
손잡이는 황금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1703점의 출토품 중에는 왕의 부활에 필요한 내장을 넣은 카노포스 용기나 신상, 왕상 외에,
 현세와 마찬기지로 내세의 생활에 필요한 왕좌 • 침대 • 함 등의 가구나 그릇, 의류, 장신구, 무기, 수렵구,
전차 등이 포함되어, 당시의 호화로운 궁정생활과 높은 공예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장례식에서 일꾼들은 받침대 위에 얹힌 이 배를 어깨에 얹어서 운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집트인들은 태양신의 움직임을 따라 하늘의 바다 위에 함대가 떠다니고,
 사후 세계의 물 속을 헤치며 가는 것으로 상상하여 배에 실어 운반한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우사티브'란 부름에 응하는 자의 뜻으로서 내세의 하인들이다.
작은 미리 형태의 조각상들은 장례식이 끝난 뒤 붕대로 싸서 관에 넣어졌다고 한다.
손에 쟁기를 쥐고 있거나 , 어깨에 씨앗 주머니를 걸친 모양들로서 노동자의 모습이다.


 
바퀴 살이 여섯개인 전차 여섯대가  해체된 상태로 보관 되어 있었다.
방패를 비롯하여 당시의 무기들이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가 있다.

 


슈신이 받치고 있는 머리 받침대.
조형적으로 잘 만들어진 것은 물론, 아름다운 여신의 조각상이 돋보인다. 


 

 투탕카켄의 옥좌.
화려한 발 받침대가 있으며 조각 장식에 화려한 금박이 입혀진 것이다.
등판에는 생명을 주는 태양 아래에 있는 왕과 왕비를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왕비가 왕에게 향유를 발라 주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한다.


 

옥좌의 뒷면.


 
 

왕의 조각상



미이라의 보석, 호신을 위한 부적, 아름다운 장신구들.

 

 

금을 입히고 준보석으로 장식된  접이식 옥좌

 

 
상아로 만든 궤.

 사당을 모신 배를 여시과 신하가 호위하는 모습의 공예품

아름다운 문양의 궤.
 

 

 


화장품, 보드게임, 무기, 악기, 유리컵, 필기구, 면도날, 횃불, 심지어 응급치료 상자에 이르기까지
 사후(死後)의 삶에 준비를 철저히 한 투탕카멘.
전시품으로 보아 당시의 문화와 사치 수준을 짐작할 수가 있다.
많은 전시품을 헤아려 다 담을 수가 없어 아쉬울 뿐이다.

고대 이집트인은 왕이 죽어 신이 된다고 굳게 믿었으며,
죽음은 곧 영생의 시작이라 여겨 장엄하게 매장을 했을터인데,
영원의 세계에서 자기 삶이 파 헤쳐진 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 어떨까 싶어진다.

내 짧은 식견으로 어찌 다 이를 수가 있는가?
시공을 훌쩍 넘어서 버린 지금, 여기서 기원 전의 문화를 본다는 것. 새삼스런 감회이다.
당시의 심미안과 예술적인 안목은 이집트 민족 나아가 인류의 지대한 능력이라 생각된다.

    
< 2011년 11월 3일 관람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