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순수한 무심이 되자

수행화 2012. 3. 12. 00:08

부처가 되겠다는 것이 좋은 마음일지라도 그 마음에 매달리는 것은 좋은 의미의 갈등이요 집착이며 얽매임이니,

그런 얽매임마저도 없어야만 한다는 것이 본문의 무일념 심희구불과(無一念心希求佛果)이다.

< 자유인 임제 P. 105

 

실체 없는 마음은 산란한 것이어서 나쁜 생각을 할 때는 물론이려니와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할 때일지라도 그 생각으로 인하여 마음은 흔들리는 것.

무심의 상태란 쉬운듯 어려운 것이지요.

 

지공화상의 말씀 중에,

부질없이 스스로 선하다 칭하면 짓지 못 지을 악이 없다.

즉 선하다는 생각에 몰입하면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망자칭선무악부조 : 忘自稱善無惡不造)

달마 대사의 말씀 중에,

즉 대저 무심이라는 것이 진심이며 순수한 마음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부무심자즉진심야 : 夫無心者卽眞心也) 

 

취사, 선악의 분별을 벗어나 앎에도 구속됨이 없는 순수한 무심의 경지를 거듭 강조하십니다.

그렇다고 혼침과 도거의 상태는 경계해야겠지요.

           

     혼침: 정(靜), 적(寂), 정(定), 지(止) : 정신이 흐릿하며 조는 상태

     도거: 동(動), 성(惺), 혜(慧), 관(觀) : 망상에 든 상태.

 

마음 없는 "무심" 이라지만 진심마저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신령스럽게 고요한 경지에 이르라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도 자기와의 투쟁에서 오는 심신의 고통과 갈등도 정도를 넘어서면

어느듯 희열에 가까운 고요한 경지에 이른다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망상, 집착이나 혼침과 도거의 혼돈 상태를 부단히 겪다보면 무심에 이를 것이라 여겨집니다.

    

독경이든 좌선이든 사경이든 자기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찾아 삼매에 드는 것도,

무심의 시간을 갖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삼매는 불교에서 유래된 용어이지요. 

 

섭심(攝心)을 가지고 흩어지는 마음을 안으로 안으로 불러 들여

무심의 경지에 이르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선악을 철저히 구별하며 이교도를 악으로 간주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등

응징과 심판의 기독교 사상과의 크나큰 차별성이 여기 있습니다

불교 사상이 세계에 두루 펼쳐진다면 지구에는 저절로 평화가 올텐데요.

 

 

< 2011.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