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논리만 있고 실천이 없는 불교는 가라

수행화 2012. 3. 12. 00:23

이 나라는 인도의 동쪽 멀리 있어 도를 닦는 가르침이 없다.

가르침이 없기때문에 어떤 자는 소승의 가르침에 빠져 있고, 어떤 자는 온갖 외도의 가르침에 빠져 들고,

어떤 자는 귀신선에 빠져 들어 사물을 관찰해 보고 남의 집의 길흉이나 일러 주니 가엾은 일이다.

더 큰 재앙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고 남들마저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다.

                                     < 자유인 임제 p. 255 >

 

453년 중국에 도착하여 많은 경전을 번역한 구나발타라가 당시의 중국 불교를 비판한 글입니다.

불교는 본래의 가르침을 벗어나 권선징악의 인과 논리에 안주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서기 67년 경에 중국에 불교가 들어 와 안착하는 데 거의 300년의 세월이 걸렸다는군요.

많은 역경 사업이 있었고, 따라서 수많은 경서가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교학이 발전하는 가운데 논리는 발전하고, 실천은 약화 되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입니다.

부처님 설법도 제 1의제로 하시다가 세속의 근기에 맞게 차제 방편으로 제 2제의 설법을 하셨다고 합니다.

 

                ※제1 의제 (第一義諦) : 진제. 승의제

                                       불교 본래의 정신인 근원적인 깨달음.

                  제 2의제 (第二義諦) : 속제.

                                      근원적인 문제보다 세속의 관심이나 인과 관계에 치충함.

 

그러나 " 3 아승지겁을 수행해야 부처가 될 수 있다" 는 등의

논리로 부처님의 위대성은 강조되었고 신앙적 존재로 중생과의 괴리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空의 개념이 도입 되고,

불교는 허무주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위자연 사상에서 나온 無로 해석 되는 등 격의 불교가 등장하였습니다.

격의 불교를 벗어 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이 또 뒤따른 것은 물론입니다. 

논리적 불교를 체험적 불교로, 즉 사교입선의 주장이 나옵니다.

 

         ※ 아승지 :  수학적으로 1051이르는 말이니 아승지겁은 셀 수가 없는 요원한 세월을 뜻합니다.

         ※ 격의 불교 (格義 佛敎) : 중국인의 개념에다 자기들만의 의미를 끼워 넣어 설명 된 불교.

 

논리만 있고 실천이 없는 불교,

직면한 번민과 갈등을 이해는 하나 벗어 나지 못하는 어리석음.

..........

선종은 낡고 병든 교종의 사고를 대치하려는기운으로 출발 하였으나

어느결에 제도화에 깊이 빠져 들어 빛을 잃어 가게 되었습니다.

이에 달마 스님은 즉심시불을, 자기 성찰의 견성을  설파하셨으며

돈오 사상의 가르침이 대두된 것입니다.

 

돈오 사상에서 늘 대두 되는 말씀. 

"천년 동안 어두웠던 동굴도 빛이 들어가는 순간 어둠은 간 곳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불교 본래의 깨달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비판이 임제 스님의 사상의 위대함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스승님들은 근기 약한 중생을 위해 칭염불, 칭불 등의 방편을 일러 주시고,

중생의 근기에 맞게  "고성염불 십종공덕" 을 따로 말씀 해주십니다.

 

견성, 즉심을 내기는 쉽지가 않으나 "고성 염불"까지 어렵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작은 실천과 끊임 없는 자기 성찰의 생활에서 작으나마 깨달음이 따를 것입니다.

 

  

 < 2011.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