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말로 이기려 하지 말라 (

수행화 2012. 3. 12. 00:25

눈으로 보는 것은 거짓이 없는 사실이지만 믿는 것에는 허상이 있게 되고 상상이 뒤따르게 마련이니,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백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고 하지 않는가.

불교는 내가 직접 터득하는 견득(見得)이지, 남의 말을 믿고 따르는 신애(信愛)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자유인 임제.  p. 152 >

 

부처님이 설한 법은 우리 눈 앞에 현전하는 것에서 벗어 나지도 않고,

눈 앞에 현전 하는 것과 다르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눈 앞에 현전 하는 것, 세상의 모든 것은 여(如)의 모습으로 머뭅니다.

여기서 여(如)란?

사물이 있는 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말합니다.

임제는 이와같은 여(如)의 이치를 깨닫는 것을 지리지도 (至理之道) 라고 표현 하였습니다..

 

(如)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뭐라 이름 붙이는 것과 무관하게

또 우리 마음이 뭐라 하든 관계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진리자연 오역명부 (眞理自然 悟亦冥符)

              진칙무차 오역이역  (眞則無差 悟亦異易)

                       참된 이치는 저절로 그런 것이라 깨닫는다는 것은 은연 중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며,

                       참된 이치는 차별이 없어서 깨닫는다고 어찌 저절로 바뀌겠는가?

 

깨달음이란 다만 목전의 현상에 눈을 뜨는 것이니, 깨달음을 얻어 성숙한 자세로 사는냐, 

깨닫지 못하고 허상을 쫒으며 쇠하게 사느냐의 차별이 생깁니다.

            

지혜로운 자는 여여한 법을 따라 행동하고 보고 깨닫지만,

어리석은 자는 믿음을 따라 행동하고, 믿고 매달린다는 것입니다. 

 

사물을 여실지견하게 보아야 할 것이며,

이런 지혜로서 몸소 실천을 통해 증득(證得)하는 결단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시비를 가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분별하여 이러쿵 저러쿵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자 일간지에서 동국대 "교내 과도한 기독교 선교 대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독교 단체가 야간에 여러대의 버스를 타고 교내에 들어 와 집회를 하고 사라지거나,

강의실이며 화장실까지 기독교 선교 포스터를 붙여댄다고 하니 무례가 도를 넘은 것이지요.

 

맹목적 믿음은 진정한 가르침이 아님을 모르니 위험하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믿음만이 지상의 선이라고 따르고 타인에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요?

과도한 선교 활동을 하는 단체에게 들려 주고 싶은 법문입니다.

 

말로 이기려 하지 말라고 해도 마음은 출렁입니다.

 

 
< 2011.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