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2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수행화 2012. 9. 10. 00:03

지금은 조금 열기가 식었지만 이 어령 선생님의 글이라면 무조건 찾아서 읽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먼저 접한 책,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시작으로 "바람이 불어 오는 곳, 이것이 서양이다"를 거쳐 "축소지향의 일본인"...

나는 소박한 애독자로서 맹목적으로 읽고 있었고, 그것으로 나의 지적 허영심을 가득 채웠노라고 혼자 배불러 하기도 했었다.

 

나의 고3 시절, 몹시 열정적이시고 신선한 수업을 하시던 국어 선생님이 계셨다.

팍팍한 수업 중에도 늘 책을 얘기하셨으며, 교과서 밖의 세상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전하려고 고심하시던 진취적이신 분이셨다.

시선을 멀리 두라” “전교 몇 등, 서울대 입학뭐 이런 것보다 더 먼 미래를 보라!,

책을 읽어 넓은 세상과 마주 보라……”

그리고 어느 날 당시 출판된 이 어령 선생님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책을 소개하시면서 거의 한 시간 내내 열광적으로 선생님과 책에 관한 말씀만 하셔서 그 책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었다. 

 

그러자 며칠 후 둘째 오빠께서 부산에 오시더니 호기 있게 오늘 네가 하고 싶은 건 뭐든 다해 주겠다.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다 말해 봐라.”

나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책!이라고 말했고, 기껏 책이냐고 웃으셨고 오빠와 나는 보수동의 큰 서점에 들러 흜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샀으며, 읽고 또 읽어 낡아졌으며 이제 세월이 지나 누렇게 빛 바랜, 세로 글로 쓰인 그 책을 나는 지금도 가지고 있다.

책을 좋아하시는 오빠 때문에 우리 집은 방마다 책이 딩굴었고, 늘 동생들 수준에 맞는 책을 사다 주셔서 책은 그립지 않게 많이 볼 수가 있었다.

추억하면 언제나 눈물이 앞서는 둘째 오빠를 오늘 다시 떠올려본다.

 

소설이나 줄기차게 읽어대던 나에게 책 속의 생각들은 커다란 지적인 충격이었고, 당시의 내 작은 머리 속에 한바탕 회오리를 몰고 오는 대변혁의 계기였다고 해도 엄살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이 어령 선생님은 나의 우상이 되었다.

 

도서관 서가에서 뽑아 든 이번 책의 주제는 그때…”라고 보여진다.

기억은 단순히 사라져버린 시간을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다.

그것은 포도주를 익히는 지하실의 어둠처럼 시간과 사건과 그리고 모든 의식을 발효시킨다.

그 속에서 기억의 포도알은 일찍이 없었던 향내와 빛깔을 얻어내고 한 방울 한 방울에 여름 햇살과 들판의 그 바람들을 부활시킨다.”  

 

기억의 저편에서 생생한 언어로 끌어 올려진 유년의 노스탤지어.

유년의 기억, 우리의 언어가 위태로웠던 시절, 식민지 시절 교실에서 일어 났던 사건들,….어린 시절, 어른들의 고통을 어렴풋이 알아 가던 일들. 철이 들면서 보여지던 일제의 부조리와 우리의 무력감,

저장된 기억은 오랜 숙성을 거쳐 초연한 향기를 더해 빗장을 열고 나왔으나, 받아들이는 느낌은 가을 들찬에 선 것처럼 소슬하고 무겁기만하다.

영롱하고 아름다운 글로 하여 더욱 애달프고 쓸쓸하다.

 

과거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공허하게 날려버리는 슬픔에 대해,

우리의 부모 형제가 건너야 했던 고난과 시름의 고단했던 세월에 대해,  

과거를 잊은 우리 모두에게 띄우는 서사시로 여기고 싶다.   

 

그 때마음 속으러 온갖 생애의 내용과 견주어서 말할 수 있는 불변의 시선이란 게 있다.

현대인에기 있어서 행복이란 잃어버린 숙제장이다.

누구나 이제는 행복이란 문제에 대하 깊이 생각하기를 주저한다.

실상 철이 든다는 말과 행복은 역비례한다

 

나는 이 어령 선생님의 글을 퍽 좋아한다.

우리의 대표적 지성이시기도 하지만, 영원히 영혼이 늙지 않는 분이시라 여기기 때문이다.

음속으로 달리는 시간을 쫒아가 보겠다고 갈팡질팡 허둥대고 있노라면, 어느 샌가 선생님의 그림자는 저 앞, 아득한 먼 곳에서 꾸물거리지 말고 따라 오라고 손짓하고 계시는 형국이다.

 

초인적인 직관력과 집중력으로 세상이 제 아무리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해도,

더 잰 걸음으로 내달리며 빛나는 신종의 지적 바이러스를 개발해서 세상에 퍼뜨리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