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2년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김 영하

수행화 2012. 9. 24. 00:03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김 영하 씨가 보내는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으로 아름다운 휴양지, 영화 대부의 무대로 등장했던 곳, 삼면이 각각 아프리카와 스페인과 이태리를 마주 보고 있다는 것 정도의 지리적인 상식밖에 없는 나, 

태풍이 올라 온다는 뉴스는 접고 따스한 바람이 있을 것같은 책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 본다.

 

몇 년 전 어느 날 일간지에 김 영하 작가가 교수직을 버리고 해외에 가서 지낸다는 기사를 접한 기억이 있었는데, 이후 시칠리아 여행을 하여 이처럼 멋진 책을 세상에 내보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이루었고 가졌으며, 남들이 부러워 마지 않는 잘 조율된 시계처럼 정확하고 여유 있게 돌아 가는 일상이라지만 영혼의 1밀리미터도 고양시키지 않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마치면 밤 11시가 되는 등 따분한 일상에서 서서이 자신이 소멸되어 감을 느꼈다는 것,

더 늦어지기 전에 자기 안의 예술가를 구하기 위해, 끝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불구가 되지 않기 위해, 평가와 비난이 아닌 진정한 격려와 사랑을 나눌 에술적 동지를 구하기 위해, 즉 자신을 구출하기 위한 결연한 다짐으로 이삿짐을 꾸렸으며 집과 짐을 정리했으며, 정착민의 삶에서 유목민으로의 새로운 삶의 방식에 도전한 것이라는 각오가 퍽 충격이고 신선하다.

 

  유목민의 삶은 일견 불완전하고 불안해 보이지만,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 남기 위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며, 어떤 위험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어서 면역력은 자라고, 두뇌는 역동적 힘을 키우게 될 것이다.

 

부처님 말씀에도 같은 나무 아래에서 3일 이상을 수행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다.

편안한 마음이 들면 애착이 생기고, 애착이 들면 수행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편안한 집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맞짱 뜨는 야성을 잃어 버렸다.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 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날들에서 평화를 느끼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골똘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호기심은 한편 피곤한 감정이다, 우리는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고 이미 알려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니까.”

 

늙은이들은 걱정이 많고, 신중하여 어디론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맞게 그는 젊었기에 잰 걸음으로 우선 성큼 시칠리에 들어 서며 방을 잡은 것이다.

 

이탈리아 반도의 장화 코에 붙은 도시, 메시나,

모두가 모두를 아는 곳, 라파리”, 그리스 역사를 잘 간직한 도시, 시라쿠사,

타오르 산 기슭에 2000년 전의 세팅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그리스 극장을 보존하고 있는 도시,

그리스 연극을 원형대로 공연하는 곳, 타오르미나,

에리체의 성. 그들이 신들에게 바친 신전들, 교회들

..

이탈리아 음식을 먹으며, 시칠리의 아이스크림을 맛보며 거리를 걷다가 밤을 맞고, 또 아침 해를 바라 보다가 뜨거운 태양이 한낮을 점령하여 골목에 정적이 드는 시간에는 글을 쓰는, 참으로 낭만적인 날들. 과연 보람 있는 유랑의 시간이라 여겨진다.

감수성에 유쾌함을 더하여 재치 있게 담아 내는 이야기에 나는 시칠리가 단순히 지중해의 아름다운 도시만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며 빠르게 책갈피를 넘겼으며 지도를 보아 가며 아름다운 해변, 절벽을 타고 오르는 멋진 도로, 따뜻한 바람을 먹고 자라는 올리브 등등 풍경을 마음 속에 아로새겨 보는 공상으로 한나절을 잘 보냈다.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 위시리스트에 올려야 할 것 같다.

 

그때의 그리스인은 가고 또 그리스의 문명은 사라졌다지만 그들의 지혜는 유적이 되어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으며, 그 풍경의 장엄함은 작가의 몸 어딘가에 스며 들어 내내 살게 될 것이며 때때로 성실한 언어로 부활하여 우리도 읽게 되는 것이리라.

 

           자기 인생의 방향키를 자기가 잡고, 쉬며 걸으며 백과 사전을 펼쳐 보이듯 명료한 글을 세상에 내 놓을 있는 진정 행복한 작가, 그는 말한다. 여행 중에 잃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여행지에서 보내는 긴 시간 속으로 잡다한 것들은 마법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뼈대만 남은 감정, 진정 소중하여 잃지 않아야 할 것만 우리에게 남게 된다는 것을 알아 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끝내 남은 뼈대는 그래서 아름답다.  

           뼈대만 남은 신전의 건물이 그러하듯

 

           작가 김 영하 씨는 소설 퀴즈쇼’를 읽으며 알게 되었고, 요즈음은 스마트 폰 Potcast김 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즐겨 들으며 잠을 청하곤 한다.

그야말로 국민 수면제로서 십분 활용하고 있어 고마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