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2년

"패티 김의 고별 공연"이 내게 준 의미.

수행화 2012. 10. 5. 02:27

내 생애 처음 본 패티 김 콘서트가 곧 그녀의 고별 공연이어서 내 설렘과 아쉬움은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성남 아트센터의 돌 계단에 앉아 밝음이 서서이 잦아드는 자리에 깔려가는 어스름을 지켜 보며 사소한 낭만을 생각했다. 순간 야외등이 깜빡 켜져 오가는 사람들을 휘뿜한 배경으로 처리 하면서, 장면은 연극무대처럼 

 

공연을 기다리는 이 시간 또한 내게 멋진 선물이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도 좋겠구나 하는 사치한 망상도 피워 보았다. 참으로 설레인다는 신선한 감정을 느껴본 것이 얼마만의 일이었던가 !아들이 내게 준 콘서트 티켓에는 신선함이 옵션으로 포함된 것이었었네.

 

나는 패티 김의 노래, 깊은 울림이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늘 좋아해 왔다. 패티 김은 1958년에 데뷔를 했다고 했으나,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Till' 'Padre'의 유행과 함께였고 이후 그녀의 노래는 50년 세월 우리의 인생과 함께 나이가 들어갔다고 할 수가 있다. 이제 패티 김은 작별을 고하며 무대 뒤로 사라져 자연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장엄하게 북을 울리며 막이 오르고, 그녀는 메탈 소재의 은빛 드레스에 검은 가운으로 홀연히 무대 위로 솟아 올랐다. 젊은 날 매력이 넘실대던 그녀 모습을 요모 조모 비춰주고 있던 스크린은 순간, 점잖게 나이 들었으며 하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붙인 오늘의 패티 김을 클로즈업 시키고 있었다.시간의 비정함이 거기 있어 애잔했으며 내 모습을 바라 보듯 미리 슬퍼졌다.

 

노래는 잔잔하게 또 거세게 파고를 일으키며 가슴으로 밀려 들었고, 나는 그것들을 벅차게 받다 들였더니, 내 혈관이 노래의 무게에 짓눌렸는지 가벼운 현기증마저 느껴지고 있었다나는 꼼짝 없이 노래의 포로가 되었고 결박된 듯 의자와 한 몸이 되어버렸다. 파스까지 붙은 등의 통증도 잊은 채. 작은 오케스트라와 코러스 그리고 중창단까지 어우러져 그녀의 무대를 함께 북돋우었다. 

 

전 생애를 바쳐 노래를 불렀음에, 그 인생을 정리한다는 시간에 당도했음에 어찌 격정이 없으리오! 감정이 격해진 사이 사이 그녀는 눈물을 흘렸으며, 모두는 다함께 눈시울을 적셨으리라. 울컥하게 잦아 든 목소리는 관객의 목소리로 채워지면서 이어졌고, 사랑이여 영원히를 열창하며 그녀는 디바의 몸짓으로 온몸으로 노래하고, 자기의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청중에게 마음껏 전달했다. 노래에 실은 마음은 손끝을 타고 너울 너울 우리에게로 날아 들고 있었으니!

 

좀처럼 데워지지 않는 체질, 열광하지 않는 취향의 내게도 전해 오는 강렬한 몸짓,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저를 잊지 마세요"사랑합니다"  "I love you" 를 주문처럼 블렀고,  "가지 마세요" 를 외치며 청중들은 화답했다. 박수밖에 보낼 줄 모르는 나의 표현 부족이 그렇게 옹색할 수가 없었던 순간이다.

 

많은 사랑을 받은 나는 행복한 사람” “작곡가 박 춘석을 만나 아름 다운 곡을 받았던 날들길 옥윤씨와 함께 한 노래와 사랑의 세월들,  한류 1 세대로서 일본에 진출했던 일, 그때만 해도 인종 차별이 극심했던 미국에 진출했던 힘든 시간, 그리고 훗날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마디 마디마다 멧세지에 힘을 주어 가면서 지난 시간을 꼼곰이 추억하는 것 같았다.그리고 나는 그녀의 짧은 멘트에다 내가 읽은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를 엮어 들으며 많은 공감을 보냈다. 여름 한나절 소나기처럼 시원함이 있던 젊은 시절의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세월이 스며들어 조금 톤 다운 되었다 해도 나는 더욱 품위 있고 호소력 있게 들었으며, 혼자서 그 많은 곡을 소화해 내는 가창력에 존경심마저 일었다.

 

세련된 무대 매너로도 유명한 그녀답게 공 들인 드레스 코드가 돋보였고, 특히 초록 바지에 핑크 빛 블라우스 그리고 빨간 플랫 슈즈의 발랄한 복장으로 불렀던 빠른 템포의 노래들. '별들에게 물어 봐'…... 무대에서 그는 전혀 늙지 않았으며 청춘을 구가하는 상큼한 젊은 날 어떤 하루의 느낌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마지막 무대에서 그녀는 검은 쉬폰 드레스를 휘날리며 많은 스텝을 밟으며 노래를 마쳤는데느닷없이 치마 자락을 들어 하얀 라벨을 붙잡는 것이다. 그러더니 춤 추는 동안 계속 하얀 뭔가가 따라 다니더라는 것, 자세히 보니 그건 세탁소 다녀온 라벨을 뜯지 않은 것이었다. 어이 없어하며 노 가수는 쭈그리고 앉아 그 조그만 라벨을 뜯겠다고....하지만 잘 뜯을 수 있는 시력이 아닌지라 단원이 나와 그걸 떼어 주는 짧은 해프닝이 있었으니, 이 돌발 상황에 모두들 웃고 말았다. 돌발 상황이라고 그녀는 언짢아 하는데 퍽 인간적으로 보여 재미를 더했다.

 

100여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콘서트에 이 정도의 해프닝 쯤이야!일흔이 넘은 가수가 어두운 탈의실에서 재빨리 옷을 갈아 입고, 계속 해서 그렇게 긴 호흡으로 노래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 것인가? 의상은 무겁고 조명은 그렇게 뜨거워 땀이 비오듯 한데다, 탈의실까지 그렇게 어둡다는데. 그녀는 영원한 우리의 디바! 그녀는 가도 그녀의 노래는 영원할 것이다.패티 김. 그녀에게 늘 따라 다니던 말, “최초의~~가 또 하나의 최초를 만들 것같다.'가장 길고 성공적으로 은퇴 공연을 마친 가수!'로.

 

노래를 위해 전 생애를 바친, 철저한 자기 관리로 정평이 있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보여준 여인.

 

가수가 된 이후 본명 김혜자를 완전히 잊었으며 가수 패티 김으로만 살아 왔다는 그녀.'My way'를 앵콜로 남기면서 검은 드레스의 그녀는 사라졌다. 긴 노래 인생을 접고 자연인으로 돌아 가니 남은 날을 인간 김혜자와 더부러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을 기원해 보며 밤 공기를 가르고 공연장을 나섰다.

 

이 밤은 한 시대를 열정적으로 노래 했던 가수 패티 김의 고별 공연이면서, 우리들의 젊었던 기억, 사랑했던 기억, 쓰라렸던 기억들이 다함께 쏟아져 나와 살짝 쓸쓸해졌으나, 마법처럼 추억에 빠져 본 이 시간이 내게 다시 없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임에 행복한 마음이 더해졌다. 

 

그리고 나는 노래를 좋아하고 퍽 잘했고, 특히 패티 김의 노래를 사랑했던 친구, 작년 봄 암으로 저 세상으로 가버린 친구, 옥주에게 이 콘서트를 부친다.

 

그리고 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글을 띄운다. "사랑한다"는 쪽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