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9년

산티아고 가는 길

수행화 2012. 12. 3. 22:24

 

도보 여행가 김 남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위에서 썼다는 글이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런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는 부제는 너무 겸양의 표현이거나 혹은 독자가 겁부터 먹지 않게 하려는 배려에서 일까?
스페인 태양에 붉게 달구어진 길을 30일 이상 순전히 걸어서, 그것도 34세의 여자 혼자 나선 용기가 벌써 범상하지 않은데 붙여진 이름이 소심한 듯하다.
  
순례 기행문은 하루의 일정과 감상을 써 내려 간 일기 형식이나, 매일의 동선에 따라 이동 거리와 그날의 지출까지를 가계부 쓰듯이 착하게 기록해서 산티아고 순례의 길라잡이로서 충분한 정보와 감동을 꼼꼼히 전해 준다.
간간히 끼워 진 사진으로 순례 길의 아름다움과 고독을 함께 읽게 해 주고,
무엇보다 담담하나 생생하고 때로 촉촉하게 자기의 감정을 잘 담아 보이는 반짝이는 글재주로 우리를 내내 순례 길에 함께 하게 한다.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였던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의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수텔라"로 항하는 길.
이름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 즉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 순례길이라고 한다.
1000년 전부터 있어 온 길이고 지금도 그 고행의 순례 길을 세계 각지에서 온 많은 사람이 걷고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흔히 터번을 두르고 별을 헤며 걷는 순례자, 스스로의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삶의 방향을 가늠해 보여 주던 소설 속의 순례자.
나에게 순례자란 이런 몽상적이고 현실감은 없는, 다만 소설의 배경을 신비롭게 해 주는 존재로만 여겼는데...

그 길은 1000년 전부터 있어 왔고 지금도 많은 순례자가 조개 모양의 표지를 따라 걷고 있으며
순례자를 위한 숙소가 있고 취사장이 있고 순례지마다 증명까지 해 준다니 진화를 거듭하면서 순례길은 오늘까지 이어져 온 모양이다.

이 순례자는 6월 19일. 파리의 몽파르나스 역에서 테제베로 네 시간 만에 바욘 역에 도착하고,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 지역인 생장피드포르 역에서 순례를 시작해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쪽의 산티아고까지 장장 800 Km의 길을 걸어 7월 31일에 도착했다고 하니 한 달여 걸었다는 것이다.

잠이 덜 깬 마을의 어둠을 짚어 혼자 걷기도 하고,
황금 빛 밀밭 사이를 함께 일렁이며 걷는 날도 있고,
폭염에 아픈 발을 끌고 가는 모든 날들이 고행이고 또 명상의 시간이 되는 것이나 태양의 나라 스페인을 한달 동안 걷다니...
초인적 의지가 아니고서야!

머릿 속이 하얗게 비어지도록 걷고 또 걸으며 두고 온 자기의 삶을 바라 보고 그리워 하고 또 우리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며한편 살면서 중요한 것은 집에 두고 온 귀중한 무엇이 아니라 우리 영혼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비겁한 삶, 회피하는 삶, 용기 없는 삶을 거부하고 있는 자신을 더 예뻐하고 있기도 한다.

누구나 순례를 꿈 꿀 수는 있다.
그것이 비단 산티아고를 향한 걸음이 아니어도 말이다.
일상을 잠시 접고, 태양이 작열하는 노란 길 위, 하나의  점이 되어 걷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새털처럼 가벼워진 영혼의 자유가 상상 속에서 즐겁게 느껴진다,  
사랑도 인생도 온전히 혼자 책임질 수 있는 능력 같은 건 차라리 부수적인 덤이 되어 따라 올지도 모른다.

“저 포도는 시다”고 독백하는 현실 안주자로 남아 끝내 붕어빵이기를 추구하는 우리 모두에게 작은 충격을 주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노고는 보답이 될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몸으로 살아 실험적으로 보여 주는 진정한 선구자가 여기 있었다.
배낭 하나에 삶을 담을 줄 아는 그에게 바깥 세상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도전하고 싶은 전장이 될 것이다.
또 다른 길을 꿈 꾸는 그녀가 부럽다.

 

< 2009. 6.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