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9년

냉정과 열정 사이

수행화 2012. 12. 3. 22:26

 

일본 작가 ‘조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한 작품을  릴레이 형식으로 쓴 특이한 형식의 소설이다.
제목이 일단 멋지고 책이 청 홍의 두 권으로 엮어져 있어 외양이 우선 색다르고 귀염성스럽다.
우리네 여고 시절에 가정교사. 설국, 빙점 등 일본 소설을 눈물을 흘려 가며 밤 새워 읽었던 기억을 떠올려 가며 읽었다.  

일본 작가에 대해 별 아는 바가 없는데
공지영이 쓴 소설-사랑 후에 남는 것(?)-과 분위기가 약간 닮았다는 느낌이 설핏 드는, 청춘의 찬가 같은 소설이다.

젊은 시절의 사랑은 시간의 파도를 타고 먼 길을 우회하다가 어느 날 우연처럼 다시 다가온다는 인연을 그린 것인데
밀라노와 피렌체, 일본의 공원 등...도시와 사람을 잔잔하고도 섬세하게 그려 나가고 있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씌어진 글처럼 컬러풀하다.

'하늘은 온통 구름이 껴 회색인데 빛 한 줄기 없는데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어두워지지 않는 밀라노의 여름 공기........’

'공원의 매화가 엷은 분홍색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 푸른 하늘과 땅 사이를 수채 물감으로 그은 듯이 엷게 물들이는 것을 바라보며... 시간을 흐른다. 그리고 추억은 달리는 기차 창 밖으로 던져진 짐짝처럼 버려진다....'

세월의 무게가 내려 와 앉은 밀라노의 거리를 기웃거리며 그들의 생활을 슬쩍 엿보는 기분으로 젊은 그들을 바라 봤다.
명화를 복원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이 있어
“아! 그런 직업도 있겠구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  문화를 사랑하고 지키는 많은 노력이 있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현재에 살면서도 과거를 현재에 끌어 들이는 일을 하면서 과거에 공을 들이는 주인공의 직업은 그자신의 사랑ㅘ 멋지게 상관관계를 이루는 것 같기도 했다.

식사하고 와인 마시며 시간만 나면 목욕하고 책 읽고...
공주 지향적인 여주인공의 생활이 멋을 부리느라 조금 과장되고 미화시킨듯해서 조금 어색하고 약간의 이질감까지 들기는 했다.
혹시 일본의 신세대 사이의 보편적 취향인가 하는 의구심은 작은 걱정도 슬쩍 안겨 주었다.

소설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상을 함께 본다.
경제적 궁핍을 모르며 자란 일본의 젊은 세대가 가질 법한 자유 분망한 이성관, 가족관, 직업관 등에서 서구인처럼 사고하고, 서구인처럼 생활하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장면이 행간에 넘친다.
"아시아인이면 다 같은 아시아인 인줄 아는 모양"이라는 대화 내용에서 보듯이 일본인은 스스로 그들이 훌륭한 유럽 인이라고 생각한다던 말이 딱 맞아 떨어지는 장면도 본다.
각자 마음은 멀리 두고 현실은 미국인과 또 러시아인과도 잘 사귀고 또 헤어지고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아주 자연스런 생활처럼 그려진 것도 그렇고...

'쥰세이'와‘아오이’
일본인이나 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일본과 유럽을 오가며 자유롭게 살며'
예술적이고 낭만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현재를 사는 모든 젊은이들의 로망이 아닐까 싶다.
경제적인 고통도 없고 책임감의 굴레도 모른 채 소신껏 살며 사랑하며...
부를 축적해 둔 조상을 둔 자손이 누릴 수 있는 삶의 한 방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공손하고 근면하며 치열하게 살아 세계의 경제를 쥐락펴락했다는 일본인의 모습과는 영 상반되는 젊은 그들.  

피렌체의 뜨거운 태양. 두오모를 바라 보며 걷는 고풍스런 도시. 골목 어귀를 돌아 들어 가 앉아 보는 커피숖, 우아한 레스토랑.....
우리는 간접 여행을 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비가 오고 노을이 지는 모습도 사계에 잘 입혀져 글이 퍽 아름답다.

뜨거움은 멀리 느껴지고 구닥다리의 팍팍한 잣대로 소설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퍽 건조하지만 어쩔 수 없고 그러나 잘 찍은 영화 한편 보는 것 같아 마음은 즐겁다.

 

< 2009. 7.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