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9년

신 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수행화 2012. 12. 3. 22:28

며칠 전 조간에 배우 박 중훈의 인티뷰 기사가 크게 실렸다.
그가 상당히 지적이고 또 퍽 유머러스한 배우라고 알고는 있었는데...
최근 개봉한 영화 “해운대”의 시사회를 기상청에서 가졌다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그가 기상청 직원들 앞에서 했다는 말이 퍽 마음에 와 닿는다.  
“기상청은 어머니입니다. 잘 하면 안 보이고 한 번 못하면 확 표시가 나니까요”
윗트 넘치는 표현에 모두들 박수를 보냈단다.
어머니에 대한 우리의 무심한 정서를 너무 잘 표현해 주어 웃으면서 한편 씁쓸한 뒷 맛이 있다.

얼마 전 장안의 화제작이고, 낭독회에까지 인파가 몰리면서 은근히 엄마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은 느낌과 별반 다르지도 않은 것이다.

작가 신 경숙은 애초에 어머니로 글을 시작했는데 실마리가 영 풀리지 않더니 엄마로 제목을 바꾸자 신들린 듯 써졌다고도 말했다.

소설은 엄마가 실종 된 후에 아들과 딸, 또 남편이 엄마와 아내에 무심 했던 기억을 세월 속에서 꺼내 보며 고해성사를 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은 네 개의 장으로 구분 되고, 앞의 세 장은 큰 딸, 큰 아들, 아버지가 고해의 주체이고 마지막 장에는 사라진 엄마가 일인칭이 되어 한 마리 새의 형상으로 가족의 일상을 들여다 보며, 또 지난 세월과 자식들에 이별하는 모습으로 엄마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 들이게 한다.

엄마가 실종되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엄마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비로소 엄마의 빈 자리에 눈길을 보내고,
또 세월에 파묻혀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작은 기억들을 모으고 들춰 보게도 한다.
자기 인생을 통째로 아이들에게 바치며 살았던 엄마를 추억해 가는 많은 부분들이 바로 우리 엄마의 모습이고,
또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에 목이 메이는 것이다.

“엄마라는 말에는 친근감이 아니라 나 좀 돌봐 줘, 라는 호소가 배어 있다. 혼만 내지 말고 머리를 쓰다듬어줘, 옳고 그름을 떠나 내 편이 되어줘 라는... 엄마는 힘이 세다고, 엄마는 무엇이든 거칠 게 없으며 엄마는 이 도시에서 네가 무언가에 좌절을 겪을 때마자 수화기 저편에 있는 존재라고””

“두통은 송곳니를 가진 들쥐처럼 엄마의 영혼을 콕콕 지르고 슬금슬금 갉아 먹었고”
“아내가 두통으로 머리를 싸매고 혼절해 있을 때도 당신은 아내가 잠을 자는 중이라고 여겼다. 아무데나 누워서 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렇다. 엄마가 길을 잃고 실종될 수 있는 원인이 일상 속에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는 걸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후에야 엄마를 잊고 살았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엄마는 누군가가 뿌리째 뽑아버리기 전 까지는 그 자리를 떠날 줄 모르는 나무와 같은 존재임으로...

엄마를 잃어버린지 9개월 후 작가인 딸은 이탈리아 여행 길에 오른다.
엄마가 갖고 싶어 하던 장미묵주를 사들고 성 베드로 성당의 성모상 앞에 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하고 싶어한다.
엄마를 잊지 말아 달라고, 엄마를 가엾게 여겨 달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숨을 거둔 아들의 겨드랑이를 감싸고 있는 성모의 모습,
어미의 무릎에서 평화롭게 늘어져 있는 아들은 죽어서도 위로를 받고 있다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앞에서 눈물 흘린다.

그리고 “엄마를 부탁해...” 탄식으로 끝난다.

이 소설은 줄거리를 쫒아 가는 소설이 아니라 차라리 한 줄 한 줄 우리와 함께 기억을 캐내고 함께 써 내려 가는 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만큼 가깝게 또 뜨겁게 엄마를 추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투정까지 섞어 가며 받기만 한 엄마의 사랑.
그 일부분이라도 되갚으려 할때 이미 엄마는 멀리 계신다.
그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우리는 어느듯 소설 속에 들어 가 있다.

엄마의 기억은 끝없이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새록새록 깊어만지는 샘물이다.

 

< 2009. 7.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