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7년

자전거 여행-김훈 에세이

수행화 2008. 8. 25. 14:37
작가 김훈은 최근 장편 ‘남한 산성’을 출간하여 화제를 모았고 신문 지상을 통하여 자전거 마니아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풍륜이라는 자기 자전거를 타고
가을 태백을 넘고, 눈 덮힌 소백, 노령, 차령 산맥들과 수많은 고개를 넘어서 마침내 남해안의 봄을 맞기까지 자전거 바퀴와 한 몸이 되어 구르며 생각하며...
바퀴와 함께 밞은 땅에서 그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떠 올렸던가?

작가는 몸이 기뻐서  “아아” 소리치며 길을 달렸고, 아무 것도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감미로운 것이며,
살아서 바퀴를 구르는 몸은 복되다고 노래했다.  
자전거는 땅 위의 일엽편주가 되어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저어 밟았고 작가는 충실한 언어로 자기의 감상을 써내려 갔다.  

김훈 작가의 글을 처음 읽어 본 나는 그가 차라리 높은 정신 세계를 가진 시인이 아닌가 착각도 해 본다.
섬세하면서 또 애달픈 마음으로 자연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성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르고 걸러져 맑게 정제된 글은 만난 것만도 즐겁다.
뾰족하고 조악하여 불쾌감만 일으키는 요즈음의 시들에 몸서리 친 적이 어디 한 두번이던가!

“꽃 피는 해안선
매화 꽃잎 떨어지는 봄 바다에는 나고 죽는 시간의 가루들이 수억만 개의 물비늘로 반짝이며 명멸을 거듭한다. 봄 바다 위의 그 순결한 시간의 빛들은 사람의 손가락 사이를 다 빠져 나가서 사람이 그것을 움켜 쥘 수 없을 듯싶었고 그 손댈 수 없는 시간의 바다 위에 꽃잎은 막무가내로 떨어져 내렸다.“

만경강 하구 갯벌에서
풍문처럼 왔다가 풍문처럼 가버리는 도요새의 처절한 싸움의 생을 보았고,

문경 새재를 넘으며
수고로움에서 옛사람들의 종교적 고양감을 느껴 보았으며,
멀고도 팍팍한 고치령 고개를 넘어온 저전거는
일몰의 들녘가에 푸른 절벽같은 부석사에 당도하여
저녁 예불의 종소리에 지친 몸을 쉬기도 했고.

인제에서 태백 산맥을 넘어 양양으로가는 미천골,
빛만이 폐허가 아닌, 폐허가 된  옛 절터에서 부서지는 가을 빛을 그림을 그리듯 그려 나갔다.

스패너 뭉치와 드라이버 세트와 공기 펌프와 고무풀은 그에게 사랑스런 원수 덩어리라고.
장비가 있어야 몸을 살리고 장비가 없어야 몸을 날리는 모순에 비애를 느끼며 가을 빛 찬란한 고갯길을 달리는 모습이 아득한 아름다움으로 떠 오른다.

무형의 영감과 사유를 조각보를 어어 가듯 또박또박 활자화해서
마침내 세상에 빛을 보게 하는 작가는 진정 고귀한 능력의 소유자이며 축복 받은 직업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 한다.

피고 지는 꽃들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거대한 수채화 한 폭을 내어 밀고,
텅 빈 시골집 모퉁이에서 버썩 바른 시래기 묶음이 바람에 쓸리는 풍경에 이르면 바람만 떠나지 않은 어느 마을을 눈물겹게 그려 보게도 한다.
책갈피만 겅중 겅중 넘겨도 언어는 특이한 빛깔로 우리에게 신선하거나 혹은 쓸쓸하게 우리 강산의  여린 부분을 보여 준다.
아름다운 에세이다.

2007-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