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9년

" 영화로 만나는 클래식 음악 "

수행화 2012. 12. 3. 22:38

내 젊었던 날.  
나는 내 몸이 힘들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 불성실한 것으로 생각했고,
그리고 내 인생은 금방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 강박 비슷한 관념에 시달리며 나를 달달 볶았으며
늘 뭔가 불편하고 속 상하고, 그래서 힘든 시간을 살았었다.
그래서 뭔가를 늘 생각하고 또 꼬물거리느라 잠을 줄이려 했고 건강은 썩 나빴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걷어 차 버릴 당돌한 의지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것이 얼마나 감정에 입혀진 사치였으며 도무지 현실감이 없는 한가로운 신선놀음이었나를 아는 데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그 시절 클래식 음악을 알아보겠다고 -거의 공부 수준으로-
책을 사서 읽었으며, 지직거리는 라디오를 인내심을 갖고 들었으며, 
L.P 판을 사서 모으면서 Beethoven symphony No.6나  Menderson이나  Chaikovsky violin concert 같은 건  반복해서 들으며 날 밤을 새우기도 했었다.
시작은 일단 나를 힘들게 하고, 또 앎의 가난을 어떻게든 벗어 던지고 싶다며 시작한 클래식 공부(?)는 정진하고 싶은 지식의 한 장르가 아니라,
호소하듯이 다가 와서 나와 일상을 함께 하는 더 없는 벗이 되었고,
나는 그 깊은 울림과 전율과 감동과 상상의 세계에 빠져 들었으며 그로부터 모든 음악가를 천재로 매기며 존경하게 되었다.
그것은 명상과도 같고, 수행과도 같았으며, 내 심약한 심장을 후벼대던 불만을 치유하는 묘약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혼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음악을 잊었고, 내 문화적 사치에는 암흑기가 도래했다고 나는 늘 생각하고 또 말한다.

그래서 나는 클래식 음악 이론에 있어 퍽 해박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문외한도 아니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
40년 세월이 지나 나의 벗이었던 클래식 음악은 지금 나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런 편한 사이가 되어 있고,
또 나는 별반 불만이 없다.
좋은 음향 시설이 없어도, 세계적인 콘서트 구경을 다니지 않고도 소소한 일상에서 내 작은 래디오가 들려 주는 음악이나 영화 화면 가득 퍼지는 음악에서 위안을 받으며 사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그 열악함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그렇게라도 음악에 내 신경 한 부분을 매달고 있는 것에 만족 할 줄도 안다.
나를 힘들게 하지 말라는 내 몸이 주는 무언의 압력인지, 내 불만스런 열정이 재가 되어 가는 과정인지는 모르겠다.

최근에 재미있는 책 두 권을 읽었다.
두권 다 여성이 쓴 것이고 대화하듯 쉬운 필치라 친근하고 편안한 글이었다.
영화 속에서 깊이와 감동을 더해 주는 주제음악으로 사용된 클래식 음악의 면면을 꼼꼼하게 찾아내어 일러 주는 내용으로 내가 보았던 것도 또 보지 못했던 흘러 간 영화들도 찬찬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엘비라마디간(Elvira Madigan),에 흐르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은 영화의 성공으로 1700년도의 음악이 빌보드 챠트 10에 들었는가 하면 엘비라마디간이 곡명이 된 듯한 느낌이라고 하기도 하고,
아웃오브아프리카에서의 “모차르트 클라리넽 협주곡 제2 악장”,
대부3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쇼생크탈출에서  어두운 감옥의 광장에 갑자기 흐러 나오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이중창”이 던지던 감동.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2번” , 7년만의 외출.
쉰들러리스트, “바흐 영국모음집 2번”
죽은 시인의 사회, “베토벤 합창교향곡.”
드라이빙 미스데이지에 흐르는 드보르작 루살카 중 “달에게 바치는 노래”.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1악장”에서 시작해서  “레퀴엠”으로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
샤인, 비발디,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등 다수의 영화를 두루 섭렵하고 해설과 감상, 또 영화와 음악에 얽힌 일화까지 수집하여 곁들인 노고와 단아한 솜씨가 대단하게 보인다.
아는만큼 들리듯이 아는만큼 좋아하게 된다는 건 영화를 보면서도 알게 된다.

영화보다 오히려 음악에 더 마음을 앗겼던 기억이 새로워 메모해 본다.
예술은 누구나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것이 되기도 하니 만인에 평등하고 자비롭다.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는 있다, 그리고 그 관심을 오랜 세월 이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인의 궁금사를 간추려 따옴표를 쳐 가며 요점 정리를 하고 남을 위한 길라잡이가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최영옥, 진회숙 두 작가는 대단한 기획을 한 것이다.
흩어진 구슬을 꿰어 똘똘한 보배를 만들었으니 노력이 장하고 앉아서 책장만 넘기면 되는 우리는 너무 공짜로 산다고 여겨진다.
재치 있고 예리한 감상을 읽어 가면서 흘러 간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한다.
작가는 클래식 음악지기가 세상에 보내는 선물이라고 소감을 말했고 나는 그 선물을 고맙게 잘 받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멋진 영화와 함께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쉽게 향유할 수 있는 문화 생활이며 또 작은 행복이 아니던가!  


                                                                < 2009. 12.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