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0년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_ 엘리아스 카네티

수행화 2012. 12. 3. 22:49


나에게 있어 모로코의 기억은 멈춰버린 활동사진의 장면처럼 박제된 채로, 꿈결인 듯, 잠결인 듯 설핏한 기억들이 파편처럼 부스러져 나뒹굴고 있었다.  
‘모로코와 낙타와 성자’는 딱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의 배합이라 제목에 이끌려 읽어 본 책이다.
엘리아스카네티라는 글을 쓰는 사람 같고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이방인의 객관적 시선으로 차분하게, 그리고 군데군데 애정과 연민을 담아 아주 아름다운 문체로 잘 써 내려 간다.

......낙타 시장에서 흥정 되어지는 낙타, 죽음을 예견하고 발작하는 모습.
아무 언어를 몰라도 알라는 들린다는 시장 거리.
글 써 주는 사람. 그 사람 앞에 온 가족이 진지한 얼굴이 되어 앉아 있는 장면.
여행자에게 무조건 취직을 부탁하고 추천서를 써 달라고 매일 막무가내로 조르는 청년.
세헤라자데술집에서 바라 본 원초적이고 야비한 아라비아인 등등.....

품위 있고 정돈된 글이라 한편 시를 읽고 난 느낌처럼 자욱하다.
잔인함과 더러움, 교활하고 거짓스런 풍경들을 조심스럽게 써 내려 가니 잘 정돈된 시편을 읽은 느낌처럼 차분해진다.

“무언가를 전하고자 입을 여는가 싶지만 입을 다물고 나면 아직도 말한 게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영롱하게 빛나는 진득한 무엇이 내 안에서 언어를 조롱하며 가라앉아 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언어였을까, 그래서 지금부터 그것을 서서히 판독해 내야만 하는걸까? 어떤 일에 관한 영상과 소리들이 있어도 내면을 통해서만 비로소 그 의미들은 완성된다. 말로는 담아낼 수도 가둘 수도 없는 그것. 말보다 더욱 뜻 깊고 다채로운, 말 너머의 어떤 것.”

“여행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빨아들이려고만 하고 개탄하는 마음은 집에다 두고 온다. 보고 들으면서 간혹 끔찍함을 접하게 되지만 그것이 새롭기만 하면 열광한다. 성실한 여행자란 무정한 존재이다.”

절대 공감하게 되는 적절한 표현을 하는 작가는 예리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현대 아라비아인의 일상에서 보게 된 잔인함과 간교함. 그들 정서의 심연에 흐르는 모순과 부조리에 깊은 연민을 보내면서도 관망자일 수밖에 없는 여행자의 냉정함으로 말한다.

우리는 각종 매체들이 전해 주는 전 지구의 풍물을 안방에서 접하면서 전달자의 편이 되면서 단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글은 낯선 거리를 걸어 다니며 느낀 속살을 보게 하는 여행기라고 볼 수 있다.
불투명성이 주는 매력은 결국 한 꺼풀 벗겨 바라보면 철저한 양면성이었다고나 할까.
작가의 글을 통해 나는 마르케시의 메디나에서의 기억을 조각조각 이어 재구성해 본다.

방금 이야기 속으로 들어 갈 듯 특이한 골목,
그 없는 것 없는 희한한 시장.
악취와 인간 본연의 삶이 주는 무거움.
짐을 싣고 힘겹게 살아가는 뼈가 앙상한 나귀 등.
엄청난 바가지 요금을 불러대던 은세공 가게의 직원.
천년 세월의 배경에서 매끄러운 현대를 살아가는 젋은이.

 

< 2010. 3.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