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0년

거울이 된 개와 거울에 비친 우리.

수행화 2012. 12. 3. 22:59

"뜨거운 여름 낮에는 햇볕을 받는 흙에서 삭정이가 타는 냄새가 났고 저녁의 공기는 나무들의 향기로 가득 찼지. 밤이 깊어지면 그 향기에 물비린내가 겹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그믐밤에도 먼 냄새는 이 세상에 가득 찼어, 나는 가끔씩 밤새도록 그 먼 냄새 속을 쏘다녔어. 그런 밤중에, 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었어, 별들을 쳐다보면 무언지 와글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귀 기울여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어. 이 세상을 가득 메운 이 먼 냄새가 별에서 오는 것인가 싶어서 별을 향해 콧구멍을 쳐들어도 별로부터는 아무런 냄새도 오지 않았어. 그래서 또 들판을 마구 달렸는데, 아무리 달려도 별들은 가까워지지 않았어."

영혼이 깨끗하고 한 없이 섬세한 누군가가 읊고 있는 서정적 밤 풍경 같은 이 글.
작가 김훈 씨가 쓴 장편소설. 개’의 일부분이다.
부제를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라고 일렀듯이‘개가 일인칭이 되어 써 내려 가는 이야기로서, 위의 글처럼 개는 자연에 대해, 인간의 삶에 대해 고요하고 깊은 눈으로 바라 본다.

사람이 떠난 마을이, 푸르던 산이 물에 잠기며 날카로운 물비린내를 내던 수몰지구의 기억도 있고,,
어부와 함께 고기잡이 배를 따라 나가 주인의 일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아이들을 따라 학교에 가서 아이들의 통통거리는 숨소리를 듣기도 하고,
나무하는 주인을 따라 가을 산을 헤매면서, 햇빛에 나무가 말라 가면서 풍기는 향기를 자기 혼자 사랑하기도 하는 가을 낮을 이야기 하며,
또 눈썹에 눈송이를 얹어가며 빈 들을 달리고 또 달리며 겨울을 살고…..

개는 아름답게 변화하는 사계를 바라보면서 그 사계 속의 사람들은 개, 자기처럼 숨만 쉬고 살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요, 약함이며, 슬픔의 뿌리라는 걸 알아 간다.
그래서 발바닥의 기록은 더욱 슬프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글은 행간에 세상살이의 슬픔을 촘촘히 새기고 있어 가슴으로 읽게 하고, 폐부를 찌르는 짧은 멧시지가 있어 허투루 읽을 수가 없다.
개의 시선을 빌려 변화하는 세상에 길들여지는 인간의 한 없이 약한 삶을 이야기한다.
짧을 분량이라 단숨에 읽었으나 장대한 발전은 보다 나은 삶의 양지를 제시하지만 늘 음습한 음지는 있어 왔으나, 또 쉬이 잊혀져 가는 게 사람이 사는 삶의 이치라는 걸 개는 발바닥의 기억으로 알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 개와 인간이 가꾸고 지켜 간 애정을 그린 영화. “핫치 이야기”
일본 아키타 출생의 개 핫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는데 배우 ‘리처드 기어’의 연기가 일품이었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에서 점점 나이가 들고, 늙어지면서 달라지는 개의 표정과 감정 표현은 너무 사실적이라 놀라면서 바라 본다.

오후 다섯 시면 기차역에 나와 주인을 기다리고 함께 퇴근하던 하치의 일과는 주인이 죽어 돌아 오지 않아도 어김 없이 퇴근시간에 맞춰 기차역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봄이 지나 여름, 가을, 겨울이 고, 또 시간이 흐르고…세월이 지나 상큼하던 하치의 모습에는 노년의 고독이 가득하건만 사랑하던 주인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사랑하는 사람은 물리적으로 죽었고 시간을 너머로 멀어져 갔건만 마음 속에서는 영원히 지워 없애지 못하는 차마 인간이 따를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의 모습이라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났다.

우리는 누구나 모두와 언젠가 이별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는 더 많은 고통이 따른다.
드는 정은 알 수 없으나 나는 정은 맹렬한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별의 슬픔도, 사랑의 감정도 시간 속에서 풍화를 거치고 마침내 기억 속 한 편 엷은 추억으로만 남긴다.
삶이 늘 그럴진대 슬퍼할 이유는 없지만 쓸쓸하고 애진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영원히 이별하지 않는 하치의 감정은 보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파장을 일으키고 전달 되며 가슴 시리게 한다.
마음 약한 남편이 손수건을 푹 적시니 눈물 많은 나는 하물며….

개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다.
아니, 개는 우리의 삶을 비춰 주는 거울이고 있다.

 

<2010. 3.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