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0년

법정 스님의 '서 있는 사람들'

수행화 2012. 12. 3. 23:02

1978년에 출판된 법정 스님의 책.

책 서문에서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둘레에는 부쩍 ‘서 있는 사람들’이 많다.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차 안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계층에서 제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사람이 많다.
똑같은 자격으로 차를 타도 앉을 자리가 없어 선채로 실려 가는 사람이 많다.”
그 선량한 이웃을 생각하며 글을 썼기에 ‘서 있는 사람들’ 이라고 제목을 붙이셨다고 하신다.

1978년에 출간 된 책인지라 누렇게 변한 종이에 세로로 촘촘히 쓰인 글이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함부로 버려졌던 소중한 것들을 기억의 방에서 찬찬히 꺼내보는 마음이 되어 읽었다.

젊은 시절에도 스님께서는 중생의 삶에 대해, 급변하는 사회에 대해, 또 변질 되어 가는 불도량에 대해 그 특유의 맑고 잔잔한 목소리로 아쉬워하고 탄식하셨음을 다시 알게 한다.

‘안내원이 신호 삼아 차를 두들기는 소리, 낡은 엔진의 굉음, 머리 위 스피커에서 고래고래 쏟아지는 라디오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짜증스럽다’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못하던 시절, 외화도 좋지만 오만하고 불손한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기생 파티까지 하며 돈을 벌어 들인다’

만원 버스가 우리의 소중한 발이었던 시절이며, 기생파티라는 말을 접하던 시절이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었다는 것,  
70년도는 우리가 살아 온 세월인데 먼 지난날의 풍속도인양 아득하기만 하다.
시간에 쫒기고 돈에 쫒기고, 일에 쫒기며 떠밀리듯 살아 버린 시간이 잠시 엿보여 조금 슬프다.

많은 시간을 산중에서 침묵으로 홀로 수행 정진하시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던 스님. 생활 자체가 계율이고 바른 가르침이심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출가 생활 중에는 일을 통해 인욕을 배우고 정진하라는 의미로 많은 일을 시킨다.
일에 서툴거나 게으른 사람은 기도나 그 밖의 수행도 올바르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입산하는 후배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과 엄중한 가르침도 있다.
수행에는 스승과 도반과 도량의 요건이 잘 맞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도반의 영향은 지대한지라 어진 벗을 만들어야하고 그러한 벗을 만나지 못하거든 차라리 혼자서 가라고 일러주시기도 한다.

중생과 함께 오늘을 괴로워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출가 수행자의 도리일 터인데 호국 불교다, 장의 불교다 하며 여러 형태로 행해지는 재들이 출가 수행자의 본업처럼 되어버린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셨던 것에 깊이 공감도 해 본다.

남의 복전이 되어야 하고 남의 보시를 헛되이 하지 않아야 한다는 스님으로서의 사명감으로  시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시면서
‘중노릇이 어렵다’로 말씀을 마치신다.

위험하리만치 빠른 급물살을 타고 우리의 일상은 변해버렸고,
매일 매일 전전긍긍 밖의 소리에 온 신경을 내주며 욕망은 부풀고 또 부풀어 마침내 우리의 심장은 불만으로 누더기가 되어가고 있다.

누렇게 바랜 책갈피에서 영혼이 맑으신 한 수행자의 모습과, 가난하였으나 꿈을 꾸며 작은 것에 감사하며 고만고만한 행복을 가꾸던 70년대의 우리의 초상을 함께 보았다.    


< 2010. 12.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