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5년

앎을 아끼는 아름다운 마음

수행화 2012. 12. 3. 23:28

 

'만약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 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50일 만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따듯한 봄볕에 쬐어 말린뒤, 여린 아내를 시켜 백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내 친구의 얼굴을 수 놓게 하여,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玉)으로 축을 만들어 아마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그 사이에다 이를 펼쳐놓고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뉘엇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요즈음에 읽은 정 민 교수의 '미쳐야 미친다' 에 실린 글이다.

정조 시절 이 덕무(1741~1793)의 글.
지독한 가난으로 어머니와 누이가 영양실조로 얻은 폐병으로 죽고, 처참한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광적인 독서벽과 자기 수련에의 신념으로 늦은 나이인 서른 아홉에 규장각 초대 검서관으로 임명 된 사람이라고 한다.

벗을 사랑하는 절실한 마음이 깊이 묻어 있는 좋은 문장이다.
앎을 아끼는 마음은 고금(古今)이 다를 수 없는 것이겠지만  
자신의 감정 표현이 엄격했을 것같은 시대의 글이라 사뭇 새롭다.

생활 양상이 달라져서 매일은 속도 전쟁 속에 있으며 방대한 정보에 시달리고, 부질 없이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뜬구름처럼 나날을 보내고서 바쁘다고 외치고 다니는 지금의 우리 모습이 머쓱해지는 느낌이다.

자기 내면을 바라보고 지기(知己)를 생각하며 글을 써 보는 것은 시간적 낭비이거나 사치에 속하게 된 것인지...
그리고 이 덕무 글에서와같은 애정과 정성을 보내고픈 지기(知己) 갖기를 원하기나 하는 것일까?

속도를 줄여 보며 조금 뒤돌아 봐야할 것같다.
볼펜이 생기면서 글씨가 날게 되고, T.V가 등장하고 오손도손 대화가 줄어졌는가 하면 문자  멧시지의 편이성으로 아예 편지가 없어져버린 시대...
그래도 우리는 잠을 줄여 가며 긴 편지를 쓰고, 며칠씩 답장을 기다리고, 긴 밤을 책을 읽으며 지새워본 세대이지만 우리 아이들 세대의 서정성은 어디쯤에 있는가?

느리다는 것은 참을 수 없고, 조그만 시련에도 당장 무너지고, 더구나 벗을 생각하고 진정을 보내는 것에도 인색한 것이 오늘 우리의 현주소일지도 모르는 일.
  
선인의 글을 읽으며, 저변에 깔린 인간미를 느끼며 잠시 호흡을 고루어 본다.

(2005-01-15 10:49:42, Hit : 48, Vote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