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2년

'이별의 어떤 의식'

수행화 2012. 12. 10. 00:54

지난 가을은 짧았으나 참으로 설레게 화려 했다. 발치에 찬 기운이 슬며시 깔리던 지난 11월 나는 또 하나 친구를 잃었다.

 

일체의 장례 의식을 생략할 것이며, 모든 절차가 끝난 후에 모두에게 자기의 죽음을 알리라는 당부로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고, 죽음을 기다렸던 친구.

이승의 누구에게, 어떠한 빚도, 마음의 빚까지도 남기지 않고 싶어 했던 마음을 헤아려 보려 애쓴다.    

저 세상으로 보냈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 그냥 허무하게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어여쁜 모습, 고운 심성으로 성실한 삶을 살았던 친구에게 병마가 들이닥친 일이 일단 억울하고,

투병 중에도 모든 치료를 잘 견뎌냈고, 환자로서의 수칙을 그렇게 잘 지켰으며,

무엇 하나 건강 상식에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은 친구에게 실로 어이 없고 가혹한 결말이 아닐 수가 없다.

희망에 대해, 인생에 대해 속아버린 것 같은 기막히고 참담했을 마음은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부족할 것이다.

죽음 앞에 서서 홀로 감당했을 고독과 절망과 음습한 두려움은 또 어떠했을까?

 

너무 생각이 많았던 탓인지 얼마 전 현실처럼 선명한 꿈을 꾸었다.

친구가 볼 일이 있다고 해서 어느 장소에까지 태워 주겠다고 하였기에 친구를 태우고 다리를 건너 좌회전을 하여 강을 왼쪽으로 끼고 달렸다.

강변을 따라 양쪽으로 노란 들꽃이 잘 가꾸어진 것이, 마치 시골의 무슨 문화 행사라도 열릴 법한 길을 지나서 어느 장소에 당도하였다. 입구에 있는 사무실 용도로 보이는 공간에 아주머니 몇이 보였고, 친구와 나는 물품 보관소 같은 수납 공간의 선반에 소지품을 얹어 둔 후 스님을 만나겠다고 돌계단을 올랐다.     

 

돌계단을 몇 개 오르던 중 친구는 내게 핸드백을 거기 두고 오면 안되지 않을까? 잃어버리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던 차에 나는 되짚어 내려와 핸드백을 찾았고, 친구와는 그렇게 계단 앞에서 헤어졌다.

그런데 잠시 후 친구는 계단 너머에서 동전을 한 웅큼 세차게 내던지는 것이다. 얼떨결에 나도 따라 주머니 속의 동전을 집어 던졌는데, 친구 모습은 얼핏 보이고 동전만 비 오듯 쏟아지더니 어느 순간에 그 동전이 하얀 종이 접이가 되어 꽃처럼 떨어져 내렸다.  

 

한밤에 잠이 깨어 천연색 활동사진 같은 꿈과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자기를 잘 인도해 달라는 뜻이었을까?

동전과 함께 모든 애착했던 것을 던져 버리니 이제 다 버리고 잘 떠나겠다는  의미일까?

비 퍼붓듯 쏟아지던 종이 접이 쪽지는?

가슴에 처절한 생채기를 내며 새겨졌던, 차마 말로 다할 수 없었던 한 많은 순간들이 꼼꼼이 새겨진 생의 기록들이 종이비, 종이 폭포가 되어 내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저런 망상에 뒤척이면서 나는 홀로 결론을 내려 본다.

이것은 미처 하지 못한 나와의 이별의 의식이었다고.

 

친구의 죽음과 너무나 간결했다는 장례 절차를 듣고나니 자연히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는 고인에 대해 예를 갖추는 관습이 있다. 지금은 무척 변질 되어 과시적이며 상업적이라 지탄이 많지만, 한 죽음에 대해 예를 다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경건하게 추모하고, 고인을 사랑했던 마음을 한데 모아 덕담을 하듯,

영면에 드는 사람의 평안을 빌어 주어야 할 것같다.

그것은 성실하게 인생을 살다 간 사람에게 바치는 예의가 아닐까 싶다.

 

의식을 통해 한 인간은 생의 여정을 마치니 죽음은 삶의 일부로서, 삶을 완성 시키는 것이 될 것이며,

그래서 비로소 영혼은 거대한 우주의 순환에 가볍게 들어갈 것 같다.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가고,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언니만 사라져 버린 거예요!”

오열하는 동생의 말에 나는 위로하고 또 위로했으나 그 절규는 내내 귓전에 맴돌고 있다.

 

종착역이 가까웠어. 여기서 다른 노선의 기차를 바꿔 타야 해. 나 먼저 가서 잘 자리 잡고 기다릴 테니 천천히 와. 내생에서 다시 보자……”

친구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나는 꼭 기억할 것이다.

 

내 일상이 분주하다는 핑게로, 좀 더 찾아 주고 따뜻한 말 해 주지 못한 아쉬움! 

고운 모습이 아른거릴 때면 나는 간절한 기원의 마음을 허공에 띄운다.

 

"내생에서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빛나는 살림 솜씨 뽐내면서, 소망하던 예쁜 딸 꼭 가져서 언제까지 행복하게 살아!! 간곡히 바랄께." 

언덕에 올라 하얀 손수건이라도 흔들며 잘 가!” 외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