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3년

'남자의 물건' 김 정운 씨의 제안

수행화 2013. 2. 15. 15:54

 

우리는 행복 하려고 산다. 재미 있으려고 산다.”

 

광고카피 같은 이 짧은 멧시지를 전하는 도구로 작가는 물건을 제안하고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자기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물건,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이기도 할 것이다.

 

재미가 있으면 삶이 행복해진다.

평소에 빤하게 하던 반복되는 일들과는 다른 것들을 시도해 본다든지,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일들을 기억해 낸다든지,

진정 자기를 재미있게 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고 꾸준하게 성찰해 보라고 하는 것이

요즘 흔히 말하는 힐링이나 치유와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떠 밀리듯 생활인이 되어 버겁고, 또 무료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 넘기는 이 시대의 남자들에게 인생의 재미, 자기에 대한 작은 배려를 가져 보라는 충고이기도 한 것이다.  

 

재미를 찾아 보는 것 자체가 신선하여 일상에 작은 변화를 가져 올 것이며,

잃어버린 것들, 놓쳐버린 것들을 불러 보면서 자기 안의 어린 자기를 찾아 보다 보면.

어느덧 내 마음의 휴게 공간이 생겨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작가는 친구의 예를 들어 가며 열정적으로 설득에 나선다.

벼라 별 희귀한 커피 그라인더를 수집해 두고

그런 자기만의 공간에서 직접 커피를 만들면서 음악을 듣고 시를 쓰는 시인 김 갑수씨.

사진을 찍는 한편, 오디오와 명품 사들이기의 잔 재미에 푹 빠져 자신의 명품 사랑 방식을 책으로 낼 정도로 몰입하는 사진 작가 윤광준 씨,

그리고 만년필 수집의 세계에 들어 선 김 정운 작가 자신.

종이 질이 좋은 수첩에 만년필로 글을 써 볼 때 느끼는 희열이 엄청난 행복이라고 말한다.

 

빵을 위해 수고 하는 스스로에게 작은 사치 하나쯤 얹어 주어 재미를 찾고,

그 재미는 어느 순간 마음의 보물상자가 되어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빛나게 해 줄 것 같아  

작가가 주장하는 생각에 일정 부분 공감하게 한다.

 

도구에 헌신하고 도구를 위해 희생하다 보면 잡다한 일상은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 되고 말아 버리니

도구에 헌신하는 삶에도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총 여섯 대의 컴퓨터가 돌아 가는 이어령 씨의 서재에 있는 3 미터나 되는 커다란 책상.

그 큰 책상에서 책의 사열을 받듯 앉아 쓰며 생각하며 지내는 모습은 작가의 정체성을 그대로 말해 준다.

서양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알기 위해 수집한 많은 희귀한 고지도, 고서적은 이제 문화적 가치를 크게 지니는 결실을 이루었다고 하는 유 영구씨의 서재.

나는 그분의 업적에 따른 존경에 덛붙여 더 돋보이는 것은 세계 각국의 머그컵을 1500개나 수집한 열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천재의 기억보다 바보의 기록이 정확하다는 말을 실천하듯이 무엇이든 기록으로 남겨 둔 김문수씨의 수첩 뭉치들. 

신 영복의 벼루. 차 범근의 계란 받침대. 문 재인의 바둑., 안성기의 스케치, 조 영남의 안경. 이 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

 

여자들을 위한 그 많은 물건들에 비해 남자들을 위한 물건은 참으로 빈약함을 다시 알게 한다.

그 남자는 우리의 아버지이고, 형제이고, 아들이어서 이 사실을 곱씹어 보게 한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길에 선 남자들이 잠시 짐을 부려 놓고 자신을 점검해 보며 생각에 잠기게 할 것 같다.

핵심에 겉돌며 얼핏 담론에만 그쳤던 문제점들을 끄집어 내며 구체적인 마련을 해보라는 충언을 해 주고 있다.

벗처럼 선배처럼.

 

유쾌하게 통통 튀는 활자를 따라 몹시 바삐 움직이는 그의 손이 보이는 것 같았고,

덩달아 나도 달리듯 바삐 읽어 나간 책이다.

시절에 부합하는 단순 명료한 글인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