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3년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 횡단기

수행화 2013. 3. 8. 00:48

빌 브라이슨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 있는 여행 작가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다. 그 별명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읽고 그에게 이 별명을 붙여 주고야 말았을 것이다. 34일에 걸쳐 미 대륙의 38개 주를 촘촘히 누비면서 거대한 문명국의 명과 암을 반짝이는 재치와 익살로 쓴 글솜씨가 아주 돋보인다. 주행거리 2 2495Km를 돌파했다고 한다.  

 

작가는 고향인 중서부 아이오와 주의 디모인에서 출발하여 아버지가 윈필드의 할아버지 댁에 갈 때 늘 이용했던 경로를 되짚어 가보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한다.크리스마스나 추수 감사절, 독립 기념일 아니면 누군가의 생일을 맞아 온 가족이 찾았던 할아버지 댁, 언제나 행복이 있었으며 유년 시절 추억의 절반이 있었던 그 곳을 맨 먼저 찾아 나선다. 그러나 집은 잡초가 무성한 오두막이 되어 주저 앉았고, 나무는 이유를 모르게 뽑혀 버리고, 축사도 뜯겨 나가버려 깊은 상실감을 안고 남동쪽으로 또 동쪽으로 달리고 또 달린다. 황폐해가는 시골 풍경은 동서가 다르지 않은 모양이라 십분 공감이 가고 있었다.

  

38개의 주를 거치며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경탄하며 찾아 가 본 많은 곳들, 마크 트웨인 기념관, 링컨 기념관, 루즈벨트 기념관, 엘비스 프레슬리 생가등 숱한 기념관, 아름답고 정돈 된 대학 타운들, 에팔레치아, 록키 산맥을 넘으며 만났던 세퀘이어 국립 공원, 요세미티 국립 공원, 엘로스톤 국립 공원 등 많은 국립 공원들. 오대호, 이리호 등 호수를 거쳤으며, 미시시피 강, 콜로라도 강, 그랜드 캐니언…그가 밟은 강산을 어찌 다 헤아려 옮길까만 귀에 익은 지역들을 지라칠 때면 공연히 반가워하며 읽었다.  

작가는 끊임 없이 투덜거린다. 고속도로변의 거대한 광고판이 거슬리고 T.V 화면 속의 지칠 줄 모르는 광고들이 지겹고 끝이 안 보이게 넓은 주차장을 끼고 있는 쇼핑타운. 패스트푸드점들이 주는 상업성을 경멸하고, 그리고 여행지 요소 요소에서 만나게 되는 1.3톤 짜리 철제 궁전에게도 비난을 퍼붓는다. 메탄가스 얼음 제조기, 휴대용 테니스코트, 공기 주입식 인조 잔디 등 등 이동하는 생활에도 일체의 불편을 허용할 수 없어하는 호화 캠핑족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자기들의 불편 없는 자동차 여행을 위해 타인에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작가는 영국에서 런던 타임스와 인디펜던트 기자로 일을 하는 등 성인이 된 후에는 대부분을 외국에서 지냈다고 하니 자본주의적  미국 문화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가진 것같다.  자기 고향 디모인아무데서나 전화번호부 두 권만 쌓아 두고 올라가서 보면 경치란 경치는 다 감상할 수 있는 평평하고 따분한 공간이라며 익살스레 묘사하고 폄하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기면서 모든 독자들은 그가 쏟아내는 불평 이면에 깔린 풍요와 자유로움을 눈치채고 만다. 원시에 가까운 미개척의 끝 없는 평원, 맥을 이루며 허파처럼 산소를 뿜어 내는 산림들, 작가는 그 가없는 풍요와 가능성에는 별 감흥이 없고, 그저 문화적 빈곤만을 줄기차게 탓하며 달리고 달린다. 작가의 아버지는 매년 휴가 때가 되면 아이 셋과 아내를 자동차에 태우고 수백 킬로를 운전하며 푸른 산, 갈색 초원을 넘어 미국 전역을 힘겹게 쏘다녔다고 한다.작가의 강한 추진력과 모험심은 유년기의 여행에서 이미 씨앗을 튀웠던 것같다. 

디트로이트 외곽이라는 디어본에서 찾아 간  헨리 포드 박물관' 등 새로운 정보는 메모해 두며 읽었다. 존 에프 케네디가 저격 당할 때 탔던 차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자동차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훌륭하고 근사한 미국적 가치를 가진 모든 물건들을 한 곳에 수집해 두었다고 하니 짐작만으로 분위기에 압도되려한다.
작가도 놀라 자빠지는 상상 이상의 규모인듯 싶어 뒤 기울였으나 부질 없음을 공 안다.

 

65Km의 구부러짐 한번 없는 직선도로 (사구아체→몬테비스타) 위를 영원처럼 달리며, 한 손은 운전대에 얹어 놓고 지도도 보고, 옷 갈아 입고 머리 빗고, 돈도 세고….온갖 것을 생각할 시간이 넘치고 넘쳐 나는 경이로운 경험을 상상해 보는 것도 즐겁다.

미국판 민속촌인 윌리암스버그의 거대함을 짚었고, 꽃과 나무와 그늘이 있고, 너무나 부유하고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쁘다는 도시. 뉴 멕시코 주의 산타페에 몹시 매료되었으며, 작가가 완벽하다고 느낀 유서 깊은 건축물이 1000 여개가 보존 되어 있다는 조지아 주의 사바나, 미국의 개인 주택 중에서 가장 크다는 노스캐롤라이너 주의 밴더빌트 저택.1895년에 1만 에이커의 땅에 조성된 석조 주택은 방이 방이 무려 255개가 있다고 하니 내 머릿 속 상상수첩에 그림을 그려 가며 하나씩 새겨 보았지만 좁은 국토에 비집고 사는 나의 상상은 번번히 벽에 부딪침을 고백해야 한다.

 

나는 작가의 발길을 따라 함께 구경하고, 투덜거리는 말들을 키득거리며 또 경청하고, 지칠 줄 모르고 동행하였다.동행도 모자라 그 길을 차로 달려 볼 것도 아니면서 언급되는 지명을 메모해 보다가, 급기야는 구글 지도 위에 경로를 그어 보아, 아이오와를 교차점 삼아 동족으로 한번, 서쪽으로 한번 부정형의 타원을 그리누나 확인까지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하릴 없기 이를데 없다 싶어 웃었다. 작가는 시종 어린 시절 소설에서 보았던 이상적인 작은 마을, 아름답고 조화를 이룬 마을, 산업은 있지만 길 끝에서 길 끝까지 상업 주의만 늘어서 있지 않은, 빨리 빨리에 목숨을 걸지 않는 어디엔가 존재할 그런 마을을 찾으려 한다.어디엔가 있을 것이며, 또 있어야 할 그런 도시를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마을이 페이지 사이 사이로  도처에 스치고 또 스쳐 갔다고 보아진다.

바라 보고 또 바라 보다 마침내 감동을 넘어 중독에 들게 하는 하늘의 그 넓음이며 푸르름이라니.그리고 신기루처럼 홀연히 나타나는 아름다운 도시들에서. 나는 내가 잠시 보았던 미국의 하늘과 거대한 광고판이 늘어 선 길과 쇼핑 타운의 드넓은 주차장과그리고 유쾌해 보이는 사람들의 기억을 슬쩍 슬쩍 오버랩 시키며 산책하듯 페이지를 넘겼다. "미국 하늘은 왜 이렇게 넓을까!" 내가 경탄해마지 않던 그 하늘 , 바라 보면 가슴을 뻥 뚫고 지나 가며 시려운 눈물을 솟구치게 하던 그 깊고 푸른 하늘을 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 광활한 땅을 내 아이들이 달리는 날을 나는 꿈 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