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타이완 1 - 타이페이

타이페이 ~ 겸손한 얼굴

수행화 2013. 4. 4. 04:01

<Taiwan>

우리가 아는 타이완의 역사는 장제스 총통이 이끌었던 국민 정부가 타이완으로 이주한 이후부터일 것이다. 1949년 10월 1일에 뻬이징에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자 장제스 총통이 이끄는 국민정부는 대만해협을 건너 중화민국의 임시 수도를 타이뻬이에 수립하고 본토수복을 정치적 목표로 삼아 반공친미정책을 추진해왔다.

1971년 중국이 국제연합(UN)에 가입하자 국민정부는 탈퇴했으며 이후 자유 우방국과의 단교로 이어졌던 것이다. 1992년 8월 한국이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함으로써 타이완과 한국의 외교관계도 단절되어 오늘에 이른다.약육강식의 비정한 역사는 이렇게 흐르고 있다. 

 <타오위엔 국제 공항>

출국장으로 나가면서 처음 만난 타이완의 얼굴, 일정하게 분할된 지붕에 쏟아진 자연광은 명경같은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며 멋진 대칭 구도의 그림이 된다. 가다 말고 혼자 뒤돌아 바라 보고 또 본다. 1979년 3월 개항 이후 '중정 공항'으로 불리우다가 천수이벤 행정원이 들어서면서 개명되어 지금은 공식적으로 '타이완 타오위안 공항'이라고  부른다. 

점심 식사를 하던 식당 주변.
줄지어 선 오토바이, 전봇대에 코팅해 입힌 버스 노선도가 다소 낯설 뿐, 그저 이웃 도시 마실 온 기분이 들어 무심해진다.  


< 중정 기념당>

 '중정'은 장개석의 본명이며, 제스는 그의 자라고 한다. '중정 기념관'은 장제스 중화민국 초대 총통이 1975년 서거 이후 중국 화교들이 자금을 모아 건립한 건물이라 들은 것같다.

기념당을 들어서며 잠시 바라 본 인도, 잘 정비 되어 보기가 좋다. 

 '대충문'이라는 출입문을 지나며 의외로 한적한 것에 의아한 감이 든다. 타에페이의 대표적 방문지라면 구름같이 관광객이 모여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장제스가 통치했던 시절의 여러 기록 사진들, 많은 글과 그림, 훈장 등이 전시되어 있어, 그의 생애와 정치에 대한 궤적을 알게 한다. 입장료도 없으니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랑 받을 것같다.  

관람실 통로는 봉축 행사장같기도 하고, 축제 중인 것같기도 하다. 초롱 초롱 매달린 등은 주연 배우의 모습으로  해사하게 웃고 있다.

내부는 넓고 쾌적하여 전시물을 눈여겨 보게한다. 그런데 전시도 좋았지만 나는 멋진 그림을 담은 저 예쁜 등에 더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장제스 생전의 집무실 모습
. 역사 시간에 손문이며 장 개석이며 삼민 주의며... 퍽 많이 들어 본 개념들을 이리 저리 엮어 보며 거닐어 본다.

   "The wedding portrait of Chang and soong Mei-ling in Shanghai on December 1, 1927.
soong Mei-ling later became known as Madame Chiang" 

이 한장의 사진.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이름, 송 미령. 그야말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중국의 신여성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송 미령,
1922년이라는 배경이 무색하게 멋있는 그들의 결혼 사진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송 미령은 상해의 대단한 부호의 딸로서 장 개석의 세번째 부인이 되면서 많은 구설에 올랐지먄  장제스와 중화민국을 위해 외교적으로 훌륭한 내조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작은 언니 송 경령은 손문의 아내이고 장제스는 손문과 친구지간이어서 서로 간에 애증이 있었겠다 짐작이 된다. 어쨋거나 그 자매는 근대 중화민국 역사에 일정 부분 지대한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송 미령은 일찌기 미국 유학을 떠나 웨슬리 여자 대학을 졸업하였고, 1949년 장제스가 공산당에 밀려 본토를 포기하고 타이완으로 이전한 시점에 합류하여, 1975년 정제스가 89세에 타계할 때까지 대만과 미국을 오가면 지내다가 1978년 미국으로 완전 이주하였다. 2003년 송 미령의 부음을 들었던 날의 기억이 선연하다. 뉴욕에서 10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전설이 되었고, 지금 이 기념관에서 세련된 그녀의 모습을 본다.

장제스가 타던 차량. 

또 하나 근사한 차량이 전시되어 있는데, 1955년 GM사의 캐딜락으로 필리핀에 거주하는 중국인 화교가 선물한 것이라는 안내가 있다. 장제스는 많은 중화민국인의 존경의 대상이었던 것이 여실하게 보인다.


<위 교대식
>

기념관 윗층으로 올라 가니 거대한 장제스의 청동좌상이 덩거렇고, 앞에는 군인들이 미동도 없이 서 있다. 매 시간 마다 위병은 교대식을 올린다. 다른 국가에서 더러 위병식을 보았지만 이곳의 근위병들은 더욱 미동이 없어 동상 앞에서 함께 동상이라도 된듯하다. 이것도 장제스에게 보내는 국민의 존경심일 것이다. 역대의 통치자를 존경하지 않는 우리의 풍토에 대한 아쉬움을 여기서 생각해 보게 한다.  

 

<충렬사>

중국의 내전 중에, 또는 항일 운동을 하다가 전사한 군인과 열사의 영령을 모신 곳.우리 나라의 현충원과 비숫한 곳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매 시간마다 위병 교대식이 볼거리라고 한다.

내부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 찬연한 붉은 색만 바라 보다 나오니 조금 썰렁한 감이 있는게 사실이다.


아치형 출입문이 타이완 건축의 한 양식인가 했더니 당나라 양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끊임 없이 들고 난다. 그런데 타이완 사람들은 본토 중국인과는 첫인상이 상당히 달라 보인다. 물론 내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시끌벅 하지 않고, 그악스럽지 않다고나 할까, 대체로 차분해 보였다는 것이다.

<국립 고궁 박물원>

국립 고궁 박물원 전경.
박물원은 무려 75만 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고, 세계 4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꼽을 정도라고 한다.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이동할 시에 가져 온 진귀한 문화재들을 전시하고 있고 3개월에 한 번 씩 교체 전시를 하고, 전 품목을 전시하는데는 8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기대는 만발했건만 사진 촬영 금지라 눈에만 넣고 나온다. 옥 빛깔을 살려 벌레 붙은 배추 모양을 조각한 것이 신묘했고, 공 속에 공을 옥돌로 빚어 넣은 것은 제작 방법이 상상되지 않고, 작고도 작아서 돋보기로 보게 하는 돛단배에 눈꼽만한 사람들을 새겨 앉힌 것도 놀라움으로 보았다.

박물원 맞은 편에 고층 아파트가 시야를 가리니 좋아 보이지 않는다. 타이페이 사람들은 건물에 페인트가 벗어져도 그만, 타일이 떨어져 나가도 그만, 도무지 주택의 외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던데 그래도 100평이 넘는 아파트가 수두룩하단다. 내실만 중시하는 생활관을 지녔는지, 타인을 의식 않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자동차로 이동 중에 아름다운 건물이 눈에 띄어 물어 보니 '원산대반점'이라는 특급 호텔이라고 한다. 장제스 총통 시절 영빈 목적으로 건립한 것이라는데 언덕 위의 붉은 집이 한 눈에 명소로 보인다. 배용준이 투숙하였다고 하여 중국 관광객들이 몹시 사랑하는 곳이라고도 한다.

<스린 야시장>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 야시장 입구.
이곳 야시장은 먹거리가 넘치고 재미 있다고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이른 저녁이라서인지 우리네 시장처럼 곽 찬 느김은 덜했다 싶다. 

중국인들은 평등사상이 투철한 관계로 가사도 남녀가 완전히 반분하고, 집에서는 조리를 거의 하지 않고 대부분 매식을 한단다. 주부는 완전히 부엌에서 해방이 된 모양이다.

풍물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탓인지, 호객꾼도 없어서인지 재밌는 가게를 못 만나고 한바퀴 어슬렁거리다 나온다. 

시장 내부는 깔끔하게 정비돼 보인다. 한 때는 .대만산 물건이 품질이 좋다고들 했는데 지금은 별 감흥이 없는 걸 보니 그 사이 우리 제품들이 월등히 좋아진 것인가 싶다.

망고빵, 망고 빙수가 추천 식품이라고 한다. '망과' 글자와 그림을 보고 망고빙수 가게라는 걸 알아 본다. 빙수가 100원, 한화로 4000원 가량인데 그릇이 사발면 그릇만큼 크고 양이 많다. 고급스런 맛은 아니지만 차갑고 달콤한데 시장에서 군것질하는 재미를 얹어서 재밌게 먹었다. 

< 101 빌딩>

목을 한껏 꺾어야 바라 볼 수 있는 101층의 초고층 빌딩이다.  2003년 7월 1일 완공 되면서 많은 기록을 보유한 빌딩으로  지상 101층 지하 5층 빌딩이다. 건물 높이 509m, 지붕높이 449m로서, 이 시계는 신년 맞이 카운트다운을 하며 유명세를 탄다고 한다.  

샤넬 광고는 우아한 조명으로 주변을 갑자기 럭셔리하게 만들어 준다. 101 빌딩에는 금융 기관과 쇼핑 센터가 들어와 있다.

101빌딩이 타이페이의 얼굴일 수 있다는 걸 밤이 더 잘 보여준다.

이 빌딩이 2004년부터 2010년 까지 세계 최고층 건물이었다는 걸 지금에야 알았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높았다니!  지금은 두바이의 블루즈 할리파 건물이 최고층이고, 롯데 건물이 올라 가면 또 등위에 변동이 있을 것이다.

5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오르게 되는 구조이다. 아래 층은 백화점으로 명품숍이 즐비하고 대리석 인테리어가 무척 고급스럽다. 37초만에 전망대에 오르는 초고속 엘레베이터. 정말이지 눈 깜작할 사이에 올라간다.

고급한 분위기의 쇼핑가.
전망대에는 그림과 사진으로 101 빌딩의 이해를 도우고 있다. 빌딩은 대나무 형상으로 마디가 있으며, 한 마디에는 8개 층을 넣어 설계했다고 한다. 8이라는 숫자는 그들이 사랑하는 행운의 숫자이기 때문이란다.

건물의 중심에 철로 된 거대한 구가 전시물 같아 보이는 데 건물의 지진 방지를 위하여 중심축에 무게를 주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이것도 노출 시켜 놓으니 또 한 볼거리이다.  무게 680톤의 쇳덩이가 체인에 걸려 있는 게 아슬아슬하다. 

우리는 안내폰을 하나씩 받아 들고 기둥에 쓰여진 숫자를 따라 걸으며 한국어 안내를 듣는다. 주요 건물과 공장 지대 등 설명을 들는 것이 101 빌딩 투어이다. 조명이 조금 어두운 듯해도 보여줄 건 다 보여 주고 있다. 

1,2,3...순서대로 걸음을 옮기며 바라 본 타에페이 시 야경.  

< 행천궁과 시내 풍경>

'행천궁'은  시내 중심에 자리한 도교 사원이다. 삼국지 주인공 중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고, 붉은 빛에 화려하게 치장한 지붕이 돋보이고 외관이 아주 깔끔하다. 

그러나 관우는 단순히 소설 속의 무사에 그치지 않고. 신으로 모셔져 있다는 게 우리 눈에는 어색해 보인다. 푸른 제복 입은 사람들이 복을 빌어 주는 모양이고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많은 공양물이 있는 단상에 다발로 피우는 향이 매케한 것이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이지만 한 쪽에는 차분하게 경전들을 읽고 있는 것이 보기가 좋다. 도교가  일상 종교인 것같다. 

  붉은 문과 조각 기둥의 대비가 건물에 한 멋을 보탠다.

행천궁은 도심 속의 기도처요  위안의 장소로 큰 소임을 다하는 것 같다.

행천 궁 앞의 도로 모습..
우리네 거리 풍경과 흡사한데,  타이페이 시내의 횡단보도 신호등은 참신하고 귀엽다. 파란 신호등으로 바뀌면 귀여운 아이같은 캐릭터가 천천히 걷기 시작하고, 초 시계에 따라 차츰 걸음이 빨라지다가 20초 정도를 남기면 마구 뛰기 시작한다. 행인들도 자연히 따라 뛰게 된다. 횡단보도의 마스콧트로 유용하고 재밌다.

행천궁 앞 노인들의 정체가 잠시 궁굼하더니, 향이나 사탕 등을 들고 있고  누구는 하모니카 연주까지 하는 걸로 봐서 공양물을 파는 상인인 걸 알았다. 

  차창을 스치는 도시는 너무 소박해서 차라리 겸손한 모습이다. 국민 소득도 높고, 여성의 사회 진출도 활발한 점 등 내공이 만만찮은 도시로 알고 있는데 의외이다. 거리에는 여느 동남아 국가와는 달리 한국 자동차가 전혀 보이지 않아 놀랐다. 일본 자동차가 아주 많고, 편의점도 일본 브랜드가 많이 보여 일본과만 활발히 교류하나 싶어 공연히 심기가 불편했다. 

치장에 큰 힘을 들이지 않는 도시같아서 화려한 야경은 기대도 않았는데 멀리 조명이 명멸하는 어여쁜 다리가 지나가서 반가웠다. 번화한 도심을 보지 않고서 선입견만 내세웠지 싶다. 

거리를 쓸고 다니는 오토바이는 수시로 사고를 내는 모양이다. 헬멧 착용이 의무적이라 철저하다는데 그래도 위험한 건 사실이다.

오토바이 소음과 함께 도시는 잠을 깨고 잠에 든다. 차분해 보이던 한낮의 거리를  밤의 오토바이 행렬이 역동적 에너지로 바꾸어 버린다.


<지우펀>

 타이완 북쪽의 신베이시에 속하는 마을. 1989년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비정성시'라는 영화를 찍어 유명해진 거리이고, 우리나라에서 SBS에서 '온에어'의 배경이 되어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1920~1930년 경 금광 채굴을 했다는 마을이 상전벽해가 된 것이다. 중국 정취가 작은 마을에 가득하다.  좁은 골목 사이로 먹거리와 기념품 점들이 오밀조밀하여 정다운 거리이다.

젖은 얼굴의 바다를 바라 보며 산길 오르막을 오른다. 에전 이 산골 마을에 아홉 가구만 오래 살면서 모든 것을 9 등분으로 나누었다고 해서 지우펀(9분)이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격세지감이 든다.


산모롱이에 오롯이 앉은 마을. 화장으로 감춘 낙후된 산동네 모습이다. 이 오종종한 마을을 촬영지로 찜했다는 영화인들. 
그 남 다른 시선이 경이로울뿐이다.

갖은 먹거리들을 담고 있는 가게들. 이마를 맞댄 차양막이랑 이 모든 것이 영화 셋트장 같다. 소소하고도 소박한 일들이 일어날 것같은 거리다.

 쇼핑의 잔재미가 쏠쏠할 소품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물건이 넘쳐나는 동대문, 남대문을 옆구리에 끼고 사는 코리안이 아닌가!

사이 사이 예쁜 가게들도 많아 기웃거리며 걸어 본다.

밤에는 불을 밝혀 붉은 정취가 짙게 배어 나올 모양이다.

고불거리며 골목을 걷다 보면 다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다. 이쯤에서 우리는 차를 한잔 마셔야 한다.

언덕에 의지한 집들이 모자이크처럼 또박또박하게 보인다. 뷰도 좋고, 공기도 좋으나 지우펀을 오르내리는 길손들 때문에 조금 블편하리라는 생각을 하며 내려 온다.

도교 사원. 풍광이 좋은 곳에 우리는 어김 없이 우리의 절이 있다면, 이곳도 지세가 좋은 곳에 도교사원이 있는 것 같다.

 

<2013년 3월 12일부터 15일까지 타이완 여행 간추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