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타이완 2 - 태로각&해상 공원

'태로각' & '야류 해양 공원'

수행화 2013. 4. 4. 20:42

 타이완의 면적은 우리의 경상도와 제주도를 합쳐 놓은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면적의 64%가 산지이고 산봉우리들의 평균 고도가 3000m가 넘고,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의 표고가 3997m나 된다고 하니 절벽의 나라가 아닌가 싶다.  화련은 대만 동부의 중심 도시로서 뒤쪽으로는 동부 산맥을 등지고, 앞으로 태평양을 바라보는 도시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화련의 태로각 협곡을 보기 위해 우리는 기차를 이용한다. 

 

<타이페이 역>  

타이페이 역사 앞 정원은 꽃과 미술품으로 멋을 부렸다. 바쁜 걸음에도 눈길을 붙잡게 하는 존재감이 있다.

이곳의 한자는 간자체가 많지 않아 읽고 이해하기가 조금 쉽다. 거리의 간판들만 대충 알아봐도 여행자의 마음은 편해지는 법이다.

 화련으로 가는 기차는 벼가 푸룻푸룻한 들녘을 지나기도 하고, 해변을 바로 옆에 끼고 달리기도 한다. 고구마 모양의 타이완 지도 어디메를 지나고 있을까 생각해 보며 평화롭고 한가하게 창밖을 본다.

 태로각 역에 내려 우리가 이른 점심을 먹은 호텔 식당. 여행 중에 만나는 깔끔한 식사는 마음에 비타민을 공급한다.

 창 밖에 봄은 익어 있고 점심은 먹었고, 빠듯한 일정은 궁금하지 않고, 턱을 고이고 그저 여유나 부리고 싶어진 정오 무렵의 감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도시, 화련의 태로각. 태평양이 바라 보인다는데 정상에 오르면 보이려나? 평탄한 지형을 달리던 차창 밖으로 급하게 나타나는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장춘사>

장춘사는 태로각 국립공원을 조성하다 숨진 200여 명의 영령을 모셔둔 사당이다. 사(寺)가 아닌 사(祠), 로 표기한 점이 특이하다 했었다. 절 아래로 떨어지는 여린 폭포가 몇 오라기 실낱처럼 까마득히 보인다.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절벽산 발끝을 유순한 물줄기가 간지럽히듯 적셔 주고 흘러간다. 그래서 더 그림같다.

장춘사를 가려면 그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만든 다리를 일단 건너야 한다.

암석 터널은 끝간 데를 숨기고 입을 벌린 채 휘돌며 어서 들어 오라고 재촉한다. 거대한 상어 입 안 같은 느낌에 나는 들어가지 못했다. 깜깜한 굴을 바라 보다 우향우하면 장춘사 안내가 보인다.

입구에 모셔진 불상 아래 영령의 이름을 새겨둔 것같다. 바로 옆 아치형 통로는 장춘사 가는 길의 시작이다.

<태로각 협곡>

자연은 자연을 지배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연이 일으키는 풍화와 침식 작용은 절벽산을 만들기도 하고 부수기도 한다. 절벽 옆을 아슬하게 찻길이 나있다.   

숲이 덮고 있으나 실은 바위산이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 사이를 계곡은 품을 줄이고 낮은 자세로 흐르고 있다. 바위를 뚫고 잘 조성된 트래킹 코스(?)를 우리는 걷기만 하면 된다. 바위도 힘들고, 이 강고한 산을 깎아 나가던 누군가의 노고도 어마어마 했을텐데 말이다. 그런데 낙석 위험때문에 입구에서 모두 안전모를 써야 하는데, 수칙을 안 지킬 수도 없고 불편했다.

절벽의 속살은 부드럽게 출렁이는 마블 문양이 여실하다. 대리석 산이고, 비취가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보물산인 모양이다. 

온전한 터널 길 사진을 잘 찍어보려 했던 내 생각은 갑자기 불쑥 마주치는 어둠과 적막에 깜짝 놀라 움츠리고 만다. 어둠과 빛이 깜빡 깜빡 교차하는 길을 아릿한 돌 냄새를 맡으며 무심히 걷게 하는 길이다.

바위 사이 사이 유난히 구멍이 많은 걸 보게 된다. 제비가 산다고 해서 '연자굴'이라고 부른단다. 그래서인지 이지역이 '연자구'이다.

인심 좋은 바위는 머리에 보송 보송 풀도 살게 하고, 집을 지어 주어 제비와도 더부러 산다고 하니 온기를 가진 산인가보다. 흐르는 물가의 돌들을 보며 떠오르는 동요 구절..."바윗돌 깨뜨려 돌덩이, 돌덩이 깨뜨려 돌맹이, 돌맹이 깨뜨려 자갈돌, 자갈돌 깨뜨려 모래알, 라~~~~~~~~"  바윗돌이 모래알이 된 세월을 살아 온 산이다.

군데 군데 나 있는 들창(?)을 통해 손에 잡힐듯한 절벽도 보고, 저 아래 강물도 내려다 보고, 또 바위를 비집고 뿌리를 내린 풀숲도 봐가며 유유히 걸을 일이다. 오래 걷고 싶은 길이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길은 마치 저 '아잔타 석굴'을 닮아 신비감마저 일으킨다. 걷다 뒤돌아 보니 사람 모습은 멀리 점이 되어 있다. 

 

<야류 해양 공원>

야류 지질 공원은 석회질 바위가 변형되어 독특한 지형을 이룬 곳이다. 파도와 해풍이 수천만 년에 걸쳐 조성해 온 조각 공원인 것이어서 기특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차양막이랑 버스를 보니 관광지 맛이 물씬 난다.

이름을 가진 영광의 얼굴들이 의외로 많다. 친절히 먼저 알려 준다.

여왕석과 화석의 그림이 아로새겨진 보도를 걸으면서 이 공원의 상징적인 돌들에 대해 한번 더 예습을 하게 된다.

공원 입구.
갑자기 버섯처럼 솟구친 암석들이 가상세계 진입로 같다. 우선 놀라고 본다. 세계에서 터키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지형이라고 한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바위 하나 하나에 이름을 지어 주고 싶다. 보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이름을 지어야 할테니 작명이 어렵긴 하겠지만.

잘 만든 종들을 오롯이 모아 둔 작품같다 여겼더니, 그 이름은 '촛대 바위'란다. 'Dangerous, Do not crossing"  경고문과 함께 줄까지 쳐 놓았으니 훼방꾼 없는 촛대 작품에 파도 홀로 자유롭다.  

햇빛과 물만 있으면 무럭무럭 자랄 것같은 버섯 바위가 밭을 이루고 있다. 공상 과학 영화에 거대한 버섯 숲은 없나 모르겠다. 영화 배경에 딱 좋을 것 같은데.

버섯 숲을 지나 산책로를 걷다 보면 시루떡처럼 켜를 이룬 지층을 보게 된다. 오늘도 파도는 숨을 들이 쉬고 내 쉬어가며, 바위 조각에 공력의 손길을 멈추지 않고 있다.

비와 바람이 조성해 둔 공원이 어지러운 인간의 발자욱에 시달려 사라지면 어쩌나 조금 걱정이 된다. 반드시 산책로를 따라 걸어줘야만 할 것 같다.

여왕 바위는 긴 목을 하고 공원의 격을 올려 주고 있다. 우아한 여왕의 모습은 각도가 조금 달라져도 상당히 불편한 얼굴이 되니 여왕 알현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여왕 바위 앞은 포토죤이다. 늘어 선 줄이 끊이질 않으니 좋은 사진을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Taiwan rock' 이라는 이름까지 가진 이것

상감 기법으로 구워진 도자기 질감을 내는 이 돌은은 화석이라고 한다. 파도에 쓸리고 시간이 밟고 지나가도 굳굳히 버텨  화석이 됐나보다. '화석이 되다' 라는 말은 실로 엄청난 비유라는 생각을 한다. 불변하는 무엇, 집념의 결실, 어마어마한 세월들이 압축된 의미를 마음에 담아 보며 공원을 나선다.


꼼꼼하게 살피고 즐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산책 한 번 잘 한 것이라 위로하며 걸어 나왔다. 비 뿌리고 바람도 거들며 덤비는데 아니 무서울 수가 없어 걸음을 재촉하고 보니 우리 일행들은 이미 공원을 떠났었다. 마주 보고 있다는 태평양도 바라보지 못했지만 괜찮다. 세상에 이런 곳도......또 한 곳에 발도장 찍어 숙제 마친 기분이 좋다. 

 

<2013년 3월 12일부터 3월 15일 동안 타이완 여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