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3년

이별의 아쉬움을 알아 가는 아이들.

수행화 2013. 7. 25. 01:20

해를 본지가 언제였던가!  늦여름 장마는 시절도 잊고 방향도 잊은는지 여기 저기 몰려 다니며 일을 내고 있다. 빗줄기는 때로 호기 있게, 혹은 지리한 모습으로 끊임 없이 내리면서 국지성 호우, 아열대성 기후 등등 우울한 말들이 더돌게 하고 있다. 장마 기류가 그리는 하강 곡선보다 더 가라 앉은 기분 속에 나는 일손도 놓고 넋도 놓고 있다. 딸이 아이들 데리고 지내다 간 한달은 장마도 아랑곳 없더니만.

 

외손주들이 떠나니 아이들 떠드는 소리, 달리는 소리, 자동차 구르는 소리도 사라졌고, 잠도 편히 자는  절간처럼 조용한 나의 일상이 다시 찾아왔건만 마음에 안정은커녕 가슴에 뭉툭한 돌덩이 하나 자리 잡은 듯 무겁기만 하다 아쉬움이 많이 남은채로, 그 미진한 마음을 안고 손자가 떠나던 날의 얼굴을 나는 아주 잊지 못할 것이다. 

 

떠나는 순간까지 저희들 즐겁게 해 주겠다고 외삼촌에 누나까지 인천 공항가지 배웅에 나섰다. 어쨌거나 즐거운 분위기에 진정이 되었던지 아이들은 한 사람씩 하이파이브를 하고, 안아 주고 해가며 떠나는 모습을 멋지게 연출하더니만,출국장에 줄을 서는 순간 감정은 폭풍이 되어버린 걸까? 고개를 떨구며 바로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닌가!

 

내 머릿속에 찍힌 그 영상은 틀면 자동으로 눈물이 나오게 하는 필름이 되어 날마다 재생에 재생을 거듭한다. 그래서 젖은 날 내 눈시울을 시도 때도 없이 적시면서 말이다.

 

변화 무쌍하고 뭔가 바쁘고 재미 있어 보이는, 나날이 온갖 이벤트가 가득해 보이는 서울을 아이는 너무 좋아한다.집만 나서면 보게 되는 자동차 행렬, 저희 동네에는 드문 자동차 차단 장치 등 온갖 역동적인 것들이 가득하나날은 그렇게 행복했었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들이 그렇게 즐거웠지 않나 싶으니 평화롭고 쾌적한 저희 마을에 보내는 것이 차라리 안쓰러울 수밖에 없다.할아버지가 목공으로 만든 차단기를 부서질까봐 저의 작은 개리어에  모시고 끌며 눈물을 훔치며 떠났다.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만치 마음은 자랐지만 행복한 순간들을 버리고 간다는 슬픔이 더 큰 것을 어쩌란 말인가.아이에게는 그리움도 슬픔일 뿐일테고, 슬픔을 제어하는 능력이 아직은 부족한 어린 가슴에 고통을 안기는 것이어서 괴로움은 잦아 들지 않는다.큰 애들은 또 그들대로 아쉬운 마음으로 어린 동생들을 보내며 안타까워하니 보는 것이 더욱 애잔하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따르는 세월은 길지가 않다.아무리 가까이 붙잡아 두려고 해도 아이는 자라면 품을 떠나 자기만의 인생 행로를 걷게 되는 것이고, 또 우리의 수명은 영원하지 않으니.....그래서 아이들의 어린 시절, 이 순간이 참 소중하고 간절하다.나는 아이들이 자라 스스로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을 담대하게 바라보려 애쓰는 사람이라 늘 생각해 왔다.그런데 그게 나의 허세였던가 싶기도하고 영 종잡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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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살짝 그친 저녁 시간 아이들이 신나게 동동거리며 뛰놀던 놀이터를 혼자 휘휘 한바퀴 걸어 본다.쓰레기장에까지 따라 다니던 천진한 모습들이 먼 옛날 일이기라도 한듯이 그리워 진다. 

 

다시 화상 전화 속에서 만나게 되니 또 감정이 돠살아 난 모양으로 영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할머니가 너 좋아한대. 어서 전화 받아

 

똑 부러지게 야무진 동생의 권유를 어쩌지 못해

 전화기 너머로 먹먹한 목소리만 전해 주는 손자... 그리운 마음에 차마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어~~어~~" 소리만 내고 있으니 또 목이 메었다.물을 금방 쏟아낼 것 같은 무거운 하늘 만큼 내 가슴도 물기에 젖어 무겁기만 하다

 

 어렵고 혹은 가혹할 수도 있는 현실을 살아야 하는 사내 아이가 심약한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리지만 어쩌랴! 그렇게 고운 심성을 지니고 태어난 것을.

  

 비가 오면

할머니 비와 와” 하는 목소리를 생각할 것이며,

 

달이 보이면 

 

 “할머니! 달님이가 나왔어!” 달님이 보여 줘서 고마워” 하는 감탄의 소리를 되새기며 기억 속에 오래 붙잡아 두려 애쓸 것이다.

 

나 너 좋야(?) !”"다시 만날 날까지 엄마양 아빠양 잘 지내고 있어. bye~~"저희들 목소리를 멋쩍게 혼자 흉내내며 반사해 본다.   

 

불경에서 인간의 마음에 네가지 고통이 있고, 그 고통의 하나가  '애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을 말한다.

 

슬픔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사물에 연민심을 가지게 한다고 나는 믿는다.헤어지는 시간은 그렇게 가슴 아프지만, 그 순수한 고통은 깊은 숙성의 날을 거치며, 마침내 내면이 아름답고, 따사로운 마음을 키우는 토양이 되어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멋진 청년, 아름다운 숙녀로 자랄 것을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