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3년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 준 한마디

수행화 2013. 8. 29. 16:39

 '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 준 한마디 '

지난 생일에 나는 나에게 정 호승씨의 산문집인 이 책을 선물했다.

 

나에게 가장 부족한 덕목을 얘기하라면 나는 우선 내 용기 없음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포도는 군침이 돌지만 포도 나무에 오를 용기가 없음에 저 포도는 시다하며 돌아 서고마는 이솝 우화의 여우의 심상이 나와 닮았다고. 나는 늘 뒤란으로 숨었고, 뒤 돌아서서 남루해진 내 영혼에 깊은 연민을 보내며, 무위하게 젊은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나의 의지는 모든 외풍을 다 받아 들이듯 시달렸고, 그 바람은 마음에 사막을 만들었으며, 그 외딴 모래섬에 가두어진 현실을 숙명처럼 다독이며 움츠렸으니, 거친 모래 바람을 헤쳐 나아가 물길 한 줄기, 풀 한 포기를 찾아 나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마음의 부채를 어쩔 수가 없다.. 나에게 모든 것은 벽이었던 시절, 벽이 문이라 밀어 볼 용기를 불살라 보게 할 어떤 한마디도 떠올리지 못했다는 것 또한 나의 무력함이었다.

 

두터운 책을 바쁜 숙제처럼 부지런히 읽어 냈으나 정답을 알고 문제를 풀겠다는 자세였던지, 내 인생에서 결여된 용기에 작은 불씨 하나 피우지 못하고 더위 타령으로 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다른 계기로 용기라는 것의 순기능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맏 손녀가 초등학교 학생회장에 입후보 하였던 것이다. 결과는 낙선이었다지만 당락의 결과는 내게 아무런 조건이 되지 않는다. 다만 아이가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 내며 어떤 분야에 담대하게 도전장을 디미는 용기가 너무 가상했다. 후보자 소개 포스터를 만들고, 후보 연설문을 작성하는 등 일련의 과정이 재미 있는 것만은 아니었을텐데, 홀로 해결해 보이는 것이 아주 대견해서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새삼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을 곱씹고 있었다.  

 

긍정적 에너지를 연소 시켜 용기를 일으켰으며, 내면에 이는 호기심의 속삭임에 귀 귀울여 주었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졌다는 것이고, 가능성의 세계를 향해 한 발 돋움 해 보이는 것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이 두려움을 압도한 것이어서 나는 신선한 감동을 전달 받았다. 인생에 임하는 아이의 도전적인 자세를 바라 보면서, 용기는 관념이 아닌 실천에 의해 비로소 에너지화 한다는 걸 느겼으니, 두터운 책 속에서 용기의 불씨를 더듬던 내 마음이 민망하고 물색 없어지는 순간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정 호승 작가의 언어에 대해 비로소 정리할 시간을 가지게 된다.

 

산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내가 산으로 가는 수고를 해야 할 것이라고 이른다. 메아리를 들으려면 산으로 가야하고, 꽃을 보려면 꽃씨를 뿌려야 하듯이 마냥 기다리는 것만이 미덕일 수 없다는 말로 정리가 된다. 시간은 우리 편에 서서 무한히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어서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다. 달팽이도 마음만 먹으면 바다를 건널 수 있다고 했는데 결심이 견고하다면 나아가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어늘 우리는 늘 태산이 높다고만 노래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 무엇을 시작하기에 완벽한 시기란 결코 오지 않을 터인데 늘 그 최적의 순간이 오지 않음을 타박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한 마디 마디는 이제 와서 나 스스로에게 준엄한 비판의 잣대가 되어 준다고 하여 뭐 별반 대수일까마는 나는 지금, 아이가 자라 우리를 가르치려 하는 이 순간이 용기의 연료를 마련할 시간이 아닌가 한다. 나무를 문질러 불이 될 때까지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작은 다짐으로 벽을 문이라 밀다 보면 마침내 벽이 창을 내어 줄 날을 꿈꾸어 보고싶다.
그리고 나는 나의 아이에게 격려를 또한 보낼 것이다. 벌이 4200번 가량 꽃을 왕복하는 수고로움으로 꿀 한 숟갈을 얻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도 벌의 수고로움을 쫒아 거듭 거듭 수고를 하다 보면 꿀을 얻지 않겠는가? 순순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조급증은 벌에게 민망한 일이 될 것이라.

 

상처 많은 나무가 어여쁜 무늬를 가지게 된다는 말을 마음에 가만히 담아 둬야겠다. 절망과 고통의 추운 경험은 인생의 아름다운 무늬를 위한 밑그림이려니 슬픈 얼굴은 이제 그만 걷자고. 우리 다함께 아름다운 자세로 공부하자는 말에도 공감하게 된다.
눈을 짊어지고 우물을 메우는 것처럼 공부하라!" 흙으로 우물을 메워 마침내 우물을 없애는 공부가 아니고, 눈으로 메우고 메우는 부단한 공부라니! 눈이 녹듯 소리 없이 다만 나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공부한다면 공부는 깊어지고, 어느듯 삶도 깊어지리라. 이 청량한 우물에 찾아 들고 싶다.

아! 나는 산에 오르지 않고 또 메아리를 장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