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앨범/ 2013앨범

운주사, 생각을 불러 오는 절.

수행화 2013. 12. 6. 16:47

 

 

구름이 머문다는, 이름도 아름다운 운주사엘 다녀 왔다.
언제부터인지 운주사는 나의 묵은 그리움이었다.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에  자리 잡은 사찰로
신라말 도선 국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고 하나 조성 연대가 대략 고려 중기 12세기 정도로 평가된다고 한다,

천불 천탑이라는 전설같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불국토를 꿈 꾸던 영화로운 시절이 있었나보다.
현재는 21기의 석탑과 93기의 석불만이 남아 있다고 하나
그래도 꾸미지 않은듯 꾸민, 소박한 매무새를 간직한 절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다 선채로 돌부처가 된 것일까?
애잔한 모습을 한컷 찍으며 내 그리움의 상념을 살짝 건네 준다.  

우선 '생각하게 하는 절'이다.


 

 

 


 

키가 늘씬하게 큰 이 멋쟁이 탑이 9층 석탑이라고 한다.
탑신 사이사이 아로 새긴 꽃도 어여쁘고, 
빗금으로, 마름모로 그어진 기하학적 선들이 퍽 단아하고 멋스럽다.

1984년에 보물 796호로 지정되었다고 하고,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한다.

 

 

 

 


여린 둘부처의 환영을 받으며, 온순한 산을 바라 보며 걷게 된다.
잘 정비된 박물관 안 산책길을 거니는 기분에 든다.

탑들이 대체로 날씬해서인지,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좋다. 
구름을 마실 보내고 가을을 마구 익히는 빛나는 햇살 아래 걷는 것으로 족하다. 

 

 

 


 

이 도량에는 부도가 없는 것이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
반면에 안온한 돌부처의 거처가 여기 저기 오손도손 하다.
"........." 각자 감정을 거둔 채 무심에 든 모습이다.

 

  

 

 

 '보물 798호. 운주사 다층석탑'

이렇게 둥글게 켜를 이루며 탑을 쌓아 갔을 옛 석공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시루떡 켜켜이 올린듯. 개성이 넘쳐 나니 탑 이전에 무슨 작품같다, 
고려 중기에서 말기에 걸쳐 조성되었 다고 한다. 

 

 

 

 


"석조 불감"

돌로 조성된 닷집 안에 놀랍게도 두분의 부처님이 등을 마주하고 선정에 들어 계신다.  
비바람을 막아 보려 나무룰 쓱쓱 잘라 붙여 이은 것같은 자못 열악한 처소에서.
야단에 법석을 차려 중생을 향한 설법을 행하시려나....


 

 

 


 

단청을 바라 보면 나는 늘 마음이 낮추어진다.
부처님을 모신 곳을 장엄한 때문이겠지만, 보다 더,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감같은 것이 있다.
 
이곳 대웅전의 부처님은 미륵불이시다.
'대웅전' 현판은 '월하 스님'의 친필이라고 하여 다시 올려다 본다.
친견한 적이 없는 스님에 대한 공경심이 솟는다.   



 

 


대웅전 뒤로 난 길을 오르며 바라 보는 절집 지붕이 정겹게 보인다.
 양쪽 야트막한 산 어깨가 긴 담장을 두른둣 편안하고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겨울의 예감. 산사의 가을이 여기서 또 깊어지고 있다.
  땔감일 터인데 공 들인 설치 미술처럼 보여 멋지다고 생각하다가
힘든 겨울 나기를 구경하는 것 같아 공연히 민망해진다.

 

 


 

한 줄 한 줄 부처님 말씀을 새기다가 붓으로  부처님 모습을 슬쩍 그려 넣은 경전 한 페이지를 여기서 보았네.

마애불에 이르기까지.
돌로 이룰 수 있는 모든 부처의 상을 다 그려 보겠다는 그 누군가의 염원이 있었으리.
예술적 가치 이전에 소박한 불심이 보여 더 진실해 보인다. 

'알기 쉬운 경전' 한 페이지라 이름 지어 주고 돌아 선다. 물론 나 홀로.... 

 

 

 


 

대웅전 뒤로 산신각이 아담하게 한 자리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한 때는 상당히 거슬려 했으나
우리의 불교는 정착 과정에서 토속 신앙과 융화하였으니
도량 안의 산신각도 한 형태인지라 그러려니 하고 만다.  

작아서 귀엽기까지 하다. 

 


 




돌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위엄을 갖추고 우리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것은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모습은 각각이나 거기 앉아 자기 소임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훼손된 모습이 애잔해서 바라 보니 합장한 손을 놓지 않아 몹시 존귀해 보이기도 한다.

 

 

 

 

 

발걸음을 하며 순간 순간 만나게 되는 탑들이 얼마나 정겨운지!
사각에다 원형에다 발우를 쌓아 둔 단정한 모습까지.
모습은 달라도 하나같이 소박하여 정겨운 것이 이 곳 불탑들의 일관된 정신이다.


 

 

 


 

둥근 탑 형태는 크고 작은 것에 관계 없이 어여쁘고 새롭다.

 

 

 


 

"..........부르는 소리는 비켜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대로 돌이 되어도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여!

   부르다 내가 죽을 그 사람이여!
     부르다 내가 죽을 그 사람이여!"

 

 


 

멋 모르고 외워대던 김 소월의 싯구를 읊어야 할 것같은,
아!, 그리운 것을 그리워 하게 하는 오후 !!

담쟁이 빛 고운 탱화를 배경 삼은 채 시간을 잊은 돌부처를 바라 보는 모든 자.
이 순간의 느낌이 다 그러할 것이다.


 


 


 

와불을 친견하려면 낮은 키의 소나무 숲을 올라야 한다.
오르다 숨이 차다 싶으면 거기 불탑이 차분히 서서 잠시 쉬어갈 것을 권유하고 있다.

 

 

 

 


 

아~~~처마 밑 맞춤한 공간에 소나기를 피하기라도 하는걸까?
오손도손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에 가슴에 따뜻함이 전해 온다.  


삶이 권태롭고, 뻔한 일상에 염증이 난 이는 운주사에 들어 '보물찾기'를 해 봄이 어떨까 싶어진다.
맑은 영혼을 되돌려 받을 것같다.  

 

 

 

 

 

마침내 바람이 자유로이 만나는 정상 부근에 이르니 일대의 반전이 거기 있다.
가을 햇살 아래 두 부처님이 번듯이 누워 계신 것이 아닌가!
일반적 와불 형태가 아닌 반듯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보물찾기의 결정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산들이 나직하게 병풍을 둘러 준 곳을 찾아 들어 잠시 휴식에 들었다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부처님께 더 많은 자유, 더 강렬한 햇살을 보태고자 둘러 선 나무는 숨을 죽이며 키를 낮추고 있다.

   운주사의 와불이 전설이 된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된다.



 

 


 

북두칠성의 별자리를 따라 돌을 배치했다고 하여 '칠성암'이라고 한다는데,
위에서 내려다 보면 크기나 위치, 비례가 영락 없는 북두칠성의 형태라고 한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지금은 여섯개가 남아 있다고 하고,
우리가 한 눈에 굽어 볼 수는 없으나 그러려니 상상하고 즐거워 하며 산을 내려 온다.


 

 




 

언덕을 걷고, 숨은 보물을 찾아 보듯 헤메다 내려 오니 
우리가 앉아 점심도 먹고 깨알같은 얘기를 하던 탑전 뜰에 가을이 쏟아져 있다,
 

 


 

 

 

동산 두 군데를 올랐다 내려 와서 보니 뜰에 선방을 옮겨 온 모양으로 부처님이 선정에 들어 계신다. 
상식을 살짝 걷어 낸, 자유가 가득한 사찰임이 틀림 없음이라.
부처와 함께 잠에 들고, 부처와 함께 잠에서 깨고,
부처와 더부러 생각하고...깨달음은 머얼리 있다해도.
 
그리움이 아쉬움이 되어진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할 것이다.

 

 

 

<2003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