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4년

늦복, 사는 게 그림같은 복.

수행화 2014. 7. 1. 02:30

"나는 참 늦복 터졌다".

 

얼마 전 시인 김 용택 씨의 아내와 어머니가 함께 엮은 책이 출간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그런데 지난 주 며느리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책을 봤는데 너무 재밌고 감동적이어서 샀노라고 하며,

 “아버님도 보세요하며 두고 갔다.

물론 아버님은 대충 보시고 웃기만 하셨고.

 

일단 책이 아주 예쁘고, 시집을 펼쳐 보듯 아무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거기 감동이 묻어 있다.

시인의 아내도 시인이고, 어머니도 시인이고, 마을 이름도 시어 같고.

전라도 사투리가 그렇게 고운 말이라는 걸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어머니의 바느질에도 감칠 맛 나는 시가 묻어 있어, 그렇게 소박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날이 어두워지면 갈 길이 서둘러진다. 잿빛 하늘에 살이 조금 오른 초승달과, 지상에서 손을 뻗어 재봤을 때 초승달과 3미터쯤 거리를 둔 곳에 별 하나가 떠 올랐다. 넓은 밤 하늘에 달과 별 하나 뿐이다.”

 

봄에 나물 캐러 나가면

할미꽃, 물국 꽃, 머슴둘레가 먼저 핀다.

진달래, 물싸리 꽃도 일찌감치 피고

그 다음에는 장다리 꽃이 필 것이다.

장다리꽃이 펴야 씨를 맺으면 그 씨를 받아서 무를 갈지.

 감꽃 피는 데 화증을 했다. 감꽃이 빠지면 콩을 심었다.

앵두꽃은 벌이 봉분할 때쯤 핀다.

벌이 앵두꽃이 질라 말라 할 때.

앵두가 녹두 씨만큼 열리 때까지 봉분을 했다.

산에 가면 느즈막이 칡꽃이 피고

여름에는 더워서 그런지 꽃이 별로 없다.

가을에는 가을 국화가 지일이지.”

 

한마디로 평범한 한 가정의 따뜻한 기록이라고 말할 것이나 아무데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인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난했으며, 종일 일만 했으며, 꾸중만 하는 시어머니는 밉고 싫었던 세월을 지나,

지금 아름다운 시선으로 지난 날을 바라 보고,

어머니와 그렇게 격의 없는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기까지 힘든 순간 순간의 이야기들.

짧으나 강하게 마음에 와 실린다.

 

시어머니와 곱지만은 않았던 세월,

울 곳이 없어, 이웃집 장광 뒤에 숨어 울었고, 울다 눈을 떠 보면 앵두 꽃이 피어 있기도 했고, 머위 꽃이 피어 있기도 했고 꽃을 보면 더 서러웠던 젊은 시절의 회상은 애처럽다.

 

그러나 일을 배우고, 어머니와 잘 살기 위해, 대화했으며

어느 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어머니를 받아 들이니 어머니 마음이 의외로 따라 움직였다고 한다.

남편 흉, 시아버지 흉, 이웃 흉을 함께 보고, 갈등이 숨을 어두운 곳을 훤히 밝히려 한 몸짓...

그렇게 찬찬히 신뢰와 사랑을 쌓아 온전한 자식이 되어 살아 가게 되었다는, 지혜로웠다.

 

돌아서서 미워하는 감정을 홀로 키우며 마음의 문을 닫아 걸지 않았던 젊은 날의 선택을  

스스로 장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들 길을 따라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걷던 길을,

혼자서 걷다가, 아이를 업고 걷다가, 아이 둘과 셋이서 걷다가,

나중에는 넷이서 해 지는 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 오곤 했다는 풍경은 오래 그리울 것같다. 

사는 게 그림같던 시절을 살며, 아내로 어머니로, 며느리로 영글었을 시간이 영상을 보는 듯하다.

행복의 밑그림을 그렸던 시절로 우리에게 비춰진다.

 

그 어머니는 지금 병원에 계신다.

그래서 마음이 몹시 쓰인 며느리는 병원 생활하는 시어머니께 글자를 익혀 자신의 생각을 써 보시게 하고,

바느질 감을 듬뿍 안겨 병원 생활이 무료할 틈을 주지 않게 배려한 것이다.

참으로 영민한 며느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마침내 어머니는 글을 읽으셨고, 자신 속에 갇혀 있던 솜씨를 맘껏 뽐내 보이시어,

몸 아픈 노인이 하기 마련인 온갖 불평과 서러움이 들어 설 곳 없이 오히려 높은 자존감을 더 가지게 되셨으니  며느리가 어찌 귀엽지 않으시겠나 싶다.

 

  노년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온다. 장수 시대가 축복이 아니고 공포인 것을 다 알고 말하고 있다.

어느 날 외롭게 홀로 죽음에 이른 노인의 고독한 삶,   

가족과 격리되어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고려장같은 노인의 삶, 흔하디 흔한 소식들이 아닌가? 

 

여기 박 덕성 할머니의 행복한 생활은 널리 본보기가 될 것이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산이든 들이든 잘 때를 빼고는 하루 종일 움직이시던 할머니가 몸이 아파 병원에만 계셔서 느끼는 답답함은 어떠하셨을 것인가. 상상 이상으로 무료하셨을 것이나, 

 

이렇게 손 끝을 꼬물락거려, 아름다운 밥 보자기, 홑 이불들을 만들며 자식들에게 나눠 줄 생각에 바쁘니,

누구를 기다리며 투정하고, 괴로워 할 틈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것 저것, 요모 조모 만들어 달라는 며느리더러,

"지랄한다, 자껏, 그거 만드느라 죽도 못하것다"

구김 없이 오가는 말들이 몹시  정겹게 들린다.

 

"한 가지 하면 또 한 가지 생각나고 해 놓고 봉게 더 좋다. 어치게 니가 그렇게 생각을 잘 해서 나를 풀어지게 해놨냐.

이것이 아니면 여름 진 놈의 해를 내가 어떻게 넘겼을지 모르것다."

"내가 삼베 이불 내 손으로 만들어서 민세 애비 주고 잡다."

저는요? 저는요 어머니?

"지랄한다. 용택이 것이 니 것이지"

이 놈도 걸리고 저 놈도 걸리고...매급시 시작해서 언제 다 할끄나."

 

할머니의 푸념 한 땀 한 땀은 삼베 이불이 되고, 밥 보자기가 되어 행복감으로 아름답게 부활한다.  

이런 저런 말이 많아진 늦복 터진 할머니에게 아들은 우리 어머니는 대학원 나온 사람같다고 한다니...

즐거운 가족이다.

거저 주어진 행복은 아닐 것이다.

삶을 사랑하고, 서로 아끼고 다독이며 내 몸처럼 가려운 곳 긁어 주고, 언제나 생각을 나누고.....

 

"그래서 서로 대화를 많이 해야 해요"

우리 며느리가 한 말이다. 물론 나도 장구를 치며 동의했었던.

등을 피하려 애쓰며 소모적으로 긴 시간을 쓴다는 건 슬픈 일이다.

대화, 대화하며 얼른 매무새를 다듬고 넓고 환한 길을 택하는 것이 얼마나 슬기로울지.

 

가볍게 읽고 책을 덮었지만, 그렇다.

우리는 말 없이도 알아 주고, 저절로 좋아지는 관계를 바란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 기를 좋아 한다. 그래서 사소한 것에 맘을 다치고.

 

나는 '칼로 물 벤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칼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쪽이다. 상처는 시간이 가면 낫고, 비 온 뒤에 당이 굳어진다고?

상처는 나아져도 흉터는 오래 갈 수 있기에, 그리고 비를 견디는 긴 시간이 아쉽고 서러운 것을 이제 알았기에. 나는 칼이 싫다.

그러나 마음 저 깊은 곳, 서늘한 곳을 만들어 서러움을 저장하고 문을 꼭 닫아 두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닌 것같다.

 

온기를 가지고 살며 얘기하며, 가슴을 탁 열고 대화하는 기본을 몸으로 더 익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또 배웠고 늘 배울 것이다. 힘 쓰지 않고 순순히 오는 건 없다.

 

나는 인간미 물씬 나는 '자꺼~' 그런 말 못해서 어쩌나!

그렇지만 삼베 이불은 만들어 줄 수가 있다.

이 책이 내게 준 '삼베 이불 힌트'에 마음이 아주 따뜻해진다.

 

우리, 고부간은 주말에 만나면 주중 뉴스와 이슈를 서로 얘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이번 주말에는 아들 출장 다녀 온 얘기에다 책에 얽힌 얘기로 조금 분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