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4년

"돌아 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를 읽고.

수행화 2014. 8. 29. 15:00

'돌아 보면' '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묻어 나오는 말이다. '돌아 보니 거기 네가....'

따스한 무언가가 있겠구나 여기며 책을 펼치니 근사한 사진이 군데 군데 실려 있어 눈길이 여유롭다.

사실 요즈음 나는 활자도 작고 빡빡한 책,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여행'에다 같은 작가의 '발칙한 영어 산책'을 보던 끝이라 가쁜하고 편한 마음으로 이 책을 들고 앉았다.

 

'후지와라 신야'라는 일본 작가는 젊은 날 사진을 찍고 여행기를 많이 썼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야 처음 책을 접해 본다.

일본 지하철에 놓이는 무가지 <메트로 미니즈>에 6년 동안 연재한 글들 가운데 골라서 엮은 책이라는 설명이 있다.

누군가의 선택으로 짧은 순간 읽고 버려지는 운명의 글이라 할지라도, 때로 막막한 슬픔으로, 혹은 따스한 온기로 자기 소임을 잘 한 글이었을 것이다.  

기계적이고 건조한 지하철 통근 열차에서 이러한 글을 만난다는 건 상당히 기다려지는 일상의 한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평범한 사람들의 만남, 헤어짐, 도시 살이의 애환, 죽음에 대한 단상, 그리고 타인을 향한 작은 배려. 진심어린 희생...

선진화해 가던 시기, 빠르게 발전하던 시절을 살아 오던 일본인의 삶에 묻어 있던 슬픔, 목마름의 어떤 순간들이 작가의 시선을 붙잡곤 했던 것 같다.

 

눈 앞에 아무도 없다는듯이 로봇처럼 말하고 일하는 편의점 아가씨에게 작가는 어느 날 말을 붙여 본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일하는 태도가 인생을 얼마나 삭막하게 하려나 하는 작은 관심으로.

"춥지 않아요? 계속 있으면."

"밤 늦게까지 일 했더니 졸리네."

"이건 레인지에 데우지 않고도 먹을 수 있어요.?"

"어디 몸이 안 좋아요?"

"야근하면 졸리지 않아요?"

아무 것도 아닌 일상적인  말 한마디에 얼음이 깨지듯 쨍하면서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짧게 건네진 대화를 시작으로 이후 웃음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으니, 늘 반가이 맞아 주었으며, 때로 물건을 찾아 주기도 하는 등의 변화가 왔으니 말 한 마디의 작은 시도가 아가씨의 무미하고 뻑뻑한 일상에 윤활유 한방울이 되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정겨운 장면인가 싶다.

편의점을 나서면 이내 각자의 일상으로, 타인으로 돌아 가는 관계였는데, 어느 날 아가씨가 그 자리에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되었으며 이후 그녀가 아주 떠나고 나니 바람 몰려 다니는 겨울 거리에 나선듯 공연히 서글픔이 몰려 오더라는.....등등.

 

도시 안의 외톨이, 도시에 매몰 되어 버린 아이들, 외로운 사람들, 죽음을 생각해 보는 괴로운 사람들.

감정은 표백 되어버리고, 경직되고 냉동된 삶을 살아가는 이러한 무색, 무미, 무취의 문화에 대한 어떤 저항처럼,  거리의 소음에 묻혀 사라질만큼 작고도 보잘것 없는 것에 대한 애정을 보내면서 글을 쓴 것같다.

매일 지하철을 타며, 그것도 늘 지하철의 똑같은 칸을 타서 한 방향만 바라 보며 살아 가는 사람들은 뒷편의 풍경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 골몰하여 어떤 시선도 남에게 주지 않아, 서서이 미소를 얼려 가는 우리 모두는 지하철에 한 방향만 바라 보고 서 있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고향에 가면 늘 거기 코스모스밭, 꽃 뒤에 숨어 있을 것같은 그리운 사람들, 시간들,

그리움은 돌아 가고 싶은 순수의 날들에 나부끼며 걸려 있어 무미하고 냉정한 일상에 안식이 되어 준다.

짧다고 느껴지는 책을 휘이이 읽고 나니 내 마음에 보슬보슬 슬픔이 내리고 생각은 길어진다.  

우리에게 슬픔이나 좌절은 성장통이고 넘기기 힘든 약이지만 이 순간들은 마침내 타인을 이해하고, 마음에 지평을 넓혀 주는 순기능이 있다고 늘 생각한다.

그래서 외롭고 슬픈 순간이 오히려 풍요로워진다.

잠시 뒤돌아 보고, 거기 슬픈 '네'가 있나 바라 볼 일이다.

뒤 돌아 보면 우리 모두에게는 배려와 관심을 보내고 싶은 '네'가 언제나 거기 있을 것이라는 걸 안다.

 

작가는 인도 방랑을 시작으로 아시아, 미국을 두루 사진을 찍으며 여행을 했던 것같다.

그래서 페이지 구비마다 사진을 끼워 넣었나 싶고, 그림은 지루한 일상에 한 점 즐거움처럼 반갑다.

순간 순간 피사체에 몰입하여 작품을 찍은 후에는 그곳의 집착을 버리고, 또 다른 피사체를 향하여 홀연이 떨치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 사진 작가의 마음가짐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의 순간, 그 따뜻함에 대하여 애착을 버리는 기술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 본다. 

실로 삶에는 그 따뜻함이 걸림돌이 되어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을 때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는 '자기 규제를 벗어 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말한다.

작가는 1944년 생이라고 하는데, 자기규제를 벗고 싶어하는, 마음이 늙지 않는, 모험심 가득한 소년의 모습으로 상상이 된다.

작가의 인생에서 여행은 몹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같아 나는 작가의 방랑기를 본격 섭렵해 보려 한다.

내 계획 없는 독서는 또 한 번 출렁이며 또 다른 파도를 타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