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8년

한복 한 벌의 추억

수행화 2008. 8. 25. 14:45

5월은 온 대지가 생명의 푸른 기운으로 넘실대는 가슴 벅찬 계절이다.
가뭇가뭇 지워지던 겨울의 회색을 5월은 삽시간에 초록으로 덮으며 가늘게나마 남아 있던 지난 겨울의 꼬리를 잘라 버린다.
자연 속에 내장된 시계의 정확성에, 그 충실한 흐름에 경외감을 보내며
이 힘찬 봄 맥박의 고동에 발맞춰 걸음을 고쳐 보게 하는 계절이다.

5월과 어버이 날과 한복 한 벌.
어머님과 내 젊은 날들을 한꺼번에 떠 올리게 하는 슬프고도 애잔한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1972년. 결혼 후 처음 맞는 어머니날 (그당시는 어버이 날을 어머니 날이라고 일렀다)에 나는 두 분 어머니를 위해 선물을 마련했다. 봉급을 받은 날 퇴근길에 포목점에 들러 한복감 두벌을 엄선해서 샀다.
물론 내게는 다소 벅찬 지출이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마련을 한 것이다.

친정어머니는 그래도 조금 연세가 적으시고, 나름 한복을 여러 벌 가지고 계시기에 흰 바탕에 검은 연필 텃치로 큼직한 나뭇잎에 잎맥까지 그려진, 당시로는 상당히 대담하고 세련되게 보이는 감으로,
시어머님은 연세가 높으시기에 크림색 바탕에 흐린 분홍과 회색이 깨알처럼 점점이 뿌려진 고상한 것으로 선택하여 소포로 시골에 보내 드렸다.

친정어머니는 곧 제주도 여행을 가시면서 그 나뭇잎이 그려진 한복을 입으시고는 사진을 엄청 찍어 오셨었다. 물론 민무늬의 한복을 입으신 친구 분보다 튀는 것은 사실이었고, 더구나 흑백 사진상으로 그 대비가 굉장해 보였다. 행복한 미소가 잔뜩 실린 그 사진을 오래 오래 좋아하셨다.

얼마 후 방학이 되어 시어머님을 찾아 뵈었더니
“나는 어머니날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한복까지 보냈느냐"시며 기대에 없던 선물에 몹시 흐뭇해하시는 것이다.
‘어머니날’이 있었다는 걸 모르셨다는 말씀에 나는 그 무엇인가를 향해 강한 분노를 일으켰고, 나는 어머님의 진정한 자식이 되어 지나버린 '어머니날'까지 더하여 행복하게 해 드리리라 마음 속 굳게 다짐을 했었다.

아! 그러나 어머님의 ‘어머니날’은 그 후 단 두 번의 기회 뿐.
1974년 찌는 여름. 이제 백일이 갖 지난 손녀를 한번 보시기도 전에 그렇게 바쁘게 먼길을 가신 것이다.  
부음을 듣고 달려가니 어머님은 내가 보내 드린 그 은은한 한복을 입으신 채로 누워 계셨으니...

고통과 충격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되어 하염 없이 흘렀고,
그 고통은 시간의 파도에 쓸려 이제는 작고도 단단한 알갱이가 되어 가슴 한자리에 깊이 박혀 있다.

그러나 한복 한 벌, 어머니날을 알게 해 드린, 그 작은 물방울이 뿌려진 한복 한 벌은 소박한 위안이 되면서 혼자 눈물 짓는 나를 달래곤 한다.

딸이 미국에서 어버이 날이라고 선물을 보냈다.
시어머님과 같은 것으로 마련했다고 하는 말에 나는 나의 젊은 시절(차라리 어렸던 시절)을 불현듯 떠올리게 한다. 굽이굽이 궁리 끝에 마련했을 선물을 받고는 그 간에 애쓴 마음에 애틋한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딸에게 나는 엷은 쓴소리 한마디.
“모든 선물은 미리 받아 보게 해야지 시간이 하루라도 지나면 효과는 반감이야”
어버이 날 선물이 5월 9일에 배달 된 것에 대한 나의 지적이고 어버이 날 당일에 받게 하겠다는 딸의 계산은 어린이 날이 공휴일이라 늦어졌던 것이다. 시간을 너무 정확히 쓰다 보면 그 절묘함이 자칫 실수로 연결될 수도 있는 것, 그래서 재미는 적어도 매사에 시간을 넉넉히 잡아워야 한다고 나는 쓴소리를 했다.
하루라지만 잠시라도 서운한 마음을 가지셨을지 모를 딸애 시어머님의 마음을 읽어 걱정하고 지적해 준 것이었으나 싫은 소리를 한 맘은 편치가 않았다.

어머니 날을 모르시던 나의 시어머님에 비한다면 한참 까다롭고도 피곤한 엄마가 되고 있는 순간이 아니었던가!
다음 날 딸의 전화.
"어머님은 새벽 세시에 깨셔서 선물 잘 받았다고 전화 하셨던데..."
말 속에 양쪽 어머니의 반응이 서로 대비되었던 건 아닐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5월은 사랑했던 기억을 만드는 달이 되면 그만이야.

2008-5-18